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각의 <슈퍼스타K2> 우승으로 그의 감동 스토리가 연일 화제다. 이를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중졸학력 환풍기 수리공의 인생역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허각은 가난이라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우리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슈퍼스타K2>를 쭉 지켜보면서 그가 환경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극복한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인도 바로 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금요일 밤, <슈퍼스타K2> 결승무대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허각이 신곡 미션 <언제나>를 부른 뒤 심사위원 이승철의 점수판에 99점이라는 숫자가 찍혔을 때였다고 생각한다. 그 점수는 잠시 뒤 허각이 우승하리라는 강력한 복선이 되었다. 엄정화의 99점은 이를 확실하게 못박았다. 평소 전혀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이승철은 “데뷔 무대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점수를 주겠다”고 했다. 99점은 시즌1을 통틀어 참가자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점수였고, 아마추어의 한계를 넘어선 점수이자 완벽의 점수였다. 98점과 99점은 비록 1점 차이지만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는 감동의 차이는 그 이상이다. 허각은 예선 때부터 선천적인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그뿐이었고 개성 있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생방송 첫무대에서도 이승철로부터 ‘감탄은 주지만 감동은 주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그는 한걸음씩 발전해나갔고 준결승에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를 부르면서 절치부심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그리고 결승 무대에서도 흔들림 없이 두 곡을 열창함으로써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한계 그 이상을 보여줬다. 그것은 외모나 무대매너, 개성에 의지한 게 아니라 오로지 100% 노래만으로 이뤄낸 결과다.
그리고 예선 때의 허각과 결승 때의 허각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예선 때 허각은 정말 자신감 없어 보이고 의기소침해있는 모습이었다. 그룹 미션 때도 조장이지만 존박에게 주도권을 내줄 정도여서 박진영한테 “조장으로서 낙제점을 주고 싶다”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라이벌 미션에서 탈락할 때는 “내 역할이 남을 빛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체념조로 말했다. 이 당시에 허각이 주목받지 못한 것은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런 기운 빠진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보낼 수는 있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승철의 발탁으로 극적으로 탑11에 합류한 뒤부터 허각은 달라졌다. 매주 본선 무대 전에 보여주는 합숙생활 방송은 자신감 없는 루저 이미지의 허각을 당당한 남자로 바꿔놓았다. 합숙소 반장으로서 집안일 안 하는 강승윤에게 일을 시키고 대화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미군부대에 갔을 때 영어를 못해도 외국인 앞에서 당당하고, 몰래카메라 때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재치있게 넘겼다. 아마도 그런 모습이 원래 허각의 성격이었을 것이다. <슈퍼스타K2> 출연 전에는 좌절과 포기 속에 가려져 있던 그 성격이 탑11에 들면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했다는 말은, 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을 쉽게 놓아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단단하게 채웠다는 뜻일 게다.
<슈퍼스타K2> 제작진은 허각 또는 시청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우승자를 내정했다느니 방송이 조작이라느니 온갖 비난과 루머를 감수해야 했던 <슈퍼스타K2>는 시청자들이 허각을 선택함으로써 이 모든 논란을 한방에 잠재웠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처럼 시청자들은 <슈퍼스타K2> 도전자들이 매주 미션을 수행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슈퍼스타K2>는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음악이 주인공이면서도 이런 보편적인 성장 스토리가 함께 있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제작진이 차려놓았고, 도전자들이 연기했고, 시청자들이 완성했다. 모두가 이 감동을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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