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작가 박상연(왼쪽)씨와 김영현씨를 16일 서울 여의도의 집필실에서 만났다. 두 작가는 세종이 한글을 왜 만들었으며 어떤 고민과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그리고자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뿌리 깊은 나무’ 김영현·박상연 작가
‘히트’ ‘선덕여왕’ 함께 작업
왕·밀본파·백성 긴장구도 속
시청자들 왕에만 감정이입
“세종 같은 왕 원해서인지…”
‘히트’ ‘선덕여왕’ 함께 작업
왕·밀본파·백성 긴장구도 속
시청자들 왕에만 감정이입
“세종 같은 왕 원해서인지…”
사흘 밤낮을 잤다고 했다. 마지막회 대본을 넘기고 나서다.
세종의 한글 창제담을 그리는 화제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45)과 박상연(39) 두 작가를 만나려고 지난 16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편에 자리한 집필실을 찾았을 때, 대본을 갓 탈고한 둘의 입에서 이구동성 쏟아진 말은 ‘잠’에 관한 것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21~22일 최종 23·24부 방영을 남겨두고 있다. 이 사극은 두 작가가 2007년 <히트>, 2009년 <선덕여왕>에 이어 세 번째로 공동 집필하는 작품이다. 두 작가는 이 드라마를 위해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한글 창제에 관한 연구 논문을 두루 훑었다고 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 삼았지만, 원작이 궁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관원 강채윤의 이야기였다면, 드라마는 두 작가가 세 명의 보조작가와 함께 격론 끝에 세종을 제1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다.
두 작가는 세종에 대한 시청자의 ‘일방적인’ 열광에 놀랐다고 했다. 김 작가는 “시청자분들이 그렇게까지 왕한테, 절대권력자한테 감정이입을 할 줄 몰랐다”고 표현했다. 박 작가는 “세종대왕은 저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시청자 마음속에 너무나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며 “세종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위대한 사람이 있을 수 있나” 감탄했다고 했다.
“사실 세종은 드라마 주인공으로는 별로예요. 주인공은 단점도 많고 실수도 많아야 하는데, 너무나 완벽하고 대의에 충실하신 분인지라.”(김)
“그래서 우린 생각했죠. 성공한 조선 사극 대부분이 인조시대예요. 그때가 나라가 제일 엉망이었죠. 세종대 기록을 보면 태평성대란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세상이 태평성대니까 세종의 마음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이분은 너무 괴로웠을 거라고요.”(박)
“무수한 트라우마와 강박증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다양한 일을 성취할 수가 있을까. 거기서 드라마가 시작했죠.”(김)
드라마는 세종의 한글 창제(1443)와 반포(1446)까지 3년, 그 사이의 한 시기를 다룬다. 왕권을 견제하려는 사대부 대표로 삼봉 정도전의 뜻을 잇는 밀본파 정기준(윤제문)을, 왕의 대표로 세종(송중기-한석규)을, 힘없는 백성의 대표로 똘복이 강채윤(채상우-장혁)을 설정했다. 이 삼각구도의 긴장을 드라마의 뼈대로 끌고가고자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연 결과 대부분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한 건 젊은 세종의 성장과 장년 세종의 성공이었다. “아무리 좋은 왕도 차악일 뿐이라는 시각에서 재상총재제를 주창하며 한글 창제에 반대한 정기준 쪽의 논리 개발에 온 힘을 쏟았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고도 했다. 태종의 학살로 아버지를 잃고 학살 장본인이 세종인 줄 알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어린 백성 똘복이 강채윤에 대해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저희 생각엔 백성이 자기 입장이 중요하지 지배자 입장을 존중할 이유가 없거든요. 시청자들이 백성한테 감정이입을 해주지 않을까, 그래야 비등비등하게 세 대결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로는 세종만 좋아하더라고요.”(김) “우리 세종한테 칼을 겨눠? 아무리 지 아부지가 죽었어도 그렇지. 어린 똘복이에 대한 반응이 그렇더라고요. 똘복이 너무 나댄다고, 친구들이 전화로 항의를 다 하더라니까요.(웃음)”(박) “저런 왕을 갖고 싶다는 마음일까, 아니면 내가 왕이라면 하고 몰입하는 걸까.”(김) “저런 왕을 갖고 싶다 아닐까요. 신데렐라 판타지처럼.”(박) “이렇게까지 감정이입을 하나? 왕한테 그렇게 당해왔으면서? 