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허지웅의 극장뎐]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전쟁

등록 2011-03-06 20:33수정 2011-03-06 21:35

<실리콘밸리의 해적들>
<실리콘밸리의 해적들>
마틴 버크의 텔레비전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은 1999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과 그의 신제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악연을 다룬 이 영화의 짧은 프리미어 영상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영상이 끝나고 장내 불이 들어오자 익숙한 차림의 남자가 무대에 나타났다. 검은 터틀넥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그러나 잡스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잡스를 연기한 배우 노어 와일리였다. 그가 잡스의 흉내를 내기 시작하자 웃음과 환호 소리로 회의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때 무대 오른쪽에서 진짜 잡스가 나타나 외쳤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내가 언제 그렇게 했어!” 와일리는 “당신 아직도 총각은 아니죠?”라는 말을 남기고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그날 잡스는 무선카드가 장착된 아이북 G3를 발표했다. 그가 애플에 극적으로 복귀하면서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한 기획이었다.

텔레비전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은 많은 면에서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를 연상시킨다. 대표적인 아이티(IT)영웅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여기에는 탄생 비화와 인간관계, 이를테면 배신,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이야기가 주요하게 다루어진다. 영화의 만듦새는 꽤 인상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역사적인 1984년의 매킨토시 광고를 소개하는 대목으로부터 시작해, 1997년 바로 그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항복하는, 아니 동맹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는 근사한 캐스팅과 경쾌한 편집, 모나지 않은 흐름으로 관객을 (딱히 덕후가 아니더라도!) 사로잡는다.

이 영화에는 두 명의 화자가 존재한다.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워즈니악이, 빌 게이츠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스티브 발머가 등장해 (물론 배우가 연기하는) 극을 이끈다. 이런 전략은 극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는데 극 중 워즈니악의 신중함과 스티브 발머의 경박함이 흡사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감초 캐릭터들과 같은 효과를 만들면서 이미 잘 알려진 일화들마저 흥미롭게 볼 수 있게끔 유별난 박력을 빚어내는 것이다.

영화는 다양한 일화들을 집어내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폭군으로서의 스티브 잡스가 어떻게 회사를 키워내고 또 스스로를 망가뜨렸는지, 더불어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GUI 엔진을 어떤 경로로 입수해 윈도를 개발했는지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역시 잡스와 게이츠가 서로 퍼붓는 장면이다. 잡스는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운영체계를 그대로 베껴 윈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그러나 게이츠에게도 할 말이 있다. “넌 매킨토시를 베꼈어!” “너도 (제록스에서) 베낀 거잖아!” 잡스는 할 말을 잃는다. 게이츠는 자리를 떠난다.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은 존 스컬리에 의해 해고당한 스티브 잡스가 성공적으로 복귀한 이후 (애플 역사상 가장 불경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되는) 1997년 맥월드 엑스포의 기조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과거 매킨토시의 1984 광고에서 빅브라더의 얼굴이 가득 메웠던 바로 그 대형 화면에, 화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빌 게이츠가 떠오른다. 그날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의 주식 1억5천만달러를 매입했으며 향후 인터넷 익스플로어가 모든 맥 컴퓨터 라인의 기본 브라우저로 탑재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이후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끝이 아니었고 적자에 허덕이던 애플은 이 영화가 선보인 1999년을 기점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워낙 드라마틱한 인물들과 사연인 만큼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한번 영화화될 게 틀림없다. 결국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영화평론가

<한겨레 인기기사>

“묘한 기름값은 네탓”…계속되는 ‘폭탄돌리기’
대통령 ‘무릎기도’ 정교분리 위협
반찬·간식·나들이 줄여도…매달 지출은 늘었다
‘㎏당 100원’ 고단한 삶…서글픈 ‘폐지다툼’
‘로비 허용’ 정자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 추진
진화한 디도스…‘좀비피시’ 하드 파괴
장하준 “한국 정부 신자유주의 신봉, 종교에 가깝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