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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나쁜 사회에 지친 시청자 착한 바보를 사랑하다

등록 2011-04-18 19:30수정 2011-04-19 08:33

<내 마음이 들리니>
<내 마음이 들리니>
‘동심’으로 바보연기 진화
주인공보다 더 인기 많아
시청률 1등 공신으로 꼽혀
드라마 속 ‘바보’ 캐릭터 열풍

요즘 시청자들은 1주일 내내 ‘착한 바보’와 산다. 평일에는 한국방송(KBS)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저녁 8시25분)에서 정신연령이 9살 수준인 안나(도지원)를 만나고, 토·일에는 문화방송(MBC)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밤 9시50분)에서 지능이 7살에서 멈춘 봉영규(정보석)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등장해 사랑받는다. 봉영규는 돈이 없다는 ‘작은 미숙’(김새론)에게 “난 또 일해서 벌면 된다”며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털어 준다. 가진 것 전부를 주고 양보하려는, 세상 물정 모르는 봉영규의 행동에 시청자들은 “순진무구한 모습에 내 마음마저 정화된다”며 좋아한다.

지능은 떨어져도 인정 많고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 속 ‘착한 바보’는 늘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엔, 주변 인물에 머물던 이들이 드라마를 이끄는 주류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웃어라 동해야>는 동해(지창욱), <내 마음이 들리니>는 우리(황정음)가 극의 중심인데, 시청자들이 주인공보다 오히려 영규와 안나에게 더 몰입해 무게중심이 자연스럽게 옮아갔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시청자들은 <웃어라 동해야>가 시청률 40%대를 넘은 일등 공신으로 안나를 꼽았다. 드라마 주인공보다 ‘착한 바보’에 감정이입한 이유는 뭘까?

순수한 인간이 주는 위로 문화방송 박성수 드라마국 부국장은 ‘착한 바보’의 인기를 “사기꾼 많은 세상에서 순수한 인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반영”으로 해석했다. 영악하거나 그악스러운 사람들이 잘살고 사건·사고가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드라마에서나마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의 시대를 꿈꾼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을 계산속으로 바라보지 않는 그들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는 “영규와 안나를 통해 머리를 굴리며 피곤하게 사는 내 생활을 깨닫고, 그것을 상쇄시키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 마음이 들리니> 시청자게시판에는 “영규가 딸 ‘작은 미숙’에게 건넨 대사 ‘작은 미숙아, 너도 학교 가면 내가 창피할 거지. 마루도 그랬어. 학교 다니고부터 나를 아빠라고 안 불렀어’를 들으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 내가 보여 울컥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장애를 넘는 맑은 마음 과거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바보의 어눌한 말투와 기상천외한 행동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그들의 순수한 내면과 때묻지 않은 생각에 오히려 주목한다. 바보 역에 대한 배우들의 표현도 달라졌다. 1972년 한국방송 드라마 <여로>의 장욱제(영구)와 1980년대 문화방송 <행복한 여자>의 문용민(호섭이)은 바보 연기로 사랑받은 대표적인 배우다. 이들이 연기한 바보는 주로 어눌한 말투 등을 강조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시선도 존재했다. 드라마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이유였다.

그러나 <내 마음이 들리니> <웃어라 동해야> 속 영규와 안나를 보면, 바보는 동심의 또다른 단어이다. 귀여운 아이와 같은 설정으로 과거 장애인 설정이 갖는 불편함은 한층 누그러졌다. 15일 <내 마음이 들리니> 촬영현장에서 만난 정보석씨는 영규를 “집이 가난하고 머리도 나빠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둔 상태에서 머문 아이로 생각했다”며 “단순히 장애를 지닌 캐릭터가 아니라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맑은 캐릭터”라고 강조했다. <웃어라 동해야>의 안나는 다소곳하고 예쁜 사람으로 나오는 등 극중에서 착한 바보의 외적인 이미지도 변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극중 엄마로 나오는 윤여정이 며느리가 된 김여진에게 “머리를 닮지 말고 얼굴은 영규 닮은 아이를 낳으라”고 말한 데서 보듯 영규는 잘생겼다.

