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 큐티브이의 <순위 정하는 여자>(위)는 일본 아사히티브이에서 방영하는 인기 버라이어티프로그램 <런던하츠>의 한 꼭지인 ‘랭킹 더 스타스’(아래)의 포맷을 사서 한국식으로 만들었다. 큐티브이 제공
<문화방송>(MBC)의 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심사위원이 세 명인 이유는? 바로 다른 나라에서 ‘포맷’(틀)을 사서 한국식으로 만든 ‘포맷 수입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영국 <비비시>(BBC)에서 포맷을 사왔다. 비비시가 건넨 제작 설명서인 ‘바이블’을 보면, 심사위원은 세 명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포맷을 수입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들이 있다. 최근 케이블뿐 아니라 지상파에서 꾸준히 방영해 관심을 끄는 포맷 수입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제작되고 있을까.
■ 넘쳐나는 수입산 프로그램들 현재 방송 프로그램 중에는 <문화방송>의 <댄싱스타>와 <사소한 도전 60초>, <한국방송>(KBS)의 <1대 100>이 로열티를 주고 포맷을 들여온 수입산이다. 케이블의 경우 <티브이엔>의 <코리아 갓 탤런트>, <온스타일>의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8월20일 방영하는 <엑스티엠>의 <탑기어 코리아>, <엠비시에브리원>의 <마이 맨 캔>, <큐티브이>의 <순위 정하는 여자> 등이 이런 류의 프로그램들이다.
방송가에서는 최근 포맷 수입 프로그램들이 주목받는 배경으로 시청률 경쟁이 격화하고, 유튜브 등 인터넷 유통 영상물의 활성화로 더이상 다른 나라 방송 프로그램을 마냥 베낄 수 없게 된 점 등을 꼽고 있다.
■ 어떻게 들어오나 포맷 수입 프로그램들은 6개월~1년 단위로 계약한다. 기간 안에 제작해 방영하지 않으면 같은 나라의 다른 방송사에 포맷을 또 팔 수 있다. 수입 금액은 회당 로열티로 지급하는데 나라별로 다르지만 보통 회당 200만원에서 5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한국방송 영상산업진흥원이 2007년 발표한 ‘뉴미디어 콘텐츠 포맷 연구서’를 보면, 포맷 국제 유통시장의 전체 규모는 3조원이 넘는다. 이를 바탕으로 방송관계자들은 현재 시장규모가 4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 <비비시>(BBC) 프로그램의 포맷을 사서 방영중인 <문화방송>(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문화방송 제공
■ 가장 잘 만드는 나라는 한국? 포맷 수입 프로그램들은 카메라 수와 조명, 세트 등 제작 기법을 규정한 바이블 내용대로 만들어진다. <탑 기어> 바이블에는 진행자 세 명 중 두 명은 운전이 능숙해야 한다고 나와 있고,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춤을 추는 프로그램이라 카메라 각도 등 세밀한 지침까지 적혀 있다고 한다. 박영훈 피디는 “원작 제작진들이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검증된 방식이어서 대부분 바이블대로 제작한다”고 했다.
이 규정은 수입국의 현실에 맞게 변용되기도 한다. 국내에선 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댄싱 위드 더 스타>도 원작보다 도전자들이 어떻게 연습하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등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구성을 더 강조했다고 한다. <탑 기어> 민정호 피디도 “<탑 기어>도 원작보다 중고차를 새 차로 탄생시키는 등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선보여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포맷 수입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잘 변용해 만든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한국에서 변용된 포맷을 수입하겠다는 요청도 들어온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여성들의 수다 토크쇼 <순위 정하는 여자>(큐티브이)의 홍보담당자 임지은씨는 “원작을 만든 나라는 일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우리 방송의 포맷만 사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 포맷 수입은 창의력 저해? 시청률 지상주의가 판치는 국내 방송 환경에서 수입된 포맷들은 대체로 환영을 받고 있다. 인기를 검증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실패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서 성공했다고, 국내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티브이엔>의 버라이어티 쇼 <네버랜드>는 도서관에서 웃으면 때리는 식의 작위적 설정 탓에 한국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달 만에 종영했다. 검증된 프로그램만 찾다가는 실험성이 떨어지고 고유의 창작물 제작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과거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외국 프로그램을 베낀 것이 들통 나자 어쩔 수 없이 포맷을 사기도 했다”며 “남의 좋은 것만 가져와 쓰다가는 창의력이 떨어지는 만큼, 좋은 포맷을 만들어 수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프로그램 중에는 <우리 결혼했어요>(문화방송) 포맷이 터키에 수출됐고, <도전 골든벨>(한국방송) 포맷도 베트남에서 대학생 대상 퀴즈 프로로 제작한 바 있다. <롤러코스터>(티브이엔) 포맷도 중국에 팔렸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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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각 방송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