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짝패’
혁명을 이야기 하지만 오늘의 한국사회 엿보는 재미도
‘서울뚝배기’ ‘서울의 달’ 등 쓴 김운경 작가 세계관 돋보여
‘서울뚝배기’ ‘서울의 달’ 등 쓴 김운경 작가 세계관 돋보여
나는 요즘 한편의 드라마에 빠져 있다.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중계방송하듯 써대는 인터넷 연예매체에서도 기사를 거의 쓰지 않을 만큼 화제가 별로 안되는 드라마이지만, 난 요즘 매주 월·화요일 밤이면 본방을 사수하고 있다. 문화방송 특별기획드라마 <짝패>(연출 문정수, 김희열 극본 김운경).
텔레비전에서는 “세상은 막장” “세상은 판타지”라는 듯 막장·판타지 드라마가 넘쳐나지만 <짝패>는 “막장·판타지 너머 새로운 드라마 세상이 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 특별기획드라마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특별한 것’이 있다. 다른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혁명적’ 것이 있다.
혁명을 이야기하는 사극
<짝패>는 제작진이 기획의도에서 표방한대로 전통 민중사극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드라마 분류방식에 따르기보다는 새로운 민중사극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에스비에스(SBS)의 <임꺽정>(1996년 1월~1997년 4월, 연출 김한영, 극본 유동윤)과 문화방송(MBC) <다모>(2003년 7월~2003년 9월, 연출 이재모, 극본 정형수) 같은 사극도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와 극심한 반상차별을 뒤집어엎으려는 이들의 활약을 그린 민중사극이긴 하지만 <짝패>는 좀더 본격적이다.
이 드라마를 기존 민중사극과 차별짓는 것은 가난하지만 선량하게 살았던 노비와 거지, 갖바치, 백정, 왈자패 등 소외된 민초들의 삶과 사랑까지를 정면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혁명주체 세력은 아래적(我來賊). 조선시대 기록에는 남았지만 실존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아래적’은 이 드라마를 통해 되살아나서 썩어빠진 세상을 뒤집으려 한다. 아래적의 두령 강포수(권오중)가 죽은 뒤 천둥(천정명)이 후계자가 되는 과정은 이 드라마가 말하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당대 세도가 양반집 김대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한날한시에 태어난 종의 자식 귀동(이상윤)과 신분이 뒤바뀌어 거지움막에서 자란 천둥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각고의 노력끝에 문무를 갖춘 상단의 행수에까지 오른다.
그의 자질을 눈여겨본 강포수는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아래적의 일원으로 포섭하기 위해 공을 들이나 그때마다 천둥은 무력을 통한 변혁노선을 거부한다. 강포수는 돈에 집착하는 천둥에게 말한다.
“너는 세상을 엽전구멍으로만 보려고 하느냐. 3정승 6판서가 모두 도적이다. 우리는 그돈을 빼앗아 원래 임자에게 돌려줄 뿐이다.” 그러다 어릴 적부터 연모하던 성초시의 딸 동녀(한지혜)가 관아를 탈주한 강포수를 백정출신이라고 천대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반상차별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양반의 피가 자랑입니까. 아씨 면전에서 내 몸안에 흐르는 더러운 피를 다 뽑아버리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한다. 그러면서 그는 강포수에게 “포수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제가 세상을 잘 몰랐습니다”라고 아래적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힌다. 강포수는 천둥의 자질을 의심하는 부하들에게 “천둥이는 돌이킬 수 없다. 운명이다”라고 자신의 후계자임을 유언하고 숨진다. 이 드라마는 혁명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천둥의 둘도 없는 친구인 정의로운 포교 귀동을 통해서 현실속의 개혁 노선도 들려줌으로써 더욱 현실성을 띤다. 아래적에 들어가기로 한 천둥이 귀동의 마음을 떠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천둥은 “자네는 민의를 알고 청렴한 사람일세. 굳이 그 구정물통에 있을 필요가 없잖나”라고 회유한다. 그러자 귀동은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나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도청 구정물을 퍼낼 수 있겠나. 악취가 난다고 코막으며 달아날 수 없네. 그럴수록 그 자리에 버티면서 백성의 억울함을 하나라도 더 풀어줘야 하네. 되든 안되든 부닥칠 수밖에 없네”라고 포도청에 남아 있을 뜻을 밝힌다. 현실속에 본듯한 장면 이 드라마를 기존 민중사극과 구별짓는 또다른 요소는 동시대성. 한 세기 훨씬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는 기시감을 맛보는 재미를 준다. 공포교(공형진)는 마치 스폰서 검사를 보는 듯하다. 공포교는 시전상인을 괴롭히며 막대한 부를 쌓은 왈자패 왕두령에게 뇌물을 받고 뒷배를 봐주면서도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무자비하게 군다. 왕 두령이 백주대낮에 천둥에게 암살당한 뒤 시전상인들이 “왕두령이 죽었어요”라고 환호하며 들고 일어서자 공포교가 포졸에게 조준사격을 명령하는 장면은 마치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신군부를 연상케 한다. 