‘착한 바보’ 막장을 허문다 시청률에 민감한 드라마 제작환경에서 불륜, 배다른 형제 등 막장요소를 오롯이 배제할 수는 없다. ‘착한 바보’ 드라마에도 이런 막장의 요소가 있다. 하지만 ‘착한 바보’ 그 자체가 막장성을 억제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승호와 김나운이 각기 정신지체로 나온 2004년 <부모님 전상서>(KBS2)와 2006년 <사랑과 야망>(SBS) 을 보면, ‘착한 바보’에 대비를 이루는 악랄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 <내 마음이 들리니> <웃어라 동해야>에서는 ‘착한 바보’와 대비를 이루는 욕망에 사로잡힌 가정이 등장한다. <내 마음이 들리니>는 장인의 사업을 물려받아 성공하려는 이기적이고 냉철한 최진철(송승환) 집안과 내 것을 다 퍼주는 봉영규 집안이 대비를 이룬다. <웃어라 동해야>도 자신이 가진 것을 뺏길까봐 안나가 재벌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숨기려고 애쓰는 윤새와(박정아)와 대비를 이룬다. 정보석씨는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욕망이 꽉 차 있는 쪽과 그런 욕심이 없이 있는 것 다 버려가면서도 가족을 챙기고 사람을 챙기는 쪽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한지 그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웃어라 동해야’
‘웃어라 동해야’

외모는 ‘덜떨어지게’ 연기는 ‘똑떨어지게’

바보 연기에도 규칙은 있다

1970년대에 방영한 <여로>(KBS1)의 영구(장욱제)부터 1980년대 <행복한 여자>(MBC)의 호섭이(문용민), 2006년 <안녕하세요 하느님>(KBS2)의 하루(유건), 2011년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영규(정보석)까지, 드라마 속 ‘착한 바보’들은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 있다. 예컨대 호섭이를 연기하는 문용민은 통통하고, 유건은 예쁘고, 영규를 연기하는 정보석은 날렵한 이미지인데 바가지 머리에 알록달록한 의상 등은 똑같다. 왜일까?

바가지 머리 <행복한 여자>에 나온 호섭이가 유행시켰다. 큰 그릇을 뒤집어쓰고 일자로 잘라 바가지 머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호섭이뿐 아니라 드라마 속 바보 역할은 대개 바가지 머리로 나왔다. <내 마음이 들리니> 봉영규도 바가지 머리다.

정보석씨는 “(바가지 머리는) 씻고 감고 그냥 놔두면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외모에 욕심이 없는 바보 역할은 머리를 감고 그냥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머리가 적당하다는 것이다. 머리가 길면 눈을 찌르고, 다른 머리 모양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욕심이 생긴 것이니까 캐릭터에 안 맞다. “눈 찌르기 전까지 길렀다가 눈 찌를 만하면 자르는 바가지 머리가 딱 맞습니다.”(정보석) 초록색과 주황색 등 주로 원색이나 화사한 색상의 옷을 입는 이유는 드라마에서 극중 순수하고 해맑은 착한 바보를 표현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연기가 돼야 바보 한다 장동건은 1997년 데뷔 당시 한 인터뷰에서 “바보 역할을 꼭 하고 싶다”고 했고, 윤은혜와 장서희, 고수도 인터뷰에서 바보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바보 역은 대부분 배우가 꼭 한번 도전하고 싶다고 손꼽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디들은 바보 역에 어떤 배우를 선호할까? 우선 연기를 잘해야 한다. 악역처럼 감정이 극에 달하는 역은 그 자체로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만, 바보 역은 웃는 표정 등 소소한 감정 표현에 능해야 한다. 또 편안한 이미지의 배우를 선호한다.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그대로 느껴지면서 변신이 가능한 배우를 꼽는다. 정보석, 신구, 이순재 등이 대표적이다. 문화방송의 한 드라마 피디는 “이미지 변신을 하겠다며 바보 역할을 욕심내는 이들이 있는데 연기력이 부족한 새침한 이미지의 배우가 바보 역할을 맡으면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착한 바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바로 ‘미안합니다’와 ‘고맙습니다’이다. 바보가 아닌 드라마 속 인물들이 잘 내뱉지 않는 대사들이다. 착한 바보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하기 어려운 말들을 드라마 속 ‘착한 바보’들은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착한 바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 여자만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다. 그들에게 사람의 마음은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늘 소중히 다뤄야 할 고귀한 것이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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