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기 맞아 MBC 스페셜 2일 방영
주변인 회고 통해 생전 궤적 되짚어
주변인 회고 통해 생전 궤적 되짚어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 말을 끝으로 2년 전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거대한 족적 아래에는 현대사의 비극과 어우러진 개인적 고통이 있었다. 문화방송 <엠비시 스페셜-내 어머니 박경리>(2일 밤 10시55분, 연출 최우철)가 박경리 주변 인물들의 회고로 인간 박경리의 삶의 궤적을 되짚는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82년의 모진 세월을 살아낸 인간 박경리. 그는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촌부가 되고 싶은 소박한 꿈을 꾸는 새색시였지만 가만 놔두지 않았다. 살아생전 박경리는 말했다. “1·4 후퇴 직전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있을 때 형무소를 다니는데, 너무 힘드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미끄러져서 한강에 빠졌으면 싶더라고….”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움을 겪은 박경리는 6·25 와중에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마저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삶이 평탄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던 그의 고백은 역설적으로 문학이 없었더라면 외로움과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 살아남기 어려웠을 그의 삶을 설명한다. 독서광이었던 진주여고 학생 시절 문학은 외로운 그의 친구였고, 노모와 어린 딸을 부양해야 했던 시절 소설은 밥벌이가 되어주었다.
“꾹꾹 누르고 있다가 마지막 해를 넘기는 날 같은 때는 한 번씩 창자가 끊어지듯이 울던”(딸 김영주) 그는, 1950년대 말 <불신시대> <암흑시대>로 개인적 아픔을 글로 풀어냈고,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해 <시장과 전장> <파시> 등 사회 부조리에 각을 세운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25년의 길고 긴 고행을 예고하는 대하소설 <토지>는 1969년 6월 집필이 시작된다.
작가 박경리의 집념과 끈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박경리 선생님이 들어앉으셨다, 전화도 끊고 사람들과의 모든 걸 다 끊고 들어앉아서 <토지> 집필을 시작을 하셨다, 별 소문이 다 났어요. 너무 들어앉아 있어서 다리를 못 쓰고 걷지를 못한다더라….”(작가 오정희)
작가 박경리를 이끌어 준 것은 엄마 박경리였다. 딸은 1973년 김지하와 결혼하고, 사위는 도피와 수감생활로 한 시대를 보낸다. 그 역시 유신시대의 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딸과 부모의 부양자였던 그는 딸의 남편, 외손자의 아빠 노릇까지 떠맡아야 했다. “어머니가 저만 보면 엄청 화를 내셨어요. 왜냐하면 속이 상해서, 딸만 쳐다보면 속이 상하는 거예요.”(딸 김영주) 박경리는 후배 작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선생님 댁은 제 친정집이었고 선생님은 제 친엄마였습니다”(작가 박완서)라는 고백이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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