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빚고도 ‘광속 컴백’ 도덕불감증 연예계
표절·병역기피의혹·뺑소니…
발뺌부터…들통나도 아랑곳 안해
외국 시장 타격 줄이려고 활동 계속
일반인에 견줘 관대한 처벌 ‘공분’ 사
발뺌부터…들통나도 아랑곳 안해
외국 시장 타격 줄이려고 활동 계속
일반인에 견줘 관대한 처벌 ‘공분’ 사
“우리 연기자들은 사고친 사람이 없어서….” 한 연예인 매니저는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권상우, 최철호 등이 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는 물의를 일으키면서 연예인들의 도덕 불감증에 대한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다. 하지만 많은 기획사들은 “우리 배우 아니니 다행”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겨레>가 취재한 여러 기획사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별히 담당 연예인에게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등의 당부를 한 적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배우들은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게 공통된 이유였다. 연예인들의 사고가 늘고 있어도 소속사들은 위기관리 시스템 등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다. 큰 기획사 몇 곳을 빼면 법무팀조차 없다. 한 매니저는 “우리나라는 일단 사고가 나면 무조건 매니저에게 뒤집어씌우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선 사고를 내고도 뺑소니를 친 뒤 거짓말을 한 권상우 사건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오고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보다 사회적 책임이 큰 연예인들에겐 더욱 성숙하고 현명한 자세가 요구된다. 이미 저지른 실수에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는 법이지만 우리 연예계에선 아직 그런 성숙된 자세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과거에는 사과라도 했는데…
연예계에서 10년 넘게 일한 한 기획사 대표는 “과거에도 연예인들이 사고는 쳤지만 대부분 진심이든 가식이든 공식적으로 확실한 사과를 한 뒤 자숙의 시간을 가졌는데 최근에는 사과도 않고 시청자 비난에 귀를 닫는 행태가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거짓말을 하고 발뺌하다 들통나면 당장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정도로 도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기본이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가수 김상혁이다. 김상혁은 2005년 4월 음주운전을 한 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다가 더 큰 비판을 받고 방송가를 떠났다. 2년6개월 만인 2007년 한 케이블텔레비전에 출연했지만 다시 비난이 일어 이마저도 곧 접어야 했다. 그는 지금도 지상파 출연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2001년 다이어트만으로 살을 뺐다고 말한 뒤 지방흡입 시술을 한 사실이 알려진 이영자도 수년간 방송을 접었다. 주영훈도 3년 전 학력위조 거짓 해명으로 9개월 만에 복귀했다가 비난이 쏟아져 지금까지 티브이 출연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요즘은 거짓말 들통나도 ‘모르쇠’
반면 요즘에는 거짓말이 들통나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시청자들의 비난을 무시하는 뻔뻔한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뺑소니 사고를 낸 권상우, 자신이 프로듀스한 음반이 무더기 표절로 드러난 이효리, 병역 기피 논란을 일으킨 엠시몽은 거짓말로 사건을 무마하려 하거나 논란을 무시해 스스로 사건을 확대했다. 연예계에서조차 “뺑소니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거짓말을 한 것은 시청자를 우습게 본 것인데 예전과 달리 권상우가 아무렇지 않게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고 말할 정도다.
앞서 논란이 일었던 최민수의 경우 억울함을 호소하기 이전에 일단 사과부터 해 이미지 추락을 막았다. 최민수는 60대 노인을 차에 매달고 질주한 혐의를 받자 피해자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고 공백기를 가진 뒤 1년8개월 만에 특집극 <아버지의 집>에 출연했다. 그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마약 투입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기소된 주지훈도 모든 활동을 접고 자숙하다 2월 군 입대를 했다. 주지훈은 당시 일본 영화 <도쿄타워>를 리메이크한 드라마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소속사, 방송사, 외주제작사 모두 하차를 결정해 더 큰 비난을 피했다. 강인도 폭행사건이 터지자 자숙기간을 가지다 군에 입대했다.
왜 이렇게 뻔뻔해졌나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에게 갈수록 관대해지는 데에는 한류 열풍 덕분에 국내가 아니어도 활동할 외국 시장이 많아진 것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일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 자체가 크기 때문에 기획사나 외주제작사 등에서도 큰 사건이 아니라면 일단 출연시켜야 손해 등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권상우가 국내 팬들을 제쳐두고 먼저 일본 팬들에게 사과 글을 올린 것도 그런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국내 시청자들이 비난을 하다가도 작품이 잘되면 금방 잊어버리는 경향도 연예인들의 도덕 불감증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 팬클럽의 경우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범법 행위에도 옹호 댓글을 올리는 등 이중잣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검찰과 경찰 등 사법기관이 일반인들보다 관대하게 처리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는 “할리우드는 유죄 확정 전까지는 제재를 안 하지만 법적인 판결이 나면 철저하게 처벌을 받는 것이 기본”이라며 “또 미국은 가중치가 있어서 수입이 많은 스타들은 같은 죄에도 훨씬 많은 벌금을 내는데 우리나라는 연예인이면 같은 죄를 저지르더라도 관대한 처벌을 받으니까 시청자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인에 더욱 엄격한 일본
연예인에 대한 관리가 철저한 일본의 경우 소속 연예인이 사고를 치면 소속사가 나서 사건을 확실히 매듭짓는다. 미성년자였던 모닝구무스메의 한 멤버가 담배 피우는 사진이 찍혔을 때 소속사는 자체적으로 수년간 방송활동을 금지했다. 문제가 불거지면 반드시 사과를 하는 것도 우리와 다른 점이다. 지금은 해체된 한 그룹 멤버가 마약으로 체포되자 음반사에서 모든 음반을 팔지 않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조민준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엔 일본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행태가 잦아졌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건이나 사고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하거나 소속사에서 어떻게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물의 빚고도 ‘광속 컴백’ 도덕불감증 연예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