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와 샤이니 등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르 제니트 공연장에서 열린 에스엠타운 라이브 공연을 마친 뒤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수십억 투자해 한류지원…연예인 인권 문제는 소홀
불공정 계약 개선위한 표준전속계약서도 유명무실
불공정 계약 개선위한 표준전속계약서도 유명무실
지난 13일 공정거래위원회의 국회 업무보고.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연예기획사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로 구성된 ‘에스엠타운’의 프랑스 파리공연에 대해 방송 3사 등 각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던 시점에서,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떠들썩한 보도 이면에 감춰진 한국 연예산업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며 정부의 대응방식을 질타했다.
그는 “지난해 10월11일 8개 대중문화관련 협회로 구성된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회(문산연)는 동방신기 출신 제이와이제이(JYJ)에 대해 방송출연 및 섭외 등 일체의 행동을 자제시켜줄 것을 명기하는 공문을 각 방송사 및 연예관련 사업자에게 송부했다”면서 공정거래법 위반여부를 검토해달라고 질의했다,
“화려한 케이팝 유럽진출 이면에 제이와이제이 방송출연 금지”
동방신기 출신 3인이 13년간의 장기전속 계약과 가혹한 계약해지 조건의 부당함을 이유로 2009년 에스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문산연은 “문화산업의 질서와 근간을 흔든 것”이라며 사실상 3인의 활동 원천봉쇄를 요구하며 에스엠 지원에 나선 것이다. 법원은 당시 가처분 결정에서 “제이와이제이의 독자적 연예활동은 방해받아선 안된다”고 밝힌 데 이어 올해 초 방해할 경우 건당 제재금을 부과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박 의원은 지상파 방송3사 등 각 방송사가 문산연의 공문과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제이와이제이의 음악 방송출연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불공정행위를 질타한 것이다. 특히 한국방송은 예능국 이름으로 지난달 자사 홈페이지에 제이와이제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음을 공개적으로 명시했다가 물의를 빚자 부랴부랴 공식 입장이 아니라며 취소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박 의원은 “제이와이제이 사례 뿐 아니라 올해 초 그룹 카라의 해체 위기 등 연예산업에 있어 근본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간의 대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발생한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라며 “그러나 공정위의 대처방식은 매년 중소연예기획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서면실태 조사 이외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5년간 서면실태 조사를 제외하고는 공정위의 직권조사는 한차례도 없으며, 연예산업에 대한 시장구조 조사 및 연예산업 공정화에 대한 자체 조사·연구용역 의뢰 또한 한차례도 없는 등 정부의 시정노력이 미흡하다고 박 의원은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공정위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공정위가 연예산업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시정조처를 내린 것은 에스엠과 관련된 단 두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뭐하나”
공정위도 한국연예산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6월24일 세번째 서면조사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중소연예기획사가 사용하는 연예인 전속계약서 상에도 이전 두차례의 대형기획사 등의 조사에서 나타난 과도한 사생활 침해 등 다수의 불공정 사항이 유사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불공정 사례로는 연예인 소재 상시 통보 등 과도한 사생활 침해, 소속사 허락없는 활동중지·은퇴금지 조항, 소속사의 홍보활동시 강제·무상출연 조항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
공정위는 2008년 7~8월 10개 대형 연예기획사를 대상으로 한 1차 서면조사에서도 46개 조항에서 불공정 계약 사항을 찾아내서 204명의 전속계약서를 수정하도록 조처하는 등 세차례 조사에서 700명이 넘는 연예인 계약서를 시정하도록 요구했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2009년 7월6일 불공정 계약조상에 대해 자진시정을 유도하는 표준전속계약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박 의원은 “표준전속계약서를 (구속력 강화차원에서) 법령인 고시 수준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달라”고 공정위에 촉구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연예기획사의 불공정 계약관행을 근절하고, 연예산업 부분에서 공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표준전속계약서 내용중 계약기간, 수익배분, 연예인의 권한, 계약해지 조항 등 주요 내용을 고시·지침 등을 규정해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동수 공정위 위원장은 “알겠다”고 답했으나 실제 도입여부는 불투명하다. 공정위는 또 문산연의 공문발송행위에 대해 “소속 회원사의 사업내용 또는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였다면 이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 단체의 금지행위에 해당된다”면서 “현재 피조사인 및 관련 사업자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치고 서면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문화부, 수천억원 한류투자에 훈장까지
문화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정병국)도 한류지원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으나 연예인 인권이나 불공정 계약관행 시정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화부는 지난해 2월 세계 5대 콘텐츠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2013년까지 수출 78억달러의 ‘콘텐츠 한류’를 일으키겠다는 목표로 매년 3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문화부는 특히 한류수출을 위해 대형기획사를 직간접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에 대형기획사 소속인 빅뱅과 슈퍼주니어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카라 사태와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씨 죽음 등으로 연예인의 인권과 생계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던 상황에서 개최된 문화부 주최의 대중문화발전방안 토론회(3월25일)는 대형기획사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민 에스엠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연예매니지민터 분야의 분쟁은 전속계약, 인권, 공정거래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생겨나며, 그것을 다루는 기관도 법원, 국가인권위, 공정거래위 등 다양하다”고 지적하고 “분쟁을 해소하려면 업계 스스로 윤리위 등 조정기구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개입보다는 자율규제를 강조했다.
또다른 대형기획사인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양민석 대표도 “청소년 연예인의 인권이나 학습권은 기본법으로 이미 보호받고 있으며, 이를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이를 또다른 법령으로 규제하면 문제를 낳을 수 있으므로 실태 조사 등을 통해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규제강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비비시> 등은 케이팝의 경쟁력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노예계약’으로 일컬어지는 장기전속계약 등 한국 스타양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 <르몽드>는 에스엠타운의 파리공연 성공 이후인 지난 11일치에서 “음악을 수출품으로 만는 제작사의 기획으로 길러진 소년과 소녀들이 궁극적이며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를 팔고자 하는 한국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진출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장기간 합숙을 통해 댄스실력을 익히고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해 아이돌을 만들어내는 한국 연예산업과 이를 뒷바침하는 한국정부의 행태를 은근히 비꼰 것이다.
박선숙 의원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진출한 한류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장이 특정 기획사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이뤄지는 것이라면 경쟁력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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