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구라, 김성주, 이경규
“한번에 짧게 녹화해 왜곡 차단…출연자 정보 없이 솔직한 진행”
“이젠 공감할 수 있는 인물 섭외…이상한 사람 아닌 다른 사람들”
“이젠 공감할 수 있는 인물 섭외…이상한 사람 아닌 다른 사람들”
세 진행자가 말하는 ‘화성인 바이러스’
식당에 ‘여자친구’ 삼는 인형을 데리고 가 밥을 사주는 남자, 밥 대신 초콜릿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여자. ‘지구인’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화성인’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티브이엔·화요일 밤 12시10분)가 연일 화제다. 시청률도 1~3%로 케이블·위성채널로서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2009년 3월 시작한 뒤 살면서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독특한 사람들이 출연해 ‘지구인’과 소통했다. 일반인이 나온 프로그램 중에서는 드물게 조작 논란도 없는데다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녹화 방식 등 예능프로그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찰떡호흡’을 자랑하는 개그맨 이경규, 방송인 김구라, 아나운서 김성주를 만나 <화성인 바이러스>의 화제와 논란에 대해 물었다.
생방송 같은 녹화 왜곡방송 막아요
<화성인 바이러스>가 특별한 조작 논란 없이 지금껏 이어온 비결은 이경규가 매일 부르짖던 “녹화 빨리 끝내자”를 실천한 덕분이다. <화성인 바이러스>는 약 45분 방송을 1시간~1시간30분 녹화한다. 보통 예능프로그램들이 7~8시간, 길게는 12시간 촬영한 뒤 재미있는 부분만 편집해 내보내는 것에 견주면 이례적인 시도다. 웬만해서는 녹화를 끊어서 하는 일도 없다. 왜? 이경규가 귀찮아해서?
“아니에요. 하하하. 오랜 시간 녹화해서 웃긴 부분만 편집하면 재미는 있겠지만 이런 프로그램의 경우는 왜곡 우려가 커요. 출연자들이 화성인이 된 이유가 있고, 그분들이 말하는 사연엔 흐름이 있는데 중간에 잘라버리면 시청자들이 그 흐름을 읽을 수가 없어서 잘못 전달될 수도 있어요.”(이경규)
재미가 없어도 그냥 간다. 독특한 일반인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은 어떤 사람이 나오느냐에 따라 그날의 시청률이 결정되지만 진행자들이 억지로 개입해서 짜내거나 꾸미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미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해요. 우리가 억지로 그 사람을 부추겨 뭔가를 끄집어내면 출연자들도 방송에서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는구나 싶어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할 우려가 있어요. 30분 정도밖에 나오지 않을 분량이라면 30분에서 끝내요. 1시간 끌어내려고 억지 쓰지 않아요.”(김구라)
출연자 배려? 우린 인정사정없어요!
<화성인 바이러스>는 일반인이 나온다고 특별히 배려하지 않는다. 그나마 진행자 역할을 하는 김성주가 출연자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 진짜 화성인인지를 구별해야 하는 김구라와 이경규는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는다. 때론 독설도 불사한다. 남자에게 무조건 받기만 하는 ‘민폐녀’에게 “그럴 얼굴은 아닌데”라고 말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출연자들을 미워 보이지 않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대신 물어보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우리가 가식 없이 그대로 하니까 되레 그들을 이해하는 것 같아요.”(김구라) 이경규는 “출연자 정보는 녹화 당일 알게 되고, 녹화가 시작되어서야 마주하기 때문에 평소 우리 성격이나 가치관,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이 99% 솔직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출연자들도 진행자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경규가 지루한 내용에 하품을 하고 시계를 보면 “지금 재미없어서 그러시는 거냐”며 대놓고 쏘아댄다. 이경규는 “처음에는 우리를 보면 얌전해지던 화성인들도 이제는 만만치 않은 입담을 자랑한다”며 웃었다.
<화성인 바이러스>는 케이블 예능프로그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상파에서는 하지 못하는 소재를 자유롭게 하면서도 다른 예능프로그램과 달리 자극적이거나 화제성만 남발한다는 비난을 피해간다. “지상파에서 독하게 하는 정도로 가자고 한 것이 통한 것 같아요. 케이블이라고 무조건 자극적으로 가면 안됩니다. 처음에는 센 출연자들도 있었지만, 센 것보다 공감 가는 출연자를 섭외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아, 나한테도 저런 게 있어’라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지 너무 벗어나면 진정성이 없어집니다.”(이경규)
화성인이라서 행복해요
하지만 엠넷의 <텐트 인 더 시티>의 ‘명품녀’ 등 일반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조작 논란에 종종 휩싸인다. <화성인 바이러스>도 검증을 거듭하지만 지난 9일 출연한 ‘피부녀’가 피부과 원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보성 출연’ 의혹을 샀다. 이경규는 논란에 대해 “이는 화성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관리실을 한다고 남편하고 스킨십도 안 하고 아이랑 얼굴도 안 부딪히는 분이 어디 있어요. 그분은 미친 듯이 피부관리를 하는 점에서 화성인이죠.”
화성인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모두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는 것. 제작진이 섭외 요청을 하면 모두 “내가 왜?”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이 독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김성주는 “우리가 정의하는 화성인은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삶의 공통분모를 벗어났어도 행복하게 사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자기 성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깨어나라고 권한다. “간혹 병의 수준까지 간 사람들이 있을 때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해요. 여자들이 액세서리 하는 걸 너무 싫어하고, 자기 머리에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했던 출연자에게 실제 아는 정신과를 소개해준 적도 있어요. 나쁜 게 아니잖아요. 머리가 아프면 약을 먹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힘이 들면 한번 가볼 수도 있죠.”(이경규)
이런 화성인들 덕분에 진행자들의 사고방식도 달라졌다. “생각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이제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게 됐죠.”(김성주) 그런데 세 사람 중에는 누가 화성인일까? “성주! 독특한 행동을 많이 해요.”(이경규·김구라) “제가 볼 땐 형들이 이상한데….”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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