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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실력파 아웃사이더? 이런 피디도 있어야!

등록 2011-03-28 20:47

김용수 피디
김용수 피디
‘화이트 크리스마스’ 김용수 피디
단막극만 열세편 찍은 18년차
음악과 영상미·극 구성 돋보여
18년차 드라마 피디가 아직 미니시리즈 한편 연출하지 않았다면? 실력이 없어서? 귀찮아서? 20일 막 내린 한국방송 8부작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출한 김용수 피디(사진)는 지금까지 일일연속극은커녕 미니시리즈조차 연출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오로지 단막극만 13편을 만들었다. 8부작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김 피디가 연출한 가장 긴 작품이다. <추노>의 곽정환 피디가 극찬한 2005년 <황금숲 토끼>, 2007년 <은둔하는 북의 사람> 등 그가 연출한 단막극들은 거의 대부분 호평 일색이었다. 그런데도 왜? 단막극만 고집하는 이 괴짜 피디를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김용수 피디 연출작
김용수 피디 연출작
■ “이 사람이 내겐 박찬욱” “이 사람이 나에게는 박찬욱이고 김지운이다.” 단막극 마니아들은 김용수 피디를 이렇게 부른다. 두 감독처럼 그도 실험적인 영상을 많이 선보였다는 이유에서다. 폭설로 고립된 명문 고등학교에 갇혀 8일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특히 영상미가 화제였다. 하얀 눈 위에 검은 점처럼 쓰러진 여학생과 붉게 번지는 피, 몇 초 동안 정지된 듯 정적만 감도는 화면과 색감 등이 인상적이었다. 뮤직비디오처럼 대사를 줄이고 누가 범인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추리 과정은 긴장감 넘쳤다.

“지문 하나하나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게 힘들지만 너무 좋아요. 메시지는 대사가 아니라 장면으로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텍스트를 어떻게 그림으로 옮길 것이냐를 늘 고민합니다.” 김 피디는 피디가 된 뒤 오페라 연출을 배우러 이탈리아에 가서 정작 미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 다른 피디들과 달리 틈만 나면 미술관에 가고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광인 그는 자기 작품 속 배경 음악을 거의 대부분 직접 선곡하고, 영상도 음악에 최대한 맞춘다. “음악부터 골라 놓고 음악에 맞춰 콘티를 짭니다. 괜찮은 음악 선율이 50초짜리면 어떻게든 장면도 50초로 만들어요. 음악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고 동선을 짜면 다른 장면이 나옵니다.” 행위예술이나 유명한 미술 작품의 구도를 영상에 옮기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윤 선생이 죽는 장면의 전체적인 구도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 <죽은 예수를 애도함>에서 차용했다.

■ 나라고 스타 피디가 안 되고 싶었을까 처음부터 단막극만 연출하려고 입사하는 피디는 없다. 1994년 입사한 뒤 그도 잘나가는 드라마 피디를 꿈꿨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달랐다. “저라고 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미니시리즈를 하려면 시청률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할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드라마를 헐뜯는 게 아니라 그냥 저랑 안 맞았어요. 안 맞아도 해야 하는데 전 그러고 싶진 않았던 거죠.” 그래서 주로 단막극을 고집하는 그는 피디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 그의 고집에 한숨 쉬던 선배들과, 그의 실험정신을 부러워하는 후배들에게 이젠 ‘이런 피디도 있어야 한다’는 인정을 받고 있다.

“자의식을 갖고 접근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주로 현실을 드러내고 시대의 부조리를 꼬집는 드라마를 선호한다. 그도 미니시리즈를 하려 한 적이 있었지만 두번이나 무산되었다. “하나는 박정희 시대를 이제는 뛰어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고, 또다른 하나도 시대를 반영한 내용”이었는데 둘 다 기획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대신 단막극에서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자고 마음먹었다. “2005년 <황금숲 토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빗댄 독재자 이야기이고, 2007년 <은둔하는 북의 사람>은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사상 투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황금숲 토끼>는 세계가 독재자에 의해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내용이다.

시청률보다는 작품의 완성도를 따지고 대사보다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의 드라마는 때론 불친절하다는 평도 듣는다. “누군가 드라마국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하는 분위기가 되면 제가 될 것 같아 늘 두려워요. (웃음) 드라마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측면에서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통일된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한반도> 같은 미니시리즈는 너무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안 시켜줄 것 같아요.(웃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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