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오디션 프로 열풍 왜?
외모보다 실력, 공정한 규칙이 매력으로
"경쟁주의·평가만능주의" 부정적 시각도 출판사 편집자 천지현(32)씨는 지난 8일 밤 어머니로부터 ‘난데없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문화방송>의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위탄)에서 서바이벌 토너먼트에 오른 최종 12인의 생방송 경연이 있던 날이었다. 메시지 내용은 ‘백청강을 찍으라’는 것. 최종 도전자 12명 가운데 10명을 뽑는 실시간 시청자 문자 투표에서 자신이 미는 이를 찍어달라는 청탁이었다. 참가자 백청강씨는 중국 연변에서 건너온 스물세살의 록가수 지망생. 중국동포인 아버지는 한국에서 십수 년째 이주노동자로 일한다. 아홉 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홀로 지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백씨에게는 이제 숱한 ‘이모부대’가 생겨났다. 서울의 한 40대 직장인 역시 “이 방송을 보다가 ‘제발 ○○○를 찍어줘’라고 자녀한테 부탁해 뜻을 이뤘다”면서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워했다. 지금 텔레비전은 ‘서바이벌·오디션’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주인공들은 스타가 아니다. ‘이름 없는 일반인’들이 당당한 주역들. 시청자들은 단계가 거듭될수록 무명에서 주역으로 ‘점점 멋지게’ 환골탈태하는 그들의 성장에 열광한다. 인터넷에는 <슈퍼스타케이>(슈스케), <위탄> 같은 오디션 프로 참가자를 응원하는 팬사이트가 점점 늘어난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왜 ‘무명인’들의 향연에 매혹되는가. ■ 우후죽순…서바이벌 열풍 밑불을 지핀 건 지난해 말 경이적 시청률로 ‘슈스케 신드롬’을 낳았던 케이블방송 엠넷의 <슈스케>다. 올 봄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기는 케이블과 지상파가 따로 없다. 문화방송이 <위탄>(상금 3억원)과 아나운서 오디션 <신입사원>을 방영중이고 에스비에스는 연기자를 뽑는 <기적의 오디션>(상금 2억원) 글로벌 예심을 진행중이다. 직업 가수들의 서바이벌 경연 <나는 가수다>(나가수)와 <오페라스타>도 연일 화제다. 실업난 시대에 발맞춰 취업 오디션도 생겼다. 아리랑 티브이의 <컨텐더스>에 이어 한국방송도 1억원 상금과 취업 특전을 내걸고 인간능력 한계에 도전하는 일반인 서바이벌 프로 <도전자>를 6월부터 방영한다. <슈스케> 시즌3(상금 5억원)는 8월 방영을 목표로 촬영에 나섰다. <위탄> 시청률은 결선 토너먼트로 접어들자 20%선을 훌쩍 넘으며 치솟았다. 8일 12명이 대결한 생방송은 22.8%(수도권 26.9%), 다시 10명이 맞붙은 15일 생방송은 21.6%(수도권 25.8%, 이상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를 기록했다.
■ 인생 역전? “너는 나다” 시청자들은 노래 오디션을 즐기는 데 멈추지 않는다. 참가자들 중 한 명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투표를 통해 당락을 직접 결정짓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들 스스로가 참가자가 된 셈이다. <슈스케> 시즌3의 참가 지원자는 마감을 두 달 남긴 현재 벌써 130만명을 넘어섰다. <위탄>의 8, 15일 시청자 문자투표는 각각 172만여건과 130만여건을 기록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안방 화면에서 늘 접해온 얼굴이 아니다. 예쁘고 잘생긴 스타도, 기획사 시스템에서 ‘통조림 캔’처럼 엇비슷하게 조련된 아이돌도 아니다. 어릴 적 꿈을 접었거나 꿈을 위해 낮게 엎드려 사는 수많은 ‘나’들이 참가자들에게 ‘내 인생’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듬어진 사람들이 아니어서 신선했어요.”(38살 공무원 이아무개씨) “저희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이들이 점점 올라가는 게 뿌듯하더라고요.”(26살 대학 휴학생 박윤창씨) “저렇게 가난하게 힘들게 살았는데, 이건 기회인데 잡아야지 않겠나 이런 마음이 확 드는 거예요.”(천지현씨) 열성 시청자라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목마른 욕구를 이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들의) 사례로 보여준다”며 “이런 프로를 보며 (시청자들은)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 ‘경쟁’에 중독된 한국인? 오디션 프로 참가자들은 외모보다 실력 하나로 평가받는다. 시청자들은 이 사실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바깥의 현실과 달리 공정한 경쟁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직업가수들의 <나가수>가 무명씨들의 <위탄>과 달랐던 건 현실의 살벌한 경쟁 시스템처럼 패자부활전이 없었다는 점. 가수 김건모씨의 탈락 뒤 재도전에 대중들이 반발했던 것은 곧장 현실 사회를 투사시킨 대중심리로 읽힌다. 물론 <위탄> 같은 일반인 오디션 역시 높은 시청률 요인은 경쟁과 탈락이다. 그 사이에 자리한 건 ‘평가’다. 