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고 불륜 보고 저녁 먹고 불륜 본다?
지상파 3사 민망한 막장 경쟁
시간·장르 불문 ‘바람 코드’
막장스토리·자기복제 반복
‘시청률 유혹’에 습관적 차용 지상파 방송 3사 드라마의 불륜 의존증이 심각하다. <한겨레> 대중문화팀이 2009년 1월부터 현재 방송분까지 드라마 내용(사극제외)을 분석한 결과 둘중 하나가 불륜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는 정도가 더 심하다. 사극을 제외한 17편중 10편이 불륜 일색이다. 60%에 가까운 수치다. 강도도 ‘막장성’을 더하고 있다. 일일·주말극은 따뜻한 가족이야기로, 미니시리즈는 다양한 소재를 반영한다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 불륜에서 막장꽃 핀다 불륜은 드라마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금기시될 필요는 없다. 과거에도 불륜 드라마는 존재했다. 그러나 5~6년전만해도 아침드라마 등에서 제한적으로 시도했던 불륜드라마는 이제 차고넘친다. 내용도 불륜에 빠진 남녀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며 공감대를 얻기보다 복수나 맞바람 등 누가 더 막장을 그리냐는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불륜 막장 드라마의 기폭제는 2008년1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방송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아내의 유혹>이다. 현재 방송중인 문화방송의 <황금물고기> 등 일일드라마는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고, 아줌마 밴드이야기인 에스비에스 월화미니시리즈 <나는 전설이다> 등 로맨틱코미디물조차 불필요해 보이는 남편의 내연녀가 습관처럼 등장한다. 특히 현재 시청률 40%가 넘는 <제빵왕 김탁구>와 문화방송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에는 불륜, 간통, 복수, 패륜 등 자극적인 내용이 넘쳐난다.
■ 맥락 없는 인물상 극적 긴장감을 높이려고 등장 인물의 성격도 이분화시키기 일쑤다. 주인공은 한없이 착하고, 남편과 바람 핀 여자는 욕먹어야 마땅한 인물로 그려진다. 왜 바람을 피우고, 왜 갈등 구도가 빚어지는지 뚜렷한 이유도 없다. <아내의 유혹>에서 여주인공은 얼굴에 점 하나 찍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뒤 남편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한다. 불륜드라마는 이제 ‘아무 이유 없이’ 막장을 향해 달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어머니들까지 불륜을 부추기는 인물로 가세한다. <제빵왕 김탁구>뿐 아니라 한국방송 2텔레비전 일일드라마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는 엄마는 딸로 하여금 재혼한 전남편을 유혹하도록 함께 계략을 꾸미면서 불륜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현재 방송중인 에스비에스 일일드라마 <세자매>에서는 친하게 지내던 이가 알고 보니 남편과 바람피운 첫사랑이었다는 식의, 우연으로 포장된 복잡한 인물관계도 등장한다.
■ 자기복제의 늪 막장드라마는 끊임없이 복제를 거듭한다. 한국방송 2텔레비전 주말드라마 <결혼해주세요>는 지난 14일 방송에서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남정임(김지영)이 연하남(유태준)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조강지처 클럽> (2007)등에서 숱하게 보였던 평범한 이혼녀와 연하남의 사랑이라는 뻔한 불륜공식의 답습을 예고했다. <아내의 유혹>의 극본을 썼던 김순옥 작가는 같은해 비슷한 내용의 복수극 <천사의 유혹>의 대본을 썼다. 조은정 작가도 비슷하다.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이복오빠이자 옛 애인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황금물고기>를 집필중인 그는 전작 <하얀거짓말>(2009)에서도 옛 애인의 이복동생과 결혼해 자신을 버렸던 남자에 대한 복수극을 그린 바 있다. ■ 보니까 쓴다지만 불륜에 납치극까지 등장했던 <밥줘>(2009)의 서영명 작가는 “작품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쓰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불륜드라마는 시청률이 높다. <아내의 유혹>은 40%를 넘기며 화제를 일으켰고 <내조의 여왕>(2009·MBC)도 30%를 넘었다. 현재 방송중인 <결혼해주세요>도 25%(티엔엠에스 집계), <바람불어 좋은 날>도 17.9%다. 건강한 아침드라마를 표방한 한국방송 2텔레비전의 <엄마도 예쁘다>는 6%대에 불과하다. 방송 작가들은 이런 시청률 강세가 현실적 설득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과 전쟁>의 하명희 작가는 “주부들이 남편의 외도를 대놓고 말할 수 없는 한국사회에서 (불륜드라마는) 복수와 성공으로 이어지며 대리만족도 준다”고 했다. 방송사들도 회당 1~2억원이란 적은 돈을 들이고도 높은 시청률을 내는 가장 좋은 소재가 불륜이라고 털어놓는다. 한 드라마 피디는 “스타를 기용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시청률을 담보하는 불륜드라마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라고 했다. 일례로 공영방송이 방송한 막장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는 30%가 넘는 시청률에 힘입어 광고수입만 300억원 이상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불륜 소재를 좀더 심도깊게 고민하고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자성론이 작가 자신들에게서도 나온다. 서영명 작가는 “작가들이 봐도 민망할 정도로 비슷한 불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드라마들이 많다”면서 “불륜이 등장하는 합당한 이유와 갈등하는 인물 내면의 진정성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응진 한국방송 드라마국장도 “불륜도 삶의 현상이므로 다룰 수 있지만 드라마속 비율이 높다는 건 분명히 문제가 된다”며 “시청률에 목매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 양산 풍토를 만들려는 내부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막장스토리·자기복제 반복
