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팬츠·엉덩이춤·판박이 음악
치열한 경쟁에 ‘섹시코드’ 일관
치열한 경쟁에 ‘섹시코드’ 일관
장면1.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가 지난 26일 ‘2010 엠넷 20’s 초이스’에서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색 핫팬츠를 입고 섹시한 의자 춤을 춘다. 쭉 뻗은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움직일 때마다 보는 이들은 열광한다. 방송이 끝난 뒤 인터넷에 캡처된 화면에는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너의 각선미” “남자를 유혹하는 뇌쇄적 눈빛”이라는 덧글이 달린다. 현아(18)는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다.
장면2. 평균 나이 15살의 최연소 걸그룹 지피베이직이 지난 21일 문화방송 음악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 나와 노래를 부른다. “네 두 눈과 마음을 훔쳐. 넌 이미 내 거. 나만 바라봐.”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은 초등학생 한 명과 중학생 네 명이다. 노래 내용과 짙은 화장을 봐서는 소녀그룹인지 헷갈린다.
최근 들어 걸그룹들이 화제를 모으면서 선정성 논란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포함된 걸그룹들은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는 기본이고, 속옷을 연상시키는 시스루룩 등을 입고 자극적인 춤을 추기가 예사지만, 프로그램은 되레 이를 부추기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비판 여론이 일자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특정 신체 부위 클로즈업 등 볼거리를 위주로 한 제작 태도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선정적 앵글·노출 강요도 문제
방송사 애매한 자정 노력 한계 ■ 걸그룹 지나친 경쟁이 문제 지난 28일 방송한 문화방송 <쇼! 음악중심>에는 걸그룹 4팀이 출연했는데 이 중 3팀이 섹시 콘셉트를 선보였다. 한결같이 핫팬츠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고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브라운관을 달궜다. 팀을 바꿔 춤을 춰도 어색하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원더걸스가 복고풍, 투애니원이 힘있는 음악 등 제 색깔을 갖고 팀을 꾸리는 것과 달리 콘셉트도 모호하다. 노래는 뒷전, 그저 어떻게든 섹시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방송에 출연하는 걸그룹은 하나같이 ‘핫팬츠+엉덩이춤’이라는 몰개성의 인상이 짙다.
방송가에서는 우후죽순쏟아진 걸그룹끼리의 경쟁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모나 의상 콘셉트, 후렴 부분에 특징을 준 음악 스타일 등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걸그룹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은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쇼! 음악중심>의 김유곤 피디는 “요즘엔 보이그룹보다 걸그룹들이 더 주목받고 경쟁이 치열해 한번이라도 더 입에 오르내리려면 화젯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섹시 코드는 뜨기 위한 무기”라는 것이다. ■ 달라진 시청환경을 노린다 달라진 시청환경도 걸그룹 섹시화 현상을 부추긴다. 한국방송 <뮤직뱅크> 서수민 피디는 “걸그룹들의 섹시한 의상과 춤은 음악 프로그램 시청률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주요 시청층인 10대들이 블로그 등에 열심히 캡처해 인터넷에 소개하고 인터넷 언론들은 일제히 기사로 쏟아내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화제를 일으켜 인지도 상승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소속사도 전략적으로 섹시 코드를 내세운다. 한 걸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실제로 파격적인 섹시 콘셉트를 내세우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다”고 말했다. 노래 잘하는 가수로 사랑받았던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브라카다브라>를 내세워 섹시 콘셉트로 바꾸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최근에는 신인 걸그룹 시크릿도 <마돈나>로 주목받고 있다. <꽃다발> <세바퀴>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걸그룹들에게 섹시한 댄스를 요구하고 이를 보는 중년의 남성 패널들이 대놓고 좋아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등 개념 없는 방송도 문제로 지적된다.
■ 노출 강요 섹시코드를 강조하다 보니 노출을 강요하는 일도 발생한다. 지난 23일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가 지난 7월21일부터 8월5일까지 만 19~24살의 남녀 연예인 및 연예인 지망생 103명에게 물었더니 19살 미만 청소년 연예인 중 다리, 가슴, 엉덩이 등 신체 부위의 노출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10.2%였고, 노출을 강요당했다는 응답도 33.3%나 나왔다. 한 음악 프로그램 관계자는 “(노출이) 부담스럽다거나 (노출 의상을) 못 입겠다고 말하는 걸그룹 멤버를 방송국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 걸그룹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들의 선정적인 의상과 노출은 일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최근 카라가 출연한 한 일본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카라의 엉덩이를 집중적으로 카메라에 담아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 일본의 한 매체는 ‘카라의 엉덩이와 소녀시대 각선미가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가이드라인은? 방송법에는 어린이·청소년이 시청자인 경우를 전제로 퇴폐 폭력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할 뿐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대신 방송사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조심하는 분위기다. 에스비에스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을 정해 지나친 선정적 퍼포먼스나 과도한 노출과 행동으로 방송 품위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출연자를 제재하기로 했다. 에스비에스 홍보팀 쪽은 “프로그램의 선정적인 장면과 소재 등이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화방송과 한국방송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의상 등을 미리 검사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쇼! 음악중심>의 김유곤 피디는 “예능국장과 담당 피디 등 관계자들이 리허설 때 미리 의상과 춤 등을 보고 수정할 부분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뮤직뱅크> 서수민 피디는 “걸그룹 소속사도 최근 선정성 문제가 불거지자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용으로 의상을 따로 제작해 오거나, 노출 의상 수정 요구 등을 고스란히 수용한다”고 전했다. 여자 연예인을 아래부터 위로 훑고 특정 부위를 강조했던 카메라 앵글도 신경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노출 관련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적용될지는 애매한 상황이다. 노출이라는 것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정해야 하는지 주관적인데다, 가수의 분위기에 따라 같은 노출이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시대가 달라지고 가수들의 퍼포먼스도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노출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의 고위 관계자는 “예전에도 배꼽을 보이지 말라고 해서 내부적으로 신경을 썼는데 어느 순간 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며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제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조현오 경찰청장 첫 지시 “전 경찰, 취임식 시청하라”
