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TV보는 남자
1년 전 이사한 집에는 케이블 채널이 나오지 않았다. 일부 영화 채널은 나왔지만 엠넷이나 티브이엔 같은 엔터테인먼트 채널은 볼 수 없었다. 인터넷 누리집에서 부분적으로 보던 케이블 채널을 얼마 전부터 틈틈이 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새삼 깨달은 것은 케이블 채널, 특히 티브이엔의 위상 변화다.
물론 위상 변화라는 말은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아직도 케이블 채널과 선정성을 등치시키는 편견이 작동한다는 전제하에, 티브이엔의 <택시>(사진)나 <트라이앵글 시즌 2> <리얼키즈 스토리 레인보우> 같은 프로그램이 공중파의 예능 혹은 교양 프로그램이 미뤄놓은 ‘진정성’을 지향한다는 건 흥미롭다. 특히 티브이엔은 개국 초기부터 늘 선정성이란 단어에 시달렸다. 그런데 1년 전 즈음부터 변했다. 사람 냄새 나는 토크쇼를 지향하는 <택시>는 초기에 케이블 채널에 대한 선입견과 맞물려 큰 기대나 반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8일 방영한 ‘김완선 편’에서는 문화방송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서 이미 언급했던 김완선의 이모, 고 한백희씨의 묘소로 김완선을 태우고 가며 대화를 진행했다. 이 방송에서 현재 김완선의 매니저가 사촌동생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택시>가 게스트를 홍보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방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영자와 공형진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질문과 진행 덕분이다.
상금이 걸린 퀴즈쇼라는 점과 출연자의 만장일치, 상위 단계로 갈 때마다 모은 돈을 전부 걸어야 하는 진행 방식이 <트라이앵글…>을 선정적으로 보이게 하지만 진행자 남희석이 돈을 모두 날리고 무대를 떠나는 출연자들에게 ‘이걸 계기로 돈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하는 순간 <트라이앵글…>은 남다른 퀴즈쇼가 된다. 불로소득, 혹은 일확천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경험적이라는 점에서, 교훈적인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원생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보이는 <리얼키즈…>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등장해 좋아하는 짝을 찾는 구성은 수많은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을 유아들로 확장한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 스펙이나 외모를 강조하는 여느 예능 프로그램들보다는 나아 보인다.
케이블의 예능 프로그램들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최근의 변화는 공중파와 케이블의 대립구도(공영성 대 선정성)가 얼마나 신화적인지 깨닫게 한다.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에스비에스의 <짝>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의 유행에만 기댄 문화방송 <신입사원> <위대한 탄생> 등과 비교해볼 때 특히 그렇다. 사람이든 프로그램이든 그 정체성을 규정하는 건 타고난 태생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차우진/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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