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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촘촘한 구성·현실감…한국형 의학수사물 통했다

등록 2011-02-07 18:10수정 2011-02-08 11:29

에스비에스 드라마 ‘싸인’
에스비에스 드라마 ‘싸인’
“죽은 자들의 친구” 법의관 소재
장항준 감독이 10년 묵혀 제작
부검 둘러싼 권력대립 축으로
실제 사건 차용해 대리만족도
에스비에스 드라마 ‘싸인’

“우리는 죽은 자들의 친구예요.”

에스비에스에서 방영중인 의학수사드라마 <싸인>(수·목 밤 9시55분)은 이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41) 감독은 10년여 전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한 여성 법의관을 만났다. 그때 법의관이 수줍게 말했던 한마디가 그의 뇌리에 박혔다. “죽은 자의 친구라니, 신선했어요.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겠다 다짐했죠.” 당시만 해도 법의관이란 직업이 생소했고, 주검을 부검하는 직업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2009년, 한 외주제작사 대표가 장 감독을 찾아왔다. 드라마를 제안한 그에게 장 감독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법의관 드라마를 제안했다. 제작사 대표는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고, 장 감독의 오랜 꿈은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로 빛을 보게 됐다.

10년 동안 숙성된 힘은 강했다. ‘한국판 시에스아이(CSI)’로 주목받으며 시작해 방송 10회에 접어든 <싸인>은 3일 시청률이 14%(에이지비닐슨코리아 집계)에 이르며 수목드라마 1위에 오르며 만만찮은 인기를 얻고 있다. 법의관의 세계를 다룬 최초의 지상파 드라마이자, <수사반장> 이후 드물게 성공한 수사드라마가 됐다. 초반 다소 느슨했던 전개가 7회부터 탄력을 받으면서 빠르고 촘촘한 구성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점점 뜨거워지는 추세다. <시에스아이> <엔시아이에스>(NCIS) <덱스터> 등 기발하고 다양한 외국 수사물들로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싸인>은 어떻게 “한국에서 추리물은 안 된다”는 징크스를 깰 수 있었을까.


에스비에스 드라마 ‘싸인’
에스비에스 드라마 ‘싸인’
■ 숨기는 자 vs 밝히는 자 <시에스아이>가 범행을 밝히는 과정이라면 <싸인>은 범행을 밝힌 뒤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싸움이다. 정부 등 외부의 압력에 부검 결과를 조작하는 이명한(전광렬)과 어떤 결과도 조작되어선 안 된다는 윤지훈(박신양)의 대립이 중심이다. 과학적 수사 방식 못잖게 부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조리한 권력과 현실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가 한-미-일 삼자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미군의 범행을 은폐하려고 부검 조작을 지시하거나, 이명한이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고 타살로 나온 부검 결과를 단순 사고사라고 말하는 장면 등에서 시청자들은 의혹만 가득한 채 묻힌 수많은 사건을 떠올린다. 한 시청자는 트위터에 “드라마를 보며 국과수가 외부의 압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증거를 조작할 수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고 썼다.

■ 싸인과 CSI, 무엇이 다른가 <시에스아이>가 매회 사건을 끝내는 것과 달리 <싸인>은 한 사건을 1회에 끝내지 않고 다음회 중간에 끝내며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여러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면서도 1회 나왔던 아이돌 스타의 죽음이 20회 전체에 걸쳐가며 또다른 이야기축을 이룬다. 매회 등장하는 사건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비슷한 소재로 만들어 현실감을 보탰다. 드라마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아이돌 스타 사건은 당대의 논란이었던 인기가수 ‘듀스’의 멤버 김성재 사망 사건을, 7회 미군이 한국인을 총으로 쏜 뒤 은폐하려 한 이야기는 이태원 패스트푸드점 살인사건을 절로 연상시킨다. 현실에서는 의혹이 해결되지 않았던 이 사건들이 드라마에선 통쾌하게 해결되면서 대리만족감을 준다. 현실을 꼬집는 듯한 대사도 화제다. 김은희 작가는 10회에서 나온 “당신이 미군이라서, 당신이 우리와 피부 색깔이 달라서 체포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다”라는 검사의 대사를 넣으려고 미군 관련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때론 잘리는 대사들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어.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어쩔 수 없어”라는 대사는 에스비에스 자체 심의에서 삭제됐다.

<시에스아이>가 최첨단 수사 기법 자체로 승부한다면 <싸인>은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더 맞춘 점도 차이다. 주인공 윤지훈과 고다경(김아중) 두 법의관의 관계에 초반 집중했고, 악역인 이명한 등도 그냥 악한 것이 아니라 악해지게 된 이유를 다루며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 선악 구도를 단순하지 않게 구성했다.

