최수종
K-1 특집드라마 ‘전우’ 주연
지난 27일 아침 8시, 한국방송 드라마 수원 세트장. 최수종씨를 만나려고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남루한 군복을 입고 까만 칠이 범벅된 얼굴에 퀭한 눈. 이제 막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60년 전 한국전쟁 참전병사의 환영이 앉아 있는 듯했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우들의 우정을 그린 특집드라마 <전우>(KBS 1TV 토·일 밤 9시40분)에서 부대원 9명을 이끄는 이현중 중사 역을 맡아 중공군과 인민군에 맞서 총칼을 휘두른다. “매일 실제 전쟁을 치러요. 검은 분칠 때문에 안 보여서 그렇지 얼굴에 상처도 많아요. 파편이 튈 때마다 남자한테 뺨을 세게 맞은 듯 아파요. 안 다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데 안 다칠 수가 없어요. 폭탄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총알이 날아오고, 아, 정말 소름 돋죠.”
몸 사리지 않는 연기
그는 일각에서 제기한 반공드라마 비판을 의식했는지 ‘반전’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고 말했다. “전쟁 장면 촬영이 끝나고 전우들을 모두 불러 촬영장 모습을 보라고 했어요. 끔찍했어요. 내 가족과 형제, 아는 사람들이 저 시쳇더미 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잘 드러낼까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그러면서 “반공 몰이 내용이 있었다면 출연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연기 생활 23년째인 그는 1회 마지막 장면에선 육탄전을 벌인 뒤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 등 표정만으로 현장의 참혹함을 표현해내는 내공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본인 자신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영화처럼 죽이면서도 가슴 찢어지는 마음을 욕설 등으로 격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드라마라서 제약이 많아요. 대신 총알이 날아오면 티브이에 얼굴이 안 나오더라도 고개를 돌리는 식으로 무서워하는 행동을 묘사해 사실감을 높이려고 합니다.”
최수종은 출연작을 최대한 꼼꼼히 고르지만, 한번 출연을 결정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기로 유명하다. <해신>에서는 머리만 내놓고 땅에 파묻혔고 <야망의 전설>에서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직접 촬영했다. <전우>에서도 모든 총격전을 대역 없이 소화하고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이왕이면 더욱 도전적이고 강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찾아요. ‘아니, 저런 것까지 직접 하느냐’며 시청자들이 놀랄 정도의 장면이 연기 욕심을 부추깁니다.” <대조영> <태조 왕건> <해신> 등 그가 대하, 대작드라마 전문 주연배우가 된 것이 이런 연기 열정에 출연진을 이끄는 리더십 때문이다.
20년 이유 있는 주연
최수종은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린다. 역대 시청률 1위인 1997년 <첫사랑>(KBS)이 65.8%, 1993년 <아들과 딸>(MBC) 61.1%를 기록하는 등 역대 시청률 드라마 10개 중에 그가 출연한 드라마가 세편이나 들어 있다. 정작 본인은 이런 성과가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고 한다. “다음에 시청률이 안 나오면 어쩌나 늘 고민합니다. 동료들에게는 ‘걱정하지 마, 시청률로 연기하느냐’고 큰소리치고는 뒤돌아서 속으로 혼자 끙끙 앓아요. (웃음)” 이런 불안감이야말로 그의 성장동력이다.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한 뒤 20년 넘게 주연 배우로서 장수하고 있다. 청춘스타로 인기가 높던 1990년 <서울뚝배기>를 시작으로 가족드라마의 든든한 장남이 됐고, 2000년 <태조 왕건>부터는 사극의 영웅이 되는 등 계속 변화해왔다. 요즘 배우들이 이미지를 좇아 광고만 찍는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그는 “언젠가는 삼촌, 아빠 역할을 할 날이 올 것이니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해내려면 차근차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가족드라마는 선배들 각각의 장점을 배울 수 있고, 사극은 호흡 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듯한 이미지 탓에 악역은 한 번도 못해봤다. “섭외가 안 들어와요(웃음). 이유 있는 악역이라면 언제든 도전하고 싶어요.” 