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는 남자]
얼마 전 한국방송 새 사가를 김수철이 작사 작곡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들어진 지 거의 반세기 만에 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보다 흥미로웠던 건 김수철이란 이름이었다. 그는 정규 음악작업 외에도 드라마 음악과 국가적인 행사 음악도 많이 맡았는데 1980~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나로선 그가 만든 드라마 음악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까 한국방송 <티브이문학관>의 어떤 에피소드라든가, 대하드라마 <노다지>와 자타공인 국민드라마였던 <사랑이 뭐길래>의 드라마 음악은 김수철이라는 가수와 드라마 음악에 대한 관심을 함께 자극했다. 덕분에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의 최경식이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고개숙인 남자>의 송병준, <코리아 게이트>의 신중현·신윤철 부자라든가 <파일럿>의 윤상,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최진영 같은 드라마 음악의 ‘감독’을 기억하게 되었다.
요컨대 그때는 드라마 음악도 영화 사운드트랙처럼 ‘작품’의 개념으로 여겨지곤 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21세기의 드라마 음악은 일정한 콘셉트의 앨범이 아니라 싱글 시장을 주도하는 음원으로 자리잡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의 드라마 음악이 싱글시장을 주도하게 된 맥락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한류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변화다. 여기에 2002년부터 디지털로 전환된 필연적 변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을동화>가 한류를 일으킨 이후 드라마 제작은 외주제작 중심으로 변화했는데 작품에 대한 판권은 방송사에 귀속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이때 제작사가 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사운드트랙에 국한되었는데 그로 인해 2007년 정도까지 드라마 사운드트랙의 투자가 이뤄졌다.
하지만 사운드트랙의 속성상 드라마 방영중의 단기효과를 누릴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제작비 대비 경제효과를 누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는데 그게 당대 인기 가수들의 싱글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굳어졌다. 90년대 말 드라마 삽입곡의 대표주자였던 서영은의 뒤를 이어 박효신과 백지영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아이돌의 해외시장 진입이 거세진 2007년 이후부터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드라마 삽입곡에 싱글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흥미로운 건 드라마 사운드트랙이 2000년 이후부터 진행된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것은 영화 사운드트랙이 거의 완전히 음악감독의 작업으로 자리잡은 것과 비교해서도 흥미롭다. 영화와 드라마의 속성 차이가 음악 작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만약 누군가 드라마 삽입곡이 차트를 점령한 걸 보면서 ‘좋은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면 그건 대중의 취향이 아니라 시장과 산업적 사이클의 변화가 야기한 결과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부분 시장이 왜곡되는 건 수용자들(혹은 대중 취향) 때문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공급자가 만드는 생태계의 변화 때문이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만약 누군가 드라마 삽입곡이 차트를 점령한 걸 보면서 ‘좋은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면 그건 대중의 취향이 아니라 시장과 산업적 사이클의 변화가 야기한 결과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부분 시장이 왜곡되는 건 수용자들(혹은 대중 취향) 때문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공급자가 만드는 생태계의 변화 때문이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