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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찬양할지언정 공감은 힘든 시티헌터

등록 2011-07-29 19:14

TV 보는 여자
그가 행한 일에 견줘 볼 때, ‘시티헌터’라는 별명은 스케일이 너무 작다. 탄생부터 기존 영웅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범죄자에게 가족을 잃은 뒤 개인적 복수심을 사회정의 실현으로 승화시킨 ‘도시의 고독한 영웅’이었다. 이런 점에서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 비교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티헌터의 아버지는 분단이 낳은 비극적 존재인 ‘북파공작원’이었다.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 죽음을 은폐한 것은 지나가던 강도가 아니라 ‘국가권력’이었다. 그러니 그의 복수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시티헌터는 고국 땅을 밟자마자 아이들 급식지원 문제와 군 납품 비리문제를 들춰내 국회의원과 여당 대통령 후보를 감옥에 보냈다. 사학재단 비리 문제를 해결하고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와중에 대학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했으며, 분식회계와 탈세, 계열사간 불법 출자 등을 통해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은 재벌 회장을 응징했다. 한편으로는 유해 환경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생긴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업의 파렴치한 행태를 고발했다. 의료민영화를 추진해 제 배를 불리려는 이들의 속셈을 까발리고 사학법 개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나라 구하는 일만 해도 이렇게 바쁜데 개인사도 만만치 않다. 헤어진 엄마 찾아 골수 기증하랴, 사랑하는 여자 납치되면 구출하랴, 키워준 양부 목숨 구하고 짬짬이 출생의 비밀까지 푸느라 ‘고독한 도시의 영웅’은 도무지 고독할 틈이 없다.

지켜보는 이들도 틈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긴 하되, 영웅의 분노에 ‘공분’을 느끼거나 그의 업적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갈채를 보낼 겨를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 찾은 고국이 비리백화점이고, 개인적인 복수에서 시작한 일이 뿌리를 캐보면 온통 ‘사회구조적 문제’로 얽혀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직면해도 그는 조금도 놀라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고뇌하며 성장하는 과정 없이 태초부터 모든 게 완벽한 존재. 영웅이라기보다 신에 가까울진대, 그를 찬양할지언정 ‘공감’하긴 힘들다.

게다가 시티헌터가 해결한 사건들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이 아니다. 이미 표면에 드러나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병폐다. 영웅이 도래해 단숨에 해치우는 걸 보면서 속 시원해 하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그런 문제를 놓고 ‘법으론 역부족이다, 시티헌터가 해답’이라며 장렬히 죽어간 대한민국 검사(김영주) 캐릭터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쨌든 고생했어요, 시티헌터. 남은 일은 우리가 투표 잘하고, 시민단체 후원하고, 가끔씩 촛불도 들면서 어떻게 해볼게요. 이미경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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