이런 맥락에서 ‘경쟁주의’, ‘평가 만능주의’에 중독된 한국인의 자화상이란 부정적 분석도 나온다. 정신분석학자 이명수씨는 “카이스트 사건처럼 이른바 1등만 하던 영재끼리 모아놔도 (줄을 세우면) 탈락자가 생겨난다”며 “서바이벌 프로의 홍수 속에 모든 사람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 잘하고 싶다…그 진정성의 드라마 뭐니뭐니 해도 시청자들은 “2~3분 짧은 시간 안에 터질 듯한 긴장과 떨림을 견디며 최선을 다하는” 참가자들에 감동한다. 정말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공감한다. 평론가 정여울씨는 “내 인생을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한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에겐 환상인데, (방송을 보면) 정말 감동을 준다”고 말한다. 이런 프로들의 확산은 시청자 참여 확대라는 순기능도 있다. 노래 오디션의 경우 “침체된 음악 장르를 활성화했다”(김용범 <슈스케> 피디)는 평가를 낳았다. 반면 “도전 자체가 부각되기보다는, 마치 로또처럼 너도나도 상금 액을 늘리면서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전진학 <도전자> 피디)도 나타나고 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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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역전? “너는 나다” 시청자들은 노래 오디션을 즐기는 데 멈추지 않는다. 참가자들 중 한 명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투표를 통해 당락을 직접 결정짓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들 스스로가 참가자가 된 셈이다. <슈스케> 시즌3의 참가 지원자는 마감을 두 달 남긴 현재 벌써 130만명을 넘어섰다. <위탄>의 8, 15일 시청자 문자투표는 각각 172만여건과 130만여건을 기록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안방 화면에서 늘 접해온 얼굴이 아니다. 예쁘고 잘생긴 스타도, 기획사 시스템에서 ‘통조림 캔’처럼 엇비슷하게 조련된 아이돌도 아니다. 어릴 적 꿈을 접었거나 꿈을 위해 낮게 엎드려 사는 수많은 ‘나’들이 참가자들에게 ‘내 인생’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듬어진 사람들이 아니어서 신선했어요.”(38살 공무원 이아무개씨) “저희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이들이 점점 올라가는 게 뿌듯하더라고요.”(26살 대학 휴학생 박윤창씨) “저렇게 가난하게 힘들게 살았는데, 이건 기회인데 잡아야지 않겠나 이런 마음이 확 드는 거예요.”(천지현씨) 열성 시청자라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목마른 욕구를 이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들의) 사례로 보여준다”며 “이런 프로를 보며 (시청자들은)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 ‘경쟁’에 중독된 한국인? 오디션 프로 참가자들은 외모보다 실력 하나로 평가받는다. 시청자들은 이 사실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바깥의 현실과 달리 공정한 경쟁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직업가수들의 <나가수>가 무명씨들의 <위탄>과 달랐던 건 현실의 살벌한 경쟁 시스템처럼 패자부활전이 없었다는 점. 가수 김건모씨의 탈락 뒤 재도전에 대중들이 반발했던 것은 곧장 현실 사회를 투사시킨 대중심리로 읽힌다. 물론 <위탄> 같은 일반인 오디션 역시 높은 시청률 요인은 경쟁과 탈락이다. 그 사이에 자리한 건 ‘평가’다. 이런 맥락에서 ‘경쟁주의’, ‘평가 만능주의’에 중독된 한국인의 자화상이란 부정적 분석도 나온다. 정신분석학자 이명수씨는 “카이스트 사건처럼 이른바 1등만 하던 영재끼리 모아놔도 (줄을 세우면) 탈락자가 생겨난다”며 “서바이벌 프로의 홍수 속에 모든 사람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 잘하고 싶다…그 진정성의 드라마 뭐니뭐니 해도 시청자들은 “2~3분 짧은 시간 안에 터질 듯한 긴장과 떨림을 견디며 최선을 다하는” 참가자들에 감동한다. 정말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공감한다. 평론가 정여울씨는 “내 인생을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한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에겐 환상인데, (방송을 보면) 정말 감동을 준다”고 말한다. 이런 프로들의 확산은 시청자 참여 확대라는 순기능도 있다. 노래 오디션의 경우 “침체된 음악 장르를 활성화했다”(김용범 <슈스케> 피디)는 평가를 낳았다. 반면 “도전 자체가 부각되기보다는, 마치 로또처럼 너도나도 상금 액을 늘리면서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전진학 <도전자> 피디)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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