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혁의 예능예찬
솔직히 의도는 불순했다. 연말에 상도 받고 한껏 들뜬 연말을 보냈으나 새해 첫 출근을 하자마자 당장 다음주 섭외가 걱정이었다. 이런 와중에 아직 <강심장>에 한번도 출연하지 않은 김제동은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는 게스트다. 그런 그가 ‘토크 콘서트’라는 공연을 하고 있었다. 요즘에 정치인들뿐 아니라 저명인사들도 많이 하는 토크 콘서트의 원조 격인 공연이다. 이미 공연 축하 화환은 하나 보내놨으니 직접 가서 눈도장만 찍으면 섭외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채 작은 콘서트장을 찾았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 이 공연. 상당히 재밌다. 일단 김제동이 공연을 하게 된 상황부터 코미디다. 그는 심증은 가나 물증은 없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에서 하나둘 하차했다. 잘나가던 엠시가 티브이가 아닌 소극장 무대에 쓸쓸히 서야 했다. 그는 트위터에 투표소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고 검찰에 고발당했고 곧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김제동이 탐탁지 않았던 윗분들은 공연을 위해 끝없이 새로운 소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미 고전이 된 보온병을 든 여당 대표를 비롯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최효종 고소사건에다 급기야 소방관의 관등성명에 집착하는 도지사까지 등장해 주셨으니 공연장에는 웃음이 넘쳐난다.
객석을 둘러보니 더 놀랍다. 유명한 재벌 총수가 직접 직원들과 함께 관람하고 있었다. 잘나가는 음반 제작자도 있고 스님들도 있었다. 게스트로는 배우 황정민이 출연했다. 이념적 성향과 사회적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은 코미디 같은 지금의 현실 정치를 비틀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이날은 이 콘서트가 3년 만에 100회를 맞이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한해, 국민들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준 것은 티브이 속 예능프로그램들뿐 아니라 티브이 밖의 새로운 시도들이었다. ‘나는 꼼수다’, ‘청춘콘서트’, ‘토크 콘서트’는 사람들을 웃고 울렸다. 현실은 답답한데 방송은 그 현실을 외면하고 있으니 대중은 티브이 밖에서 새로운 웃음을 찾았다.
매주 500만명이 듣는다는 ‘나는 꼼수다’는 사실 출연자들의 캐릭터나 유행어들, 각종 테마송, 뜨거운 팬덤까지 웬만한 예능프로보다 훨씬 더 예능적이다. 이렇게 티브이 밖에서 새로운 웃음이 빵빵 터지고 있을 때, 티브이 속의 예능은 심의를 피해 간간이 자막 한 줄 날리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티브이 밖의 예능에 왜 열광하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티브이 속의 예능은 점점 더 초라해질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온 그날 밤, 김제동의 유일한 방송인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사진)에서는 박근혜 편이 방송되고 있었다. 대체 누가 누구를 ‘힐링’해야 하는 건지 참 애매한 이날 방송에서 김제동은 무대에서처럼 강력한 입담을 쏟아내지 못했다. 사실 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김제동은 ‘새로운 예능 트렌드에 맞지 않아서 강호동, 유재석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김제동은 티브이 밖에서 누구보다 앞서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게 아닐까. 혹시 평범한 예능프로그램들은 그를 담기에는 어느덧 너무 작아진 게 아닐까. 그를 섭외하려는 애초의 불순한 의도는 일단 실패로 돌아갈 듯하다. 에스비에스 <강심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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