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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뽀로로·짱구…만화 주인공 왜 거의 다 남자야

등록 2011-05-20 21:42수정 2011-05-20 22:46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반에 남자 아이 15명, 여자 아이 16명, 그렇게 31명이 공부한다. 준서·륜하·수민이는 여학생이고, 소람·가원이는 남학생이다. 태권도와 검도를 배우는 여학생, 피아노와 발레를 배우는 남학생이 드물지 않다. ‘남자답다’ ‘여자답다’는 표현이 촌스럽게 들리는 요즘이건만, 아이들이 보는 티브이 속 세상은 현실과는 영 딴판이다.

어린이들의 대통령이라 해서 ‘뽀통령’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뽀롱뽀롱 뽀로로>(사진)는 <교육방송>에서 제작·방영한 뒤 국내 어린이 케이블채널은 물론 유럽, 남미, 중동까지 평정한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시즌3까지 나와 있다. 주인공 뽀로로는 모험가, 에디는 발명왕, 포비는 화가인데, (시즌1의)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루피는 만날 앞치마 두르고 쿠키 굽는다. 쿠키 굽는 직업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인기 만점 뽀로로마을에 여자 캐릭터가 한 명뿐인 것도 서러운데, 그 캐릭터가 하고많은 재능 중에 하필 ‘여자=집안일’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기에 딱 좋은 재능을 보유했다는 설정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시즌2에서 또다른 여자 캐릭터인 패티가 등장하자 루피는 패티를 질투하며 견제에 나선다. 여자는 질투를 않는다는 게 아니다. 펭귄, 북극곰, 여우, 비버 등 서로 다른 종이 어울려 사는 뽀로로마을은, 우정은 권장돼도 애정은 어색한 사회다. 굳이 막장 멜로드라마 같은 상황을 만들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진부한 편견을 유포할 필요가 있냐는 얘기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영국산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은 소도어섬의 주인인 ‘사장님’의 지휘 아래 부지런히 일하는 꼬마기관차들의 활약을 그린다. 소도어섬에선 사장님 말을 안 듣고 게으름을 피우면 벌을 받는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이 지배하는 이곳에서 기관차 에밀리를 제외한 대부분 캐릭터들이 남자라는 건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겠다. 이뿐이랴. <짱구는 못 말려>의 짱구,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스폰지밥, <포켓몬스터>에서 포켓몬마스터를 꿈꾸는 남자아이 지우…. 실수를 통해 배우고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는, 인기 티브이 만화영화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다.

스머프동산에 여자가 스머패티 하나뿐이라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내가 만화영화 주인공들의 ‘성별’을 가자미눈으로 보게 된 건 2년 전, ‘뽀통령’을 숭배하던 아들 녀석이 무심코 던진 말 때문이었다. “엄마, 나는 에디 같은 과학자가 될까, 포비 같은 화가가 될까.” 앗! 그렇다면 이 땅의 어린 딸들은, 어떤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역할모델 삼아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캐릭터가 있기는 한가. 짧은 치마에 에스(S)라인을 자랑하다 악당을 만나면 알몸 변신 신공을 펼치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에 환호하던 어린 날의 내가, 이제와 생각하니 부끄럽기보다 안쓰럽다.

이미경/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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