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기생들의 삶을 들여다보겠다는 기획의도로 제작된 드라마 <신기생뎐>이 17일 끝났다. 오른쪽 위 사진은 <신기생뎐>에서 ‘권위적인 아버지’ 캐릭터인 아수라(임혁)가 장군 귀신에게 빙의되어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쏘는 장면. 오른쪽 아래 사진은 이 드라마에 등장한 동자 귀신이다. 에스비에스 제공
황당전개 ‘신기생뎐’ 종영
아무런 개연성 없이 빙의 작가 관심사 무리한 삽입
“비현실적 억지구도” 반발 시청률만 나오면 ‘노터치’
아무런 개연성 없이 빙의 작가 관심사 무리한 삽입
“비현실적 억지구도” 반발 시청률만 나오면 ‘노터치’
할머니 귀신에 장군 귀신, 동자 귀신까지…. 17일 막을 내린 <에스비에스> 주말극 <신기생뎐>은 개연성 없는 설정과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들 사이에 논란이 됐다. 이 드라마는 이현수의 동명 장편소설에서 기생집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이른바 이 사회의 ‘브이아이피’들을 상대하는 최고급 ‘전통 방식’의 기생집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 기생들의 삶을 재조명하겠다는 게 기획 의도였다. 이런 기본 설정도 비현실적이었지만 드라마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도 억지스러운 구석이 많았다는 평이다.
■ ‘신기생뎐’ 튀는 설정 특히 줄거리 전개와 상관없이 귀신이 등장해 일부 시청자들의 비난이 거셌다. 지난달 12일 방송분에서 할머니 귀신이 이 드라마 남자주인공 아다모(성훈)의 아버지 아수라(임혁)에게 ‘빙의’(귀신들림, 귀신에 씜)되더니 회를 거듭할수록 연이어 귀신들이 등장했다. 할머니 귀신 다음엔 장군 귀신에 씌고, 이 귀신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다시 동자 귀신에 빙의되는 식이다. 지난 9일 방송분에서는 장군 귀신에 빙의된 아수라가 눈에서 녹색 레이저광선을 쏘는 내용이 전파를 탔다. 극중 아수라는 저돌적인 성격에다 가족에겐 엄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그려지는 인물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 귀신에 씔 수도 눈에서 레이저빛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 드라마에선 인물의 삶이나 줄거리의 맥락과 연결되지 않는다. 별다른 사전 묘사 없이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별안간 할머니 귀신에 씐 뒤 이 가부장적 아버지가 머리에 파마를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애교를 떨며 웃는 등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할머니 귀신은 처음에 아수라의 아내 차라리(김혜정)가 베란다 커튼을 치려고 다가가자 갑자기 창문에서 등장했다. 귀신의 잇따른 등장 이후 시청률은 오히려 상승세를 타 20%를 넘어섰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황당한 전개라며 작가 하차까지 요구하며 반발했다. 종영을 하루 앞둔 16일 방송분의 시청률은 26.5%(에이지비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를 기록했다.
■ 욕하면서도 보게 하는 힘 <신기생뎐>의 작가 임성한씨는 종전 작품에서도 종종 논란이 되는 소재로 관심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보고 또 보고>(1998)에서는 겹사돈을 등장시켰고, <인어아가씨>(2002)에서는 주인공이 배다른 동생의 애인을 가로채고, <보석 비빔밥>(2009)은 자식들이 친부모를 내쫓는 설정 등으로 논란이 됐다. 임 작가의 작품은 ‘막장 설정’ 논란을 빚으면서도 1998년 방영된 <보고 또 보고>가 평균 시청률 45%를 기록하는 등 대부분 시청률이 높았다.
시청자로 하여금 ‘욕’을 하면서도 보게 하는 힘은 작가의 필력 덕분이기도 하다. 임 작가는 1997년 <문화방송> 단막극 극본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한 뒤 글 잘 쓰는 작가로 이름이 높았다. 임 작가를 잘 안다는 한 드라마작가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대사로 잘 풀고, 기승전결이 촘촘하다”며 “임 작가가 쓴 <베스트극장-웬수>(1997)는 드라마작가 지망생들이 교재처럼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겹사돈 등 현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임 작가 작품에서는 가능했고, 또 속생각을 소리내어 들려주는 독특한 대사처리 방식 등도 시청자에게 먹혔다”며 “여기에 인물들이 모두 감정에 충실한 점이 현실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을 속시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 자극적인 설정 왜? 시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임 작가의 장점은 2005년 <하늘이시여> 이후부터 점점 힘을 잃어 <신기생뎐>에서는 거의 발휘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하늘이시여>의 경우 어렸을 때 헤어진 딸을 며느리로 삼는 줄거리로 시청자 비난을 받았지만, 어머니와 딸의 사연이 극 전반부에서 펼쳐진데다 딸의 행복을 위한 모성애로 그려져 주시청층인 주부들을 사로잡을 만한 요인이 있었다. 그러나 <신기생뎐>의 잇따른 귀신 등장은 작가 개인의 관심사를 과하게 반영한 것이라는 견해가 방송가에서 나온다. 임 작가의 작품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는 문화방송 드라마국의 한 피디는 “작가 자신의 취향을 드라마에 무리하게 삽입했다”고 말했다. 작가가 무속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여자주인공이 신내림을 받는 설정을 담은 <왕꽃선녀님>(2004)을 집필하던 임 작가는 중간에 작가 교체를 당했다. 한 드라마작가는 “<왕꽃선녀님>에서 사람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는 설정을 삽입하려다가 작가 교체를 당하는 바람에 못했는데, 이번에 원 없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청률을 좇는 방송사도 자극적인 설정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방송 드라마국의 한 피디는 “논란 속에서도 시청률이 잘 나오면 어떤 내용이라도 받아들이는 방송사도 문제”라고 말했다. <신기생뎐> 제작을 총괄한 에스비에스 오세강 책임피디는 “우리가 보기에도 빙의 설정이 너무 자주 등장해 작가에게 내용 변경을 요구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빙의 설정은 극중 권위적인 아수라를 개과천선시키려고 등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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