‘시청률 유혹’에 습관적 차용 지상파 방송 3사 드라마의 불륜 의존증이 심각하다. <한겨레> 대중문화팀이 2009년 1월부터 현재 방송분까지 드라마 내용(사극제외)을 분석한 결과 둘중 하나가 불륜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는 정도가 더 심하다. 사극을 제외한 17편중 10편이 불륜 일색이다. 60%에 가까운 수치다. 강도도 ‘막장성’을 더하고 있다. 일일·주말극은 따뜻한 가족이야기로, 미니시리즈는 다양한 소재를 반영한다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 불륜에서 막장꽃 핀다 불륜은 드라마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금기시될 필요는 없다. 과거에도 불륜 드라마는 존재했다. 그러나 5~6년전만해도 아침드라마 등에서 제한적으로 시도했던 불륜드라마는 이제 차고넘친다. 내용도 불륜에 빠진 남녀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며 공감대를 얻기보다 복수나 맞바람 등 누가 더 막장을 그리냐는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불륜 막장 드라마의 기폭제는 2008년1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방송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아내의 유혹>이다. 현재 방송중인 문화방송의 <황금물고기> 등 일일드라마는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고, 아줌마 밴드이야기인 에스비에스 월화미니시리즈 <나는 전설이다> 등 로맨틱코미디물조차 불필요해 보이는 남편의 내연녀가 습관처럼 등장한다. 특히 현재 시청률 40%가 넘는 <제빵왕 김탁구>와 문화방송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에는 불륜, 간통, 복수, 패륜 등 자극적인 내용이 넘쳐난다.
아침 먹고 불륜 보고 저녁 먹고 불륜 본다?
■ 자기복제의 늪 막장드라마는 끊임없이 복제를 거듭한다. 한국방송 2텔레비전 주말드라마 <결혼해주세요>는 지난 14일 방송에서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남정임(김지영)이 연하남(유태준)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조강지처 클럽> (2007)등에서 숱하게 보였던 평범한 이혼녀와 연하남의 사랑이라는 뻔한 불륜공식의 답습을 예고했다. <아내의 유혹>의 극본을 썼던 김순옥 작가는 같은해 비슷한 내용의 복수극 <천사의 유혹>의 대본을 썼다. 조은정 작가도 비슷하다.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이복오빠이자 옛 애인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황금물고기>를 집필중인 그는 전작 <하얀거짓말>(2009)에서도 옛 애인의 이복동생과 결혼해 자신을 버렸던 남자에 대한 복수극을 그린 바 있다. ■ 보니까 쓴다지만 불륜에 납치극까지 등장했던 <밥줘>(2009)의 서영명 작가는 “작품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쓰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불륜드라마는 시청률이 높다. <아내의 유혹>은 40%를 넘기며 화제를 일으켰고 <내조의 여왕>(2009·MBC)도 30%를 넘었다. 현재 방송중인 <결혼해주세요>도 25%(티엔엠에스 집계), <바람불어 좋은 날>도 17.9%다. 건강한 아침드라마를 표방한 한국방송 2텔레비전의 <엄마도 예쁘다>는 6%대에 불과하다. 방송 작가들은 이런 시청률 강세가 현실적 설득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과 전쟁>의 하명희 작가는 “주부들이 남편의 외도를 대놓고 말할 수 없는 한국사회에서 (불륜드라마는) 복수와 성공으로 이어지며 대리만족도 준다”고 했다. 방송사들도 회당 1~2억원이란 적은 돈을 들이고도 높은 시청률을 내는 가장 좋은 소재가 불륜이라고 털어놓는다. 한 드라마 피디는 “스타를 기용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시청률을 담보하는 불륜드라마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라고 했다. 일례로 공영방송이 방송한 막장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는 30%가 넘는 시청률에 힘입어 광고수입만 300억원 이상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불륜 소재를 좀더 심도깊게 고민하고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자성론이 작가 자신들에게서도 나온다. 서영명 작가는 “작가들이 봐도 민망할 정도로 비슷한 불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드라마들이 많다”면서 “불륜이 등장하는 합당한 이유와 갈등하는 인물 내면의 진정성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응진 한국방송 드라마국장도 “불륜도 삶의 현상이므로 다룰 수 있지만 드라마속 비율이 높다는 건 분명히 문제가 된다”며 “시청률에 목매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 양산 풍토를 만들려는 내부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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