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혁의 예능예찬
지난 1일. 종합편성채널이 탄생한 날. 예능 피디로서 걱정과 호기심이 교차했다. 기자들은 전화해서 ‘종편에 대한 입장과 전망’을 물었다. 사실 종편채널에 나오는 출연자도,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도 우리와 함께 일했거나 지금도 함께 일하는 ‘다 아는 사람들’이다. 어정쩡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파 피디들에게 종편에 대한 기억은 언론관계법(미디어법) 반대투쟁부터다. 많은 피디들이 여의도에 모여 보수 언론의 방송장악 반대를 외쳤다. 불과 2년 전의 기억이다. 그러나 언론관계법은 날치기 처리되었고 이전까지 편집실에만 갇혀 살던 피디들이 이번엔 경찰서에 갇혔다.
그로부터 1년 뒤. 이번에는 스카우트 열풍이 불었다. 누구는 7억! 누구는 10억? 평생 만져볼까 말까 한 돈들이 유혹했다. 전화를 받은 피디와 그렇지 않은 피디들 사이에는 묘한 어색함이 흘렀다. 누구와 상의하기도 애매하고 누구와 비교하기는 더 애매했다. 결국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각자 결론이 났다.
그러고는 정말 하나둘 떠났다.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그의 말과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말이 오갔지만 사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성공하길 기원했다. 그 후로는 연기자들과 작가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움직였다. 일부 출연자들의 출연료는 지상파의 몇배까지 치솟았지만 스태프들에게 돌아갈 제작비는 지상파에 비해서도 적은 양극단의 시장이었다. 끝없이 특혜가 있었고 좋은 채널을 나눠가졌다. 아직 내용 없는 기획서는 비싼 광고단가가 적혀 있었다. 그 단가표는 기업들한테 청구서가 되어 날아갔다.
그렇게 돈과 사람이 대충 모인 지난주.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꿎은 몇몇 연예인이 희생되었다. 종편들이 이미 갖고 있는 일간지, 스포츠신문, 잡지, 그리고 인터넷 매체들이 자화자찬을 위해 총동원되었다. 소설가 공지영씨는 종편채널의 출연자들에게 유감을 표시했지만 가장 먼저 발끈한 것은 불행히도 조중동이 아니라 해당 연예인을 사랑하는 팬들이었다.
그러나 아마 좀더 시간이 지나면, 지난 일주일 동안의 일들은 이 불편한 방송의 시작을 둘러싼 해프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들이 방송을 시작한 순간, 논의의 핵심은 그들이 만든 방송의 수준과 시청자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가수는 노래로, 연기자는 연기로 먼저 평가받아야 하는 것처럼 방송하는 사람들도 결국 방송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종편이 특혜 속에 탄생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드라마나 예능이 더 허접할 것이라는 주장은 좀 많이 창피하다. 좋은 영화가 반드시 더 좋은 환경과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다행인지 지금까지 종편의 프로그램은 별로 새롭지 않다. 보편적인 지상파와 개성있는 케이블 사이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대박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는 조중동이 싫어요’를 외치기에 앞서 내 프로그램부터 살리기 위해 더 머리를 쥐어짜고 더 많은 밤을 새워야 할 것이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만의 종편거부운동도 시작이다. 이만 편집실로 가야겠다.
에스비에스 <강심장> 피디
에스비에스 <강심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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