공포교는 포졸들이 총기발사 명령을 받고 “진짜로 쏩니까”라고 묻자 “공포를 왜 쏘느냐. 총알 아깝게”라며 사살강행을 명령한다. <다모>도 썩어빠진 세상을 갈아엎는 세상변혁을 이야기하긴 했다. <다모>의 정형수 작가는 2003년 9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성백(김민준)을 통해 장길산과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투영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1부 프롤로그에서 조세욱(박영규)이 벼랑 끝에 몰린 성백에게 “네놈의 길은 길이 아닌 길을 걸어온 게다”라고 하자 성백이 대꾸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길이라는 것이 어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사람이 다니고 두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을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려왔을 뿐이요.” 중국의 문호 루쉰의 한 구절을 인용한 이 대목은 <다모>의 진보정신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이상은 나가지 못했다. 무협지 같은 내용을 영화같은 화면으로 표현한 퓨전사극의 테두리에 머물고 말았다. 김운경의 힘 야구가 투수놀음이듯,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다. 그만큼 작가의 세계관이 깊숙히 구현되는 게 한국 드라마의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짝패>는 작가 김운경(57)의 30여년간에 걸친 드라마 세계가 응축된 결정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한지붕 세가족> <서울뚝배기> <서울의 달> <옥이이모> 등 1980~1990년대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김운경은 2000년대 이후 그런 서민성 때문에 점점 외면을 받았다. 현실 세계와는 크게 동떨어진 막장·판타지 드라마가 달콤한 세계로 시청자를 길들이는 사이에 그의 리얼리티 작가 정신은 여의도 방송가에서는 어느덧 퇴물취급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가 쓴 작품의 시청률도 한자리 수가 많았다. 그러나 역으로 그의 작가정신은 더욱 소중해진 게 아닌가 싶다. 그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이다. 시청률도 나쁘지 않다. 12~15%의 숫자가 이 작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김운경표 드라마의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짝패>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어보면 한 세기 훨씬 이전의 조선조 말기 서민들이 사는 이야기가 군데군데 빼곡이 박혀 있다. 그 이야기를 엿보는 게 오히려 더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나눔패의 청맹과니(겉보기에는 눈이 멀쩡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끼리 밥을 떠먹여주는 장면을 보고 못볼 것을 봤다는 장꼭지가 나중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른다”고 회개하는 장면이 그런 예다. 부패한 탐관오리를 척결하려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었다면 이 드라마는 그렇게 새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청자 문남수씨는 이 드라마 게시판에 “보통 대중들은 당하고 희생되는 것으로 그리는데 이 드라마는 (대중들이) 희생은 하나 숭고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극본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다만, 드라마의 투톱인 천둥과 귀동을 맡은 천정명과 이상윤의 연기는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시청자들을 확 끌어들이기엔 존재감이 약간 미흡한 느낌을 주는 게 아쉽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너는 세상을 엽전구멍으로만 보려고 하느냐. 3정승 6판서가 모두 도적이다. 우리는 그돈을 빼앗아 원래 임자에게 돌려줄 뿐이다.” 그러다 어릴 적부터 연모하던 성초시의 딸 동녀(한지혜)가 관아를 탈주한 강포수를 백정출신이라고 천대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반상차별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양반의 피가 자랑입니까. 아씨 면전에서 내 몸안에 흐르는 더러운 피를 다 뽑아버리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한다. 그러면서 그는 강포수에게 “포수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제가 세상을 잘 몰랐습니다”라고 아래적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힌다. 강포수는 천둥의 자질을 의심하는 부하들에게 “천둥이는 돌이킬 수 없다. 운명이다”라고 자신의 후계자임을 유언하고 숨진다. 이 드라마는 혁명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천둥의 둘도 없는 친구인 정의로운 포교 귀동을 통해서 현실속의 개혁 노선도 들려줌으로써 더욱 현실성을 띤다. 아래적에 들어가기로 한 천둥이 귀동의 마음을 떠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천둥은 “자네는 민의를 알고 청렴한 사람일세. 