■ “현실은 시에스아이와 달라”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다 보니 실제와 다른 점이나 묘사가 엉성한 부분에 대해선 금세 시청자들의 지적과 비판이 날아든다. 법의관이 현장에 조사를 나가는 등 수사관 못잖게 활약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인 오류로 지적됐다. 하지만 제작진은 “실제 우리 법의관들이 바라는 이상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부검의가 현장 조사를 가지 않았는데, 최근 규정이 바뀌어서 이젠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젊은 법의관들은 정확한 부검을 위해 현장 조사를 하고 싶어하는데, 인력이 부족해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라마에서나마 극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돌 스타의 죽음에서 시작한 <싸인>은 10회를 넘어서며 대통령 후보와 정부 등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으로 커질 예정이다. 인간관계는 서툴러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부검대 위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부르짖는 윤지훈을 연기하는 박신양과 그런 윤지훈을 누구보다 신임하는 고다경 역의 김아중 등 주연배우의 탄탄한 연기와 안문숙 등 조연배우들의 맛깔스런 감초연기도 추리물의 정착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문제는 이번주 방영되는 11회부터 연출자가 장 감독에서 <외과의사 봉달희>를 연출했던 김형식 피디로 교체된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드라마 관계자는 “이제는 잔뜩 펼쳐놓은 이야기를 정리할 차례를 맞아 좀더 빠른 전개를 위해 연출자를 교체했다”며 “장 감독은 대본을 공동 집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 장항준 감독 인터뷰

“부검하듯 우리사회를 해부하고 싶었다”

장항준 감독
장항준 감독
톡톡 튀는 입담으로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로도 종종 출연하는 장항준 감독(사진)은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한 뒤 영화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연출과 각색으로 참여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해왔다. 지난해 케이블 티브이엔 <위기일발 풍년빌라> 극본을 썼고, 이번에 <싸인>으로 처음 드라마를 연출했다. <싸인>은 장 감독이 <그 해 여름> 등의 각본을 쓴 부인 김은희 작가와 1년 동안 사전 조사 및 대본 작업을 해왔을만큼 오랫동안 준비했다. 11회부터는 연출을 접고 김은희 작가와 대본작업한다.

“민감한 소재 가볍게 담으려해”
11회부턴 대본 공동집필 전념

톡톡 튀는 입담으로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로도 종종 출연하는 장항준 감독(사진)은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한 뒤 영화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연출과 각색으로 참여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해왔다. 지난해 케이블 티브이엔 <위기일발 풍년빌라> 극본을 썼고, 이번에 <싸인>으로 처음 드라마를 연출했다. <싸인>은 장 감독이 <그 해 여름> 등의 각본을 쓴 부인 김은희 작가와 1년 동안 사전 조사 및 대본 작업을 해왔을만큼 오랫동안 준비했다. 11회부터는 연출을 접고 김은희 작가와 대본작업한다.

-왜 법의관이란 소재를 골랐나?

“사람 살리는 의사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부검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리고 싶었다. 법의관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부검하느냐에 따라 유죄가 되고 무죄가 되지 않나. 그런데 정작 법의관들은 반대하더라.(웃음) 현실이 워낙 열악하니 무슨 이야기가 나오겠느냐는 것이었다. 부검 담당 법의관 30명이 1년에 3000~4000구를 부검한다. 드라마처럼 한 사건을 진지하게 물고 늘어질 여유가 없다. 이 드라마를 통해 환경이 달라지면 좋겠다.”

-미국 수사드라마들이 판치는 와중에 한국형 수사드라마로 승부할 자신이 있었나?

“<시에스아이>는 지상파에서는 시청률이 한자리였다. 마니아층과 젊은층이 주로 인터넷으로 열광했다. 단발성으로 사건이 끝나는 드라마는 한국에서 크게 인기를 못 끈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시에스아이>는 염두에 두지 않고 한국형으로 만들려고 했다. 어차피 <시에스아이>처럼 과학 수사 자체를 꼼꼼하게 만들기는 한국에서 불가능했다. 한국 드라마의 흡인력은 인물이 중심이다. <싸인>이 사건 위주로만 흐르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인물의 관계와 사연을 많이 집어넣었다. 또 국과수를 배경으로 우리 사회를 파헤치고 싶었다.”

-실제 법의관들의 반응은 어떤가?

“젊은 법의관들은 극중 윤지훈처럼 현장 조사도 나가고 싶어한다. 더 정확한 부검을 위해 현장에 나가 퍼즐을 맞춰야 하는데 인력이 없어서 못 나간다는 것이 국과수에 취재 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였다. 국과수에서 조작이 일어나는 것도 실제로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삽입한 건 국과수를 우리 사회라고 본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계급이 존재하고 서열이 생기지 않나. 부검 장면 촬영 때는 실제 법의관들이 나와 지켜보는 등 메스 위치까지 신경쓰며 자문해준다.”

-정작 부검 장면은 세밀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의학드라마에 나오는 외과 수술은 부검에 견주면 반창고 붙이는 수준이다. 뇌 샘플은 두개골을 갈라 뇌를 꺼내 자른다. 그런 장면을 다 보여줄 수는 없었다.”

-미군이나 대통령 후보 등 민감한 소재와 대사가 많다.

“위험한 선택이다, 하하. 진지하게 만들면 심각해지니까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안에서 가볍게 담으려고 한다. 극중 이명한은 우리 사회의 권력계통에 있는 사람들의 대변인 같은 대사가 많다. 막연한 악역이라기보다는 그럴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는 것으로 그리려고 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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