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씨가 22일 <내 마음이 들리니?> 촬영현장에서 황순금 할머니 분장을 지우지 않은 채 활짝 웃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다작 이유? “1년 한 편으론 못 먹고살아”
최고의 배우다? “1등 매기는 것 촌스러워”
나만의 연기론? “교감·공감하면 잘한 것”
최고의 배우다? “1등 매기는 것 촌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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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황순금역 맡은 윤여정
황순금 할머니는 “염병, 지랄”을 입에 달고 산다. 시장판에 ‘고무 다라이(대야)’ 달랑 하나 놓고 채소를 팔아 자식들을 거둬 먹였다. 그 자식들은 누구? 지능이 모자란 바보 아들 봉영규(정보석), 딸이 ‘싸질러 놓고 간’ 손자 봉마루(남궁민), 지금은 세상에 없는 며느리가 ‘달고 온’ 손녀 봉우리(황정음)다. 마루만이 친손주일 뿐, 알고 보면 마루를 제 자식으로 알고 키워온 마루 아빠 봉영규 역시 할머니의 친아들이 아니다. 젊을 적 “주인집에서 바보 아들을 낳고 돈을 주며 키워달랬는데” 결국 제 품에 껴안은 자식이다. 며느리가 사고로 죽자 의붓손녀 봉우리에게 “이제 너랑은 남이니까, 나가라”고 밉살스럽게 굴었으면서도 그 뒤 16년을 한지붕 아래 품고 살았다.
배우 윤여정(64)씨가 연기하는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문화방송)의 황순금은 고되고 억센 삶 속에서 ‘모든 것을 껴안는’ 어머니다. 바보 아들과 결혼식을 앞둔, 귀가 멀어 말을 못 듣는 ‘새며느리짜리’(김여진)에게 “자식들 쑴풍쑴풍 낳으라”며 가랑이를 벌리고 아기 낳는 시늉을 해주는 장면에서 황순금 할머니의 신명은 시청자의 마음을 깊숙이 빨아들였다.
나이들수록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윤여정씨를 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내 마음이 들리니?> 촬영현장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고사하기로 유명한 배우이다. “모르는 사람하고 만나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겠어요. 무슨 신비주의를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요.” 역시 소문대로 직설이다. 안방 화면 속 그의 연기에 취한 시청자 중 한 사람으로 나선 기자 처지에선 그 얼굴을 직접 보는 것만도 반갑고 친숙한데? “그건 댁의 입장이고요.”
배우 윤여정의 다양한 얼굴은 황순금 할머니의 ‘희생적인 어머니’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가 출연한 영화 두 편(<하녀>, <하하하>)이 지난해 동시에 칸 영화제에 진출했으며 지지난해 말에는 영화 <여배우들>을 통해 굵직한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드라마에서도 지난해 일일극 <황금물고기>, 수목극 <즐거운 나의 집>, 올 들어 주말극 <내 마음이 들리니?>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다. 너무 다작을 하는 건 아닐까? “진실을 이야기해 줄게요. 오래 함께한 연출가가 부탁하면 하게 돼요. 고임금 배우들은 일 년에 한두 번만 해도 돼요. 그런데 (나이든 배우는) 한 번만 해도 일년을 (먹고)살 수 있는 개런티 안 줘요. 내 나이엔 선택지가 많지 않지. 골라서 하면 밥 굶어요. 칸에 간 건 좋았지만 윤여정이 고현정 되는 것 아니에요. 내가 꽃이 아니라는 걸 알죠. 조연이란 게 거름이죠. 거름에도 좋은 거름이 있는데, 우리를 똥 취급 할 때도 있어요. 여배우들이 서러울 때가 있어요.”
영화 <여배우들> 초입에서 구박받는 ‘나이든 여배우’의 상황이 실제로도 그럴까. 곧장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출연작 첫 방송 잘 안 보거든요. 드라마 초입엔 나랑 나 같은 조역들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데 이름이 맨 끝에 나와. 그럴 때 참 씁쓸해. 내가 일한 일 값, 거름 값은 줘야지 않겠나 해요. 이름 걸고 일하잖아요. 그러니까 존중받고 싶은 게 당연하죠. 이런 얘길 하면 제 이름 앞에 넣어달라고 꼴값한다고 그럴걸. 그래서 요즘 (젊은) 배우들이 자살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최정상에 있다가 인기 떨어지면 소속 기획사에서부터 대우가 달라지거든. 그래서 좌절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좌절 자체가 인생이거든. ‘똥’이 되면서까지, 끝까지 버티거든. 나는 일을 좋아하니까. 어떤 감독들은 드물게,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있어요. (<하녀>의) 임상수 감독 작품에는 그래서 굉장히 감동적으로 헌신적으로, 몸 바쳐서 일을 한답니다.”
윤여정씨 역시 드라마에서 숱한 엄마, 혹은 아줌마 역을 했지만, 그가 드러내는 엄마는 한국의 전형적인, 희생적인 어머니와는 조금 다르다. 육순을 넘긴 나이에도 때론 어머니보다 여자(<하하하>)를 드러낸다. 하층 계급의식이 몸에 밴 여자(<하녀>)였다가 지적이고 도회적인 여자가 된다. 그만의 연기론?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정답이 없어요. 사람들이 연기를 잘했다고 할 때는 그 사람들과 교감, 공감을 했다는 뜻이죠. 이 직업이 나도 잘 모르겠어요. 연기를 잘한다, 최고의 배우다. 이런 말이, 최고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싶고. 제가 어떤 건 잘하고 어떤 건 못하잖아요? 우리나라는 일등 매기는 것 좋아하잖아요. 촌스런 것 같아.”
연기 인생 후반기를 더욱 촘촘하고 화사하게 채워넣고 있는 이 배우에게 앞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물음을 던졌다. “여배우든 남배우든 잘생겼다는 것은 신이 준 보너스예요. 그런데 화무십일홍이죠. 나도 조금은 이쁘지(웃음). 나는 피부도 안 좋고, 목소리도 이래서 ‘거부감 1위’ 배우에 뽑히기도 했잖아요. 그 악조건을 넘으려고 했어요. … 내가 기억되고 싶다고 기억이 되겠어요? 모르죠. 어느 순간부터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알았어요. 육십이 넘으면서는 보너스로 산다 생각하고 ‘매일 지금을 살자’ 했어요. 지금을 살아요.”
그는 그 ‘지금’들을 빼곡히 쌓아가고 있다. <내 마음이 들리니?>를 마치면 임상수 감독의 차기작 <돈의 맛>에 참여한다. “(그간 해온 역에 견줘) 전혀 다른 여자로 나와요. 나쁜 여자, 돈 많은 나쁜 여자예요. 그것도 좀 무서워요. 돈 많으면 나쁜 여자로 그리는 것도. 이제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좀더 성숙한 자본주의로 가야지.(웃음)” 허미경 남지은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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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씨
그는 그 ‘지금’들을 빼곡히 쌓아가고 있다. <내 마음이 들리니?>를 마치면 임상수 감독의 차기작 <돈의 맛>에 참여한다. “(그간 해온 역에 견줘) 전혀 다른 여자로 나와요. 나쁜 여자, 돈 많은 나쁜 여자예요. 그것도 좀 무서워요. 돈 많으면 나쁜 여자로 그리는 것도. 이제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좀더 성숙한 자본주의로 가야지.(웃음)” 허미경 남지은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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