하지만 달리 보면 현대사회는 무엇인가 새로 창작해내는 사람이 주인공인 사회니까, 이도는 왕이기도 하지만 창작하는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유용하게 고맙게 잘 쓰고 있는 한글을 만든 분이잖아요. 그러니까 어린 똘복이가 젊은 세종한테 딴지 거는 것처럼 비쳐졌나봐요.”(김) 한국 드라마 작가에겐 1주일에 70분짜리 2회분을 집필할 수 있는 체력이 요구된다. 둘이 공동집필을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김 작가가 어느 날 ‘혼자 써봐야겠어’ 하면 ‘쓰세요’ 할 겁니다. 저 혼자 따로 작품을 쓰진 않을 거예요. 주 2회는 사람 잡는 거예요.”(박) “인간적으로 주 1회였으면 좋겠어요.”(김) 국내 최고 드라마 작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김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적성을 “뒤늦게 발견했다”고 했다. <문화방송>에서 1992년부터 <테마게임> <사랑의 스튜디오> 같은 예능프로그램 대본을 쓰는 구성작가로 6년 가까이 일하다, 서른셋의 나이에 “좀 더 오래 먹고살려고” 드라마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박 작가는 스물다섯이던 1996년 장편소설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로 등단해, 소설가와 드라마·시나리오 작가를 겸하고 있다. 영화 <고지전> 시나리오를 쓰기도 한 그는 “드라마 작업은 격무지만 작가에 대한 대우가 좋고, 영화계는 작가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주요 인물들의 운명과 관련해 놀라운 결말을 준비해놓고 있다. 그 비밀을 지켜달라고 두 작가는 신신당부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그런데 뚜껑을 연 결과 대부분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한 건 젊은 세종의 성장과 장년 세종의 성공이었다. “아무리 좋은 왕도 차악일 뿐이라는 시각에서 재상총재제를 주창하며 한글 창제에 반대한 정기준 쪽의 논리 개발에 온 힘을 쏟았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고도 했다. 태종의 학살로 아버지를 잃고 학살 장본인이 세종인 줄 알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어린 백성 똘복이 강채윤에 대해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저희 생각엔 백성이 자기 입장이 중요하지 지배자 입장을 존중할 이유가 없거든요. 시청자들이 백성한테 감정이입을 해주지 않을까, 그래야 비등비등하게 세 대결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로는 세종만 좋아하더라고요.”(김) “우리 세종한테 칼을 겨눠? 아무리 지 아부지가 죽었어도 그렇지. 어린 똘복이에 대한 반응이 그렇더라고요. 똘복이 너무 나댄다고, 친구들이 전화로 항의를 다 하더라니까요.(웃음)”(박) “저런 왕을 갖고 싶다는 마음일까, 아니면 내가 왕이라면 하고 몰입하는 걸까.”(김) “저런 왕을 갖고 싶다 아닐까요. 신데렐라 판타지처럼.”(박) “이렇게까지 감정이입을 하나? 왕한테 그렇게 당해왔으면서? 하지만 달리 보면 현대사회는 무엇인가 새로 창작해내는 사람이 주인공인 사회니까, 이도는 왕이기도 하지만 창작하는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유용하게 고맙게 잘 쓰고 있는 한글을 만든 분이잖아요. 그러니까 어린 똘복이가 젊은 세종한테 딴지 거는 것처럼 비쳐졌나봐요.”(김) 한국 드라마 작가에겐 1주일에 70분짜리 2회분을 집필할 수 있는 체력이 요구된다. 둘이 공동집필을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김 작가가 어느 날 ‘혼자 써봐야겠어’ 하면 ‘쓰세요’ 할 겁니다. 저 혼자 따로 작품을 쓰진 않을 거예요. 주 2회는 사람 잡는 거예요.”(박) “인간적으로 주 1회였으면 좋겠어요.”(김) 국내 최고 드라마 작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김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적성을 “뒤늦게 발견했다”고 했다. <문화방송>에서 1992년부터 <테마게임> <사랑의 스튜디오> 같은 예능프로그램 대본을 쓰는 구성작가로 6년 가까이 일하다, 서른셋의 나이에 “좀 더 오래 먹고살려고” 드라마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박 작가는 스물다섯이던 1996년 장편소설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로 등단해, 소설가와 드라마·시나리오 작가를 겸하고 있다. 영화 <고지전> 시나리오를 쓰기도 한 그는 “드라마 작업은 격무지만 작가에 대한 대우가 좋고, 영화계는 작가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주요 인물들의 운명과 관련해 놀라운 결말을 준비해놓고 있다. 그 비밀을 지켜달라고 두 작가는 신신당부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