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밤 방송된 <슈퍼스타K2>에서 탈락자 발표에 앞서 사회자 김성주씨가 “여러분이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있습니다”라고 낚시성 발언을 할 때, 나는 ‘김지수가 탈락하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그 불안한 예감은 불과 몇 분 후 현실이 되었다.
시즌 1 때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나는 이번 시즌에서 우연히 김지수가 장재인과 함께 <신데렐라>를 부른 것을 보고 그의 팬이 돼버렸다. 나이 서른이 되어 김지수를 응원하기 위해 온라인투표, 문자투표, 팬클럽 가입까지 해가며 ‘팬질’을 한 내가 스스로도 어색하고 놀라울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김지수에게 깊이 감정이입이 됐다.
그런 내게 김지수의 탈락은 큰 아픔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강승윤이 붙고 김지수가 탈락한 것에 의아해하지만 나는 사실 이번 방송에서 김지수가 장재인, 존박, 허각보다 더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더욱 안타까웠다. 애초에 김지수의 라이벌은 강승윤이나 김은비가 아니라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김지수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는 첫 방송에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불렀을 때인데 그때의 가창이 가장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안타깝게 파격적인 인상을 남긴 장재인의 <님과 함께>에 밀려 슈퍼세이브를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사랑이 지나가면>에서는 과감히 기타를 놓았지만 평범한 발라드를 선보이는 것에 그쳤다. 전 방송에서 변화가 없다는 지적을 받은 허각이 <조조할인>으로 반전에 성공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방송에서 부른 <벤>은 기타 솔로 반주로 시작해 라이브 밴드와 합쳐지는 구성이었는데 지난주 장재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과 포맷이 비슷해 신선함이 없었다. <사랑이 지나가면>에서 심사위원 이승철한테 정박에 맞춰 부르는 노래에 약점이 있다고 지적받았는데, 그 다음주에 같은 스타일의 노래를 들고 나온 것이 이상했다. 김지수의 가장 큰 장점인 리드미컬한 노래를 세 번의 기회에서 선보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김지수는 예선과 슈퍼위크 때 뛰어난 곡 해석과 감미로운 음색, 리듬감 넘치는 창법으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세 번의 본선 생방송 무대에서는 자신의 매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라이벌로 꼽히던 장재인, 허각, 존박은 모두 한 번씩 슈퍼세이브를 받았지만 김지수는 그 기회를 얻어내지 못했다. 누구는 선곡의 문제라고도 하고 누구는 의상 등 무대 콘셉트가 본인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외부적 제약이 있었다 하더라도 김지수는 매 미션마다 자신의 무대를 최고로 만들려는 근성이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조금 부족해 보였다. 주변인들에 의하면 김지수는 성격이 워낙 착하고 순해서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타입이라고 한다. 카페에 올라온 말대로 그런 ‘평화주의적’ 성격이 우승에 대한 ‘욕심’과 ‘고집’을 억누른 것 같다. 지난 방송에서 김지수가 자신이 신은 신발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장면이 잠깐 나왔는데 그걸 보며 신발을 마음에 드는 것으로 바꾸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김지수의 탈락을 ‘실력보다 스타성’ 또는 ‘실력보단 비주얼’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비록 심사위원 점수에서 높았지만 시청자 문자투표에서 졌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실력 대신 비주얼을 선택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시청자(대중)가 선택한 것은 ‘매력’이었다고 본다. 매력에는 실력, 외모, 인간미 등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된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은 무척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가 매우 섬세하게 작용해서 만들어진다. 팬들이야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응원하는 사람을 밀어주기 마련이지만 일반 시청자들은 그날 그날의 방송과 무대를 보고 판단한다. 지난 방송에서는 김지수보다 강승윤이 더 돋보였다고 본다. 특히 작사 미션에서 그랬다. 말썽꾸러기, 사고뭉치 이미지인 강승윤은 작사 미션에서 부모님께 미안하다는 진실한 가사를 써내 앞에 앉은 작사가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말썽꾸러기 아들이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반면 김지수는 ‘노안’이라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가사로 썼지만 이렇다할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본인은 솔직하게 썼을지 모르겠지만 애잔한 멜로디와 어울리지 않았고 약간은 장난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본방 무대에서도 김지수는 무난하게 노래를 불러 무난한 점수를 받았지만, 1,2차에서 230점대에 머물던 강승윤은 (비록 김지수보다는 낮지만) 260점이라는 향상된 점수를 얻었다. 탈락자 발표에서 그들의 운명이 갈라졌을 때, 나는 슈퍼위크에서 존박과 허각의 라이벌미션 당시 심사위원들이 “생각보다 못한 1등을 뽑느냐, 생각보다 잘한 꼴등을 뽑느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기대 이상으로 잘한 존박을 뽑았던 장면이 겹쳤다. 시청자들은 생각보다 잘한, 조금이라도 ‘성장 스토리’를 보여준 강승윤을 선택했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비슷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탄탄한 팬층이 있는 장재인, 허각, 존박에 비해 김지수는 초반 미니홈피 욕설 합성 논란과 팬카페 회장 먹튀 논란 등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장재인, 존박, 허각이 평소보다 못한 점수가 나올 때도 팬들의 지지로 버틸 수 있었지만 김지수는 자신의 책임이 전혀 없는 일들로 피해를 봐야만 했다. 그 점이 뼈아프게 안타깝다.
팬카페에 올라온 김지수의 글을 보니 본인도 굉장히 아쉬울 텐데도 실망하지 않는 씩씩한 모습이 보여 좋았다. 크게 상심한 나도 덕분에 힘을 얻었다. 음악을 한 지 2~3년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은 꼭 빛이 날 거라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지수가 좀 더 고집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착한 성품도 좋으면 좋았지 나쁜 것이 아니니 앞으로 이 소중한 경험을 약으로 꼭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길 바란다. 그때까지 나는 늘 김지수의 팬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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