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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능력과다’ 뱀파이어 검사 왠지 아슬함이 없네

등록 2011-10-21 19:37

배우 연정훈
배우 연정훈
TV 보는 여자
뱀파이어 역사상 가장 번듯한 직업을 가진 자가 나타났다. 게다가 이 자는 ‘국산’ 뱀파이어다. 케이블 채널 <오시엔>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시리즈 <뱀파이어 검사>(일요일 밤 11시)의 주인공 민태연은 서울지검 ‘검경합동특수부’를 이끄는 ‘검사’다. 민태연 검사는 베테랑 강력반 형사 황순범(이원종), 신출내기 후배 검사 유정인(이영아)과 함께 피 냄새 진동하는 살인사건 현장을 누빈다. 인간의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와 살인사건의 조합이야 흔하디흔하지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뱀파이어라니! 인간의 목에 송곳니 꽂길 거부하며 ‘헌혈’이라는 선의에 기대 인간과 공생하려 노력해온 착한 뱀파이어들에게 주류 사회 진입의 축복 있으라.

그 존재의 독특함 덕분에, 민태연 검사가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아내는 방법은 다른 범죄수사물과 확연히 구분된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민태연은 ‘피’에 담긴 사연을 읽는다. 그가 현장 곳곳에 흩뿌려진 핏방울을 노려보는 순간, ‘피해자의 마지막 순간’이 민태연의 머릿속에 엠티브이 뮤직비디오 동영상처럼 펼쳐진다. 그 동영상이 하필 피해자 중심으로 촬영돼 범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피해자의 피를 마시는 것. 시험관에 담긴 혈액 샘플이 민태연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심장에 도달하면, 민태연의 눈에 최후의 순간 피해자의 망막에 맺힌 ‘상’이 비친다. 범행 동기를 설명해줄 결정적 단서다.

지문 감식과 디엔에이 검사 결과를 신봉하는 미국 과학수사대 <시에스아이>의 길 그리섬 반장이나 희생자의 유골에 새겨진 각종 정보를 단서로 삼는 <본즈>의 법의학 박사 템퍼런스 브레넌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겠지만, <시에스아이> 시리즈의 성공 이래 ‘증거와 과학적 추론’이 수사물의 대세로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뱀파이어 검사>의 초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인 수사기법은 자못 신선한 구석이 있다.

문제는 이런 설정이 범죄수사물 특유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범인이 교묘히 은닉한 증거를 수집하고 드러난 단서를 퍼즐처럼 맞춰 가며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가는 아슬아슬한 재미가 부족하다. 민태연은 보통 인간처럼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다 자신의 의견을 수사 과정에 무리 없이 관철시킬 수 있는 권력마저 쥐고 있지 않은가!

뱀파이어 캐릭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인간이 갖지 못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인간의 존재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라는 데 있다. 불사불로의 존재인 뱀파이어는 인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고독한 주변인으로 살아간다.

주류 사회 진입에 성공한 최초의 뱀파이어 민태연에게 내가 큰 매력을 못 느끼는 건, 민태연을 연기하는 배우 연정훈(사진)이 매우 매력적인 아내를 둔 유부남이기 때문만은 아닌 게다.

이미경/대중문화 평론가, 사진 오시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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