굳이 그 구정물통에 있을 필요가 없잖나”라고 회유한다. 그러자 귀동은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나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도청 구정물을 퍼낼 수 있겠나. 악취가 난다고 코막으며 달아날 수 없네. 그럴수록 그 자리에 버티면서 백성의 억울함을 하나라도 더 풀어줘야 하네. 되든 안되든 부닥칠 수밖에 없네”라고 포도청에 남아 있을 뜻을 밝힌다. 현실속에 본듯한 장면 이 드라마를 기존 민중사극과 구별짓는 또다른 요소는 동시대성. 한 세기 훨씬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의 한국사회를 보는 기시감을 맛보는 재미를 준다. 공포교(공형진)는 마치 스폰서 검사를 보는 듯하다. 공포교는 시전상인을 괴롭히며 막대한 부를 쌓은 왈자패 왕두령에게 뇌물을 받고 뒷배를 봐주면서도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무자비하게 군다. 왕 두령이 백주대낮에 천둥에게 암살당한 뒤 시전상인들이 “왕두령이 죽었어요”라고 환호하며 들고 일어서자 공포교가 포졸에게 조준사격을 명령하는 장면은 마치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신군부를 연상케 한다. 공포교는 포졸들이 총기발사 명령을 받고 “진짜로 쏩니까”라고 묻자 “공포를 왜 쏘느냐. 총알 아깝게”라며 사살강행을 명령한다. <다모>도 썩어빠진 세상을 갈아엎는 세상변혁을 이야기하긴 했다. <다모>의 정형수 작가는 2003년 9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성백(김민준)을 통해 장길산과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투영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1부 프롤로그에서 조세욱(박영규)이 벼랑 끝에 몰린 성백에게 “네놈의 길은 길이 아닌 길을 걸어온 게다”라고 하자 성백이 대꾸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길이라는 것이 어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사람이 다니고 두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을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려왔을 뿐이요.” 중국의 문호 루쉰의 한 구절을 인용한 이 대목은 <다모>의 진보정신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이상은 나가지 못했다. 무협지 같은 내용을 영화같은 화면으로 표현한 퓨전사극의 테두리에 머물고 말았다. 김운경의 힘 야구가 투수놀음이듯,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다. 그만큼 작가의 세계관이 깊숙히 구현되는 게 한국 드라마의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짝패>는 작가 김운경(57)의 30여년간에 걸친 드라마 세계가 응축된 결정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한지붕 세가족> <서울뚝배기> <서울의 달> <옥이이모> 등 1980~1990년대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김운경은 2000년대 이후 그런 서민성 때문에 점점 외면을 받았다. 현실 세계와는 크게 동떨어진 막장·판타지 드라마가 달콤한 세계로 시청자를 길들이는 사이에 그의 리얼리티 작가 정신은 여의도 방송가에서는 어느덧 퇴물취급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가 쓴 작품의 시청률도 한자리 수가 많았다. 그러나 역으로 그의 작가정신은 더욱 소중해진 게 아닌가 싶다. 그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이다. 시청률도 나쁘지 않다. 12~15%의 숫자가 이 작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김운경표 드라마의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짝패>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어보면 한 세기 훨씬 이전의 조선조 말기 서민들이 사는 이야기가 군데군데 빼곡이 박혀 있다. 그 이야기를 엿보는 게 오히려 더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나눔패의 청맹과니(겉보기에는 눈이 멀쩡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끼리 밥을 떠먹여주는 장면을 보고 못볼 것을 봤다는 장꼭지가 나중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른다”고 회개하는 장면이 그런 예다. 부패한 탐관오리를 척결하려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었다면 이 드라마는 그렇게 새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청자 문남수씨는 이 드라마 게시판에 “보통 대중들은 당하고 희생되는 것으로 그리는데 이 드라마는 (대중들이) 희생은 하나 숭고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극본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다만, 드라마의 투톱인 천둥과 귀동을 맡은 천정명과 이상윤의 연기는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시청자들을 확 끌어들이기엔 존재감이 약간 미흡한 느낌을 주는 게 아쉽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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