넘치는 끼를 어찌하리 1990년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도루묵 여사’에 나와 춘 춤은 최수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연기 못잖은 예능 기질로 그는 팔방미인 이미지를 굳혔다. 1987년 <젊음의 행진> 2008년 <더 스타 쇼> 등의 프로에서 진행자와 디제이로도 활동하며 연기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왔다. “배우들이 진행을 맡으면 한 이미지로 고정되어 연기할 때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등 단점이 더 많아요. 그런데 왜 했느냐고요? 끼를 발산할 곳이 없어서(웃음).” 그런 그가 예능이 무서워졌단다. “예전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존중하면서 들었잖아요. 지금은 너무 막 대하고, 자기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이어서 적응이 되지 않아요.” 이제 연기 스트레스는 어디서 푸나. 그는 <전우>가 끝난 뒤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최수종은 유명한 애처가로 유부남들의 ‘공공의 적’(?)으로 꼽힌다. 결혼 13년차 때 휴대폰에 저장했던 ‘내 사랑 희라’가 결혼 17년차인 지금은 ‘우훗 예쁜 희라’로 바뀌었다. 아직도 아내가 그렇게 좋을까. “최근엔 촬영 때문에 못 만나서 희라가 좋아하는 노래와 내가 사랑하는 이유 등을 녹음해 매니저에게 몰래 차에서 틀어주라고 건네줬어요.” 아직도 그렇게 아내가 좋냐고 묻자 답변이 십 분 넘게 이어진다. 아내가 보내준 문자메시지를 보여주고, 아내를 향한 애칭 변화 강의가 끝날 줄을 몰라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새 <전우>의 군인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최수종은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린다. 역대 시청률 1위인 1997년 <첫사랑>(KBS)이 65.8%, 1993년 <아들과 딸>(MBC) 61.1%를 기록하는 등 역대 시청률 드라마 10개 중에 그가 출연한 드라마가 세편이나 들어 있다. 정작 본인은 이런 성과가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고 한다. “다음에 시청률이 안 나오면 어쩌나 늘 고민합니다. 동료들에게는 ‘걱정하지 마, 시청률로 연기하느냐’고 큰소리치고는 뒤돌아서 속으로 혼자 끙끙 앓아요. (웃음)” 이런 불안감이야말로 그의 성장동력이다.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한 뒤 20년 넘게 주연 배우로서 장수하고 있다. 청춘스타로 인기가 높던 1990년 <서울뚝배기>를 시작으로 가족드라마의 든든한 장남이 됐고, 2000년 <태조 왕건>부터는 사극의 영웅이 되는 등 계속 변화해왔다. 요즘 배우들이 이미지를 좇아 광고만 찍는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그는 “언젠가는 삼촌, 아빠 역할을 할 날이 올 것이니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해내려면 차근차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가족드라마는 선배들 각각의 장점을 배울 수 있고, 사극은 호흡 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듯한 이미지 탓에 악역은 한 번도 못해봤다. “섭외가 안 들어와요(웃음). 이유 있는 악역이라면 언제든 도전하고 싶어요.” 넘치는 끼를 어찌하리 1990년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도루묵 여사’에 나와 춘 춤은 최수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연기 못잖은 예능 기질로 그는 팔방미인 이미지를 굳혔다. 1987년 <젊음의 행진> 2008년 <더 스타 쇼> 등의 프로에서 진행자와 디제이로도 활동하며 연기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왔다. “배우들이 진행을 맡으면 한 이미지로 고정되어 연기할 때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등 단점이 더 많아요. 그런데 왜 했느냐고요? 끼를 발산할 곳이 없어서(웃음).” 그런 그가 예능이 무서워졌단다. “예전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존중하면서 들었잖아요. 지금은 너무 막 대하고, 자기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이어서 적응이 되지 않아요.” 이제 연기 스트레스는 어디서 푸나. 그는 <전우>가 끝난 뒤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최수종은 유명한 애처가로 유부남들의 ‘공공의 적’(?)으로 꼽힌다. 결혼 13년차 때 휴대폰에 저장했던 ‘내 사랑 희라’가 결혼 17년차인 지금은 ‘우훗 예쁜 희라’로 바뀌었다. 아직도 아내가 그렇게 좋을까. “최근엔 촬영 때문에 못 만나서 희라가 좋아하는 노래와 내가 사랑하는 이유 등을 녹음해 매니저에게 몰래 차에서 틀어주라고 건네줬어요.” 아직도 그렇게 아내가 좋냐고 묻자 답변이 십 분 넘게 이어진다. 아내가 보내준 문자메시지를 보여주고, 아내를 향한 애칭 변화 강의가 끝날 줄을 몰라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새 <전우>의 군인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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