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은퇴에 방송가 비상
주력시간대 14개중 7개 강·유 두 엠시가 싹쓸이
시청률 압박에 의존 심화 “포맷개발·새 얼굴 찾아야”
주력시간대 14개중 7개 강·유 두 엠시가 싹쓸이
시청률 압박에 의존 심화 “포맷개발·새 얼굴 찾아야”
방송인 강호동(41)의 ‘잠정 은퇴’에 방송사들은 초상집 분위기다. 강호동이 진행하던 예능프로그램들은 존폐 기로에 놓였다. 강호동이 초대손님을 직접 인터뷰하는 <황금어장-무릎팍 도사>(문화방송)는 폐지가 불가피하다. 강호동이 가수 이승기와 함께 진행하는 <강심장>(에스비에스)이나 출연자의 재능에 기대는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스비에스)의 경우 진행자만 바꾸면 되는데도 강호동을 대신할 만한 진행자가 없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승기, 개그맨 이수근 등 5명이 끌어가기로 가닥을 잡은 <해피선데이-1박2일>(한국방송)도 강호동이 사실상 진행자 노릇을 했기에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강호동의 진행 능력이 뛰어났고 존재감이 컸다는 이야기지만,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이 너무 특정 진행자의 능력에만 기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의 목소리도 나온다. 포맷(형식)이 잘 갖춰졌다면, 진행자를 좀더 다양하게 기용했더라면 진행자 한 명이 활동을 중단했다고 방송 3사가 갈피를 못 잡는 사태까진 이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 ‘강·유 천하’와 시청률 조급증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은 현재 강호동과 유재석 ‘2인 천하’다. 지상파 3사의 평일 밤 11시대와 주말 오후 5~7시대에 방송하는 예능프로그램은 진행자 역할이 적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2개와 <우리 결혼했어요>(문화방송)를 빼면 14개다. 이 중 두 사람이 절반인 7개를 맡고 있다. 몸값도 비싸다. 강호동은 <1박2일>은 회당 900만원, 다른 프로는 1000만~110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유재석은 강호동보다 조금 더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방송사들이 이들을 기용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시청률 때문이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피디는 “강호동과 유재석은 일단 프로그램을 맡으면 제작진보다 더 열정을 가지고 고민하고 준비해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끈다”며 “시청률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두 진행자에게 기대면서 결국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올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좀더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을 즐길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청자 김해진(34)씨는 “유재석이 진행하는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은 여러 사람이 뭔가를 하는 비슷비슷한 형식이라서 그게 그거 같다”고 말했다.
강호동·유재석 쏠림 현상의 이면엔 물론 시청률 대박에만 목을 매는 방송사의 안일한 행태가 자리잡고 있다. <에스비에스>의 한 예능피디는 “회사는 모든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터져 주길 원한다. 열에 한 개 정도는 시청률이 높지 않더라도 의미있고 개성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실험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고 밝혔다. 이 방송사는 현재 주요 예능프로그램 8개 중 4개가 토크쇼일 정도로 장르 편식이 심하다. 잘나가는 포맷 따라하기도 시청률 조급증의 산물이다. <슈퍼스타케이>(엠넷), <위대한 탄생>(문화방송) 등 오디션 프로그램이 잘되자 에스비에스는 <기적의 오디션>부터 <일요일이 좋다-빅토리>, 12월에 방송할 <케이팝 스타>까지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연이어 편성했다.
프로그램이 안되면 3~4개월 만에 폐지하니 참신한 진행자를 발굴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문화방송>의 한 드라마피디는 “주연배우가 스타가 아니어도 대본과 연출이 좋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큰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당장 시청률이 안 나오면 문을 닫아야 하니 새 진행자를 발굴해보자는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강·유 천하의 균열 어떻게
상당수 피디들은 우리 시청자들이 유독 스토리(이야기)가 있는 예능을 좋아하기 때문에 강호동과 유재석 두 진행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보였다. 매회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가려면 제작진만큼 진행자 역할이 중요하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방송중에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잡아내 즉석에서 재미요소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호동과 유재석만의 특장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능 형식의 다양화와 참신한 진행자 발굴을 방치할 순 없다. 많은 피디들이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시청자의 마음을 끌 참신한 포맷이라면 굳이 진행자에게 기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피디는 “미국 등에서는 프로그램의 틀을 만드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진행자가 바뀐다고 폐지 위기를 겪진 않는다”며 “피디들 스스로 참신한 포맷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폐지된 미국의 인기 방송프로그램 <오프라 윈프리쇼>의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렸다. 우리 같으면 여러 프로그램을 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진행자보다는, 진행자를 포함한 포맷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가려 한다는 것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