■ 여성 ‘상반신 노출’ 자유 누가 막는가
■ 홈플러스 ‘명품세일’에 낚인 소비자들 분통
■ 처지고 삐져나온 뱃살, 어떤 운동하오리까
방송사 애매한 자정 노력 한계 ■ 걸그룹 지나친 경쟁이 문제 지난 28일 방송한 문화방송 <쇼! 음악중심>에는 걸그룹 4팀이 출연했는데 이 중 3팀이 섹시 콘셉트를 선보였다. 한결같이 핫팬츠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고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브라운관을 달궜다. 팀을 바꿔 춤을 춰도 어색하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원더걸스가 복고풍, 투애니원이 힘있는 음악 등 제 색깔을 갖고 팀을 꾸리는 것과 달리 콘셉트도 모호하다. 노래는 뒷전, 그저 어떻게든 섹시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방송에 출연하는 걸그룹은 하나같이 ‘핫팬츠+엉덩이춤’이라는 몰개성의 인상이 짙다.
방송가에서는 우후죽순쏟아진 걸그룹끼리의 경쟁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모나 의상 콘셉트, 후렴 부분에 특징을 준 음악 스타일 등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걸그룹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은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쇼! 음악중심>의 김유곤 피디는 “요즘엔 보이그룹보다 걸그룹들이 더 주목받고 경쟁이 치열해 한번이라도 더 입에 오르내리려면 화젯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섹시 코드는 뜨기 위한 무기”라는 것이다. ■ 달라진 시청환경을 노린다 달라진 시청환경도 걸그룹 섹시화 현상을 부추긴다. 한국방송 <뮤직뱅크> 서수민 피디는 “걸그룹들의 섹시한 의상과 춤은 음악 프로그램 시청률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주요 시청층인 10대들이 블로그 등에 열심히 캡처해 인터넷에 소개하고 인터넷 언론들은 일제히 기사로 쏟아내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화제를 일으켜 인지도 상승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소속사도 전략적으로 섹시 코드를 내세운다. 한 걸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실제로 파격적인 섹시 콘셉트를 내세우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다”고 말했다. 노래 잘하는 가수로 사랑받았던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브라카다브라>를 내세워 섹시 콘셉트로 바꾸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최근에는 신인 걸그룹 시크릿도 <마돈나>로 주목받고 있다. <꽃다발> <세바퀴>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걸그룹들에게 섹시한 댄스를 요구하고 이를 보는 중년의 남성 패널들이 대놓고 좋아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등 개념 없는 방송도 문제로 지적된다.
■ 노출 강요 섹시코드를 강조하다 보니 노출을 강요하는 일도 발생한다. 지난 23일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가 지난 7월21일부터 8월5일까지 만 19~24살의 남녀 연예인 및 연예인 지망생 103명에게 물었더니 19살 미만 청소년 연예인 중 다리, 가슴, 엉덩이 등 신체 부위의 노출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10.2%였고, 노출을 강요당했다는 응답도 33.3%나 나왔다. 한 음악 프로그램 관계자는 “(노출이) 부담스럽다거나 (노출 의상을) 못 입겠다고 말하는 걸그룹 멤버를 방송국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 걸그룹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들의 선정적인 의상과 노출은 일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최근 카라가 출연한 한 일본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카라의 엉덩이를 집중적으로 카메라에 담아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 일본의 한 매체는 ‘카라의 엉덩이와 소녀시대 각선미가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가이드라인은? 방송법에는 어린이·청소년이 시청자인 경우를 전제로 퇴폐 폭력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할 뿐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대신 방송사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조심하는 분위기다. 에스비에스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을 정해 지나친 선정적 퍼포먼스나 과도한 노출과 행동으로 방송 품위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출연자를 제재하기로 했다. 에스비에스 홍보팀 쪽은 “프로그램의 선정적인 장면과 소재 등이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화방송과 한국방송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의상 등을 미리 검사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쇼! 음악중심>의 김유곤 피디는 “예능국장과 담당 피디 등 관계자들이 리허설 때 미리 의상과 춤 등을 보고 수정할 부분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뮤직뱅크> 서수민 피디는 “걸그룹 소속사도 최근 선정성 문제가 불거지자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용으로 의상을 따로 제작해 오거나, 노출 의상 수정 요구 등을 고스란히 수용한다”고 전했다. 여자 연예인을 아래부터 위로 훑고 특정 부위를 강조했던 카메라 앵글도 신경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노출 관련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적용될지는 애매한 상황이다. 노출이라는 것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정해야 하는지 주관적인데다, 가수의 분위기에 따라 같은 노출이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시대가 달라지고 가수들의 퍼포먼스도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노출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의 고위 관계자는 “예전에도 배꼽을 보이지 말라고 해서 내부적으로 신경을 썼는데 어느 순간 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며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제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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