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처녀를 조명한 다큐 프로그램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엠비시 스페셜-노처녀가>,
‘노처녀가’ ‘어쩌다 보니…’ 등
잇따라 30대 비혼여성 조명
결혼 못해 안달난 모습 중심
다양성 못잡고 희화화 비판
잇따라 30대 비혼여성 조명
결혼 못해 안달난 모습 중심
다양성 못잡고 희화화 비판
“아 제발 노처녀 좀 그냥 내버려두세요.”
회사원 조은(39·여)씨는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속이 영 불편했다고 한다. 이른바 노처녀들이 왜 시집을 못 가는지를 짚는 다큐였다.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던 ‘노처녀’들이 최근엔 다큐물과 예능오락물의 ‘관심’을 부쩍 받고 있다. 지난달 15일엔 <문화방송>이 다큐 프로 <엠비시스페셜>에서 <노처녀가>를 방영했고, 지난달 23일과 30일엔 케이블채널 <티브이엔>이 역시 다큐 프로 <티브이엔 스페셜>에서 <어쩌다 보니 노처녀> 편과 <연애만 못하는 당신> 편을 연달아 내보냈다. 애인 없는 남녀가 짝을 찾는 과정을 담는 <에스비에스>의 리얼리티 예능프로 <짝>도 다음달 ‘노처녀-노총각 특집’을 방영할 예정이다.
<노처녀가>는 연극배우 세 명이 재연 형식으로 각각 30대 비혼 여성을 연기하며 결혼하고 싶어하는 노처녀의 일상을 보여줬고, <어쩌다 보니 노처녀>도 39살 여성을 등장시켜 결혼을 하려면 노력을 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노처녀를 소재 삼은 프로들은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과 삶을 보여주기보다는, 결혼에 목매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비혼) 여성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노처녀’를 ‘결혼시켜야 할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 노처녀와 사랑에 빠진 텔레비전? 노처녀는 드라마의 단골소재였다. 일찌감치 <올드미스 다이어리>(한국방송2)부터 <달자의 봄>(한국방송2), <결혼하고 싶은 여자>(문화방송), <내 이름은 김삼순>(문화방송)에 이어 최근에 방영한 <동안 미녀>(한국방송2) 등이 모두 30대 노처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돈 많고 잘생긴 멋진 남자’와 연애를 하고 일도 잘하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현실에서는 흔치 않은 내용으로 여성 시청자들을 대리만족시켰다. 이 드라마들은 여주인공들이 파티시에(<내 이름은 김삼순>), 디자이너(<동안 미녀>) 등 일을 통해 성공하려는 욕망도 그려냈지만, 결국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사는 판타지에 집중했다는 평이다.
■ 노처녀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 최근 방영된 다큐들은 드라마보다 더 노골적으로 ‘노처녀=결혼하고 싶은 여자’라는 공식 아래 노처녀들은 결혼을 못해 불쌍한 여자라는 편견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처녀가> 속 36살 홍보팀장 김지아씨는 대기업 간부로 고학력에 고연봉인 전형적인 ‘골드미스’이지만 싱글파티에서 짝을 찾지 못하자 자괴감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38살 가야금 강사인 곽명화씨는 나이 먹어서 (여자로서 가치가) 뚝 떨어진 것을 모르고 조건을 포기하지 못하는 등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어쩌다 보니 노처녀>는 1970년대 이후 경제 성장기에서 자란 딸들이 결혼보다 일을 중시하며 살고 있어 30대 비혼 여성이 증가했다는 원인 분석을 내놓았다. 혼자 사는 게 좋은 이유 등을 보여주며 균형은 잡았지만 결국 이 프로는 결말에서 주인공이 결혼을 하려면 노력해야 한다며 밤늦게 남자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 다양한 렌즈 아쉬워 <어쩌다 보니 노처녀>의 허은하 피디는 “노처녀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노처녀를 만나 보면 독신주의자가 거의 없어서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짝-노총각 노처녀 특집>을 연출하는 남규홍 피디는 “노처녀, 노총각은 결혼에 대한 절실함이 강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청자 김경아(35·여)씨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노처녀도 많은데 프로그램들이 노처녀를 결혼 못해서 안달난 여자처럼 다루는 것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노처녀가>를 보면서 왜 이렇게 노처녀를 지질하게 그릴까 의문이었다”며 “나이는 많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골드미스’라고 해서 새롭게 조명하는 흐름도 있는데 방송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뭔가 부족하거나 사회적으로 도태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티브이엔 스페셜-어쩌다 보니 노처녀>의 장면들
<티브이엔 스페셜-어쩌다 보니 노처녀>의 장면들. 각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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