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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추석때면 들통날 ‘며느리 천하’ 판타지

등록 2011-09-09 17:15

 문화방송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
문화방송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
TV 보는 여자
문화방송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에 나오는 300년 종택 ‘만월당’은 종가치곤 참 이상한 곳이다. 자그마치 4대가 모여 사는 이곳엔 가문의 대를 이을 남자가 한 명도 없건만, 가족들은 이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여기지 않는 모양새다. 일찌감치 세상을 뜬 할아버지와 아버지, 첫째아들은 어쩔 수 없다 치자. 사업에 실패한 뒤 해외로 도피한 둘째 아들이 필리핀에 그냥 눌러살겠다는 데도 가족들은 당장 쫓아가 잡아들이기는커녕 그저 ‘못난 놈’ 정도로 치부한다. 그가 ‘멸문지화’를 막을 유일한 카드인데도!

그리하여 만월당은 며느리 천하가 되었다. 젊어서 혼자된 시할머니 최막녀(강부자)와 시어머니 차혜자(김보연)를 비롯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첫째 며느리 오영심(신애라)과 졸지에 남편을 필리핀에 빼앗긴 둘째 며느리 한혜원(강경헌)까지. <불굴의 며느리>는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자처한 만월당의 젊은 며느리들이,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는 시어머니들”의 후원에 힘입어 헌헌장부 새신랑과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과정을 그린다. 종가는커녕 여염집에서도 꿈꾸기 힘든 파격적인 고부관계라 하겠다.

만월당 며느리들은 잘나간다. 첫째 며느리는 4살 연하의 재벌 2세 문신우(박윤재)와 교제중이고, 둘째 며느리는 문신우의 형이자 재벌가 장남인 문진우(이훈)와 결혼을 약속했다. 이들의 시어머니이자 자신 또한 며느리인 차혜자(김보연)에게도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보며 짝사랑해온 장석남(이영하)이 있다. 반면 만월당 딸들은 올케를 좋아하는 남자를 짝사랑하는 노처녀(임예진)거나 19살의 비혼모(김준형)이고, 아이 딸린 홀아비에게 호감을 느끼는(이하늬) 등 신세가 좀 처량하다.

‘때리는’ 시어머니는 없고 ‘말리는’ 시누이들은 만만하다 못해 처지가 안쓰러우니 만월당 며느리들은 세상 근심이 없을 것이나, <불굴의 며느리>는 여기에 며느리들의 해묵은 원한을 풀어주는 자상함까지 보탠다. 남편이 죽기 전 회사 여직원과 정분이 나는 바람에 마음을 다쳤던 오영심은, 그 여직원이 신랑감으로 점찍었던 문신우의 구애를 받는 쾌거를 이룬다. 둘째 며느리 한혜원은 학창 시절부터 자신을 은근히 얕보던 친구의 전남편을 차지함으로써 그간의 ‘무늬만 우정’을 응징한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 통쾌한 복수인가!

단 한 줌의 리얼리티도 허용하지 않은 채 오직 이 땅 며느리들의 판타지 충족을 위해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불굴의 며느리>는 종전 30~40% 선을 넘나들던 한국방송 일일드라마의 시청률을 20%대로 끌어내리며 문화방송 일일드라마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제작진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설령 며느리들의 자유연애가 허용되는 만월당이라 해도, 남편 없는 시댁에 살기를 소망하는 며느리는 없다. 며느리들의 진정한 판타지는, 시댁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다. 특히 명절이면 이런 소망이 간절해진다. 나만 그런가? 이미경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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