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들리니>
‘동심’으로 바보연기 진화
주인공보다 더 인기 많아
시청률 1등 공신으로 꼽혀
주인공보다 더 인기 많아
시청률 1등 공신으로 꼽혀
드라마 속 ‘바보’ 캐릭터 열풍
요즘 시청자들은 1주일 내내 ‘착한 바보’와 산다. 평일에는 한국방송(KBS)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저녁 8시25분)에서 정신연령이 9살 수준인 안나(도지원)를 만나고, 토·일에는 문화방송(MBC)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밤 9시50분)에서 지능이 7살에서 멈춘 봉영규(정보석)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등장해 사랑받는다. 봉영규는 돈이 없다는 ‘작은 미숙’(김새론)에게 “난 또 일해서 벌면 된다”며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털어 준다. 가진 것 전부를 주고 양보하려는, 세상 물정 모르는 봉영규의 행동에 시청자들은 “순진무구한 모습에 내 마음마저 정화된다”며 좋아한다.
지능은 떨어져도 인정 많고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 속 ‘착한 바보’는 늘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엔, 주변 인물에 머물던 이들이 드라마를 이끄는 주류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웃어라 동해야>는 동해(지창욱), <내 마음이 들리니>는 우리(황정음)가 극의 중심인데, 시청자들이 주인공보다 오히려 영규와 안나에게 더 몰입해 무게중심이 자연스럽게 옮아갔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시청자들은 <웃어라 동해야>가 시청률 40%대를 넘은 일등 공신으로 안나를 꼽았다. 드라마 주인공보다 ‘착한 바보’에 감정이입한 이유는 뭘까?
순수한 인간이 주는 위로 문화방송 박성수 드라마국 부국장은 ‘착한 바보’의 인기를 “사기꾼 많은 세상에서 순수한 인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반영”으로 해석했다. 영악하거나 그악스러운 사람들이 잘살고 사건·사고가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드라마에서나마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의 시대를 꿈꾼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을 계산속으로 바라보지 않는 그들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는 “영규와 안나를 통해 머리를 굴리며 피곤하게 사는 내 생활을 깨닫고, 그것을 상쇄시키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 마음이 들리니> 시청자게시판에는 “영규가 딸 ‘작은 미숙’에게 건넨 대사 ‘작은 미숙아, 너도 학교 가면 내가 창피할 거지. 마루도 그랬어. 학교 다니고부터 나를 아빠라고 안 불렀어’를 들으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 내가 보여 울컥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장애를 넘는 맑은 마음 과거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바보의 어눌한 말투와 기상천외한 행동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그들의 순수한 내면과 때묻지 않은 생각에 오히려 주목한다. 바보 역에 대한 배우들의 표현도 달라졌다. 1972년 한국방송 드라마 <여로>의 장욱제(영구)와 1980년대 문화방송 <행복한 여자>의 문용민(호섭이)은 바보 연기로 사랑받은 대표적인 배우다. 이들이 연기한 바보는 주로 어눌한 말투 등을 강조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시선도 존재했다. 드라마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이유였다.
그러나 <내 마음이 들리니> <웃어라 동해야> 속 영규와 안나를 보면, 바보는 동심의 또다른 단어이다. 귀여운 아이와 같은 설정으로 과거 장애인 설정이 갖는 불편함은 한층 누그러졌다. 15일 <내 마음이 들리니> 촬영현장에서 만난 정보석씨는 영규를 “집이 가난하고 머리도 나빠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둔 상태에서 머문 아이로 생각했다”며 “단순히 장애를 지닌 캐릭터가 아니라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맑은 캐릭터”라고 강조했다. <웃어라 동해야>의 안나는 다소곳하고 예쁜 사람으로 나오는 등 극중에서 착한 바보의 외적인 이미지도 변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극중 엄마로 나오는 윤여정이 며느리가 된 김여진에게 “머리를 닮지 말고 얼굴은 영규 닮은 아이를 낳으라”고 말한 데서 보듯 영규는 잘생겼다.
‘착한 바보’ 막장을 허문다 시청률에 민감한 드라마 제작환경에서 불륜, 배다른 형제 등 막장요소를 오롯이 배제할 수는 없다. ‘착한 바보’ 드라마에도 이런 막장의 요소가 있다. 하지만 ‘착한 바보’ 그 자체가 막장성을 억제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승호와 김나운이 각기 정신지체로 나온 2004년 <부모님 전상서>(KBS2)와 2006년 <사랑과 야망>(SBS) 을 보면, ‘착한 바보’에 대비를 이루는 악랄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 <내 마음이 들리니> <웃어라 동해야>에서는 ‘착한 바보’와 대비를 이루는 욕망에 사로잡힌 가정이 등장한다. <내 마음이 들리니>는 장인의 사업을 물려받아 성공하려는 이기적이고 냉철한 최진철(송승환) 집안과 내 것을 다 퍼주는 봉영규 집안이 대비를 이룬다. <웃어라 동해야>도 자신이 가진 것을 뺏길까봐 안나가 재벌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숨기려고 애쓰는 윤새와(박정아)와 대비를 이룬다. 정보석씨는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욕망이 꽉 차 있는 쪽과 그런 욕심이 없이 있는 것 다 버려가면서도 가족을 챙기고 사람을 챙기는 쪽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한지 그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사진 각 방송사 제공
‘웃어라 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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