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2주 동안 자리를 비웠다. PC를 못쓰고 TV를 못 본 게 고작 보름 가량이었는데 잠깐 좀 다녀온 사이에 많은 게 변해 있었다. 전까지 잘 나가던 비스트 그리고 샤이니가 (엄청난 스캔들을 터뜨린 후) 돌연 사라졌다. 한편 레인보우의 신곡 ‘Mach’가 발표됐는데 벌써 활동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활동을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언제 신곡준비를 마쳤는지 소녀시대가 급속 등장했다. 그리고 삽시간에 1위를 해치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가쁘게 차기 활동을 준비하는 가수들은 오죽하겠는가 만은, 듣고 즐기는 우리조차도 이렇게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다는 얘기다. 그렇게 숨막힐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게 오늘의 무대이자 시장인데 소녀시대는 변함없이 무섭게 우선순위를 점하고 있었다.
모터의 속도로 정상에 도달한 소녀시대의 ‘훗(Hoot)’은 소녀들이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컨셉트의 안전하고 절충적인 종합이라 말할 만하다. 데뷔 당시 풋풋하게 노래하는 일에 주력했던 고교생 시절을 제외하고, ‘훗(Hoot)’은 ‘지(Gee)’나 ‘오(Oh!)’ 정도로 과하게 귀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Run Devil Run’처럼 과하게 위협적이지도 않고, ‘소원을 말해봐’처럼 과하게 각과 선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과거의 작품이 안겨주었던 즐거운 충격으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귀엽게 적당히 위협적으로 그리고 적당히 관능적으로 노래와 패션과 스타일과 안무 전반을 설계한 인상이다. 이는 ‘훗(Hoot)’의 지향이 결국 ‘007’이나 ‘핀업걸’ 등의 개념을 떠올리게 만드는 복고이기 때문이지 않나 한다. 소녀들이 과거 순회했고 호응을 얻었던 모든 이미지들을 부분적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취하면서도 신선한 등장으로 어필하기에, 세련된 빈티지만한 소재도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사실상 ‘훗(Hoot)’의 모든 요소들을 획기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무리없는 자극, 그리고 익숙하고 안정된 즐거움을 준다. 그리하여 상당한 속도로 정상이라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았고 명중했다. 숱한 걸 그룹이 도처에 널렸지만 가장 날카로운 촉을 가진 존재는 역시 소녀시대라 확인하듯이.
앨범을 펼치면 ‘훗’과 경쟁할 만한 날카로운 ‘엣지’의 노래는 찾기 어렵다. ‘Wake Up’은 강한 댄스곡이지만 오늘의 ‘훗(Hoot)’이나 과거 ‘Run Devel Run’에 비하면 매우 소심한 버전이다. 대신 ‘내 잘못이죠’, ‘단짝’ 등이 말해주는 것처럼 예쁜 멜로디와 예쁜 목소리를 소녀최적의 환경에서 소녀답게 전달하는 일에 집중한다. 소녀시대의 역사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보아나 동방신기가 추구했던 심오하고 아리송한 이야기는 여전히 없고, 사랑해서 행복하거나 사랑해서 아프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려주는 편이다. 마지막 곡 ‘첫눈에’ 또한 새겨들을 만하다. 이는 소녀들의 일관된 추이를 보여주는 노래로, 그간의 무대연출 방향과 그동안 추진해온 변화의 행로를 생각할 때 앞으로 이런 긍정과 낙관의 노래를 무대 위에서 선보이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들의 존재 이유와 쏟아지는 성원의 원인을 문득 실감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돌은 예뻐야 한다, 노래 잘해야 한다, 춤 잘 춰야 한다 등의 정형화된 기준 이상의 추상적인 기대를 요구당하는 무리들이다. 또래들이 워너비의 꿈을 키우고 고연령의 언니오빠들이 지속적으로 지지하게 만들려거든, 해를 거듭해도 변함없이 신비롭고 사랑스러워야 한다. 그리고 이처럼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훈훈한 노래를 간간이 들려줘야 한다.
이민희 /쓰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한다. 슬픈 노래보다 시끄럽고 요란한 사운드에 더 쉽게 이끌린다. 오디오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TV 앞에서 버리는 시간이 더 많다. CD를 사는 것보다는 공연을 더 즐긴다. 팝과 록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음악보다 록커의 사생활에 더 관심이 많고, 록커보다는 아이돌 대소사에 더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글로든 말로든 또래 친구와 수다떠는 느낌으로 음악을 나누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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