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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홍대 뒤풀이’서도 노래한 음유시인 데미안 라이스

등록 2012-01-12 14:29수정 2012-01-12 17:04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
편안한 열정으로 배낭족처럼 내한한 데미안 라이스
관객들 70~80명 무대위에 둘러앉아 ‘떼창 공감’
공연장 찾은 타루와 ‘깜짝 무대’ 선보이기도
“여행 가는 기분으로 한국을 방문할 겁니다.”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가 지난해 말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을 때만 해도 의례적 표현이겠거니 여겼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매니저도 없이 배낭과 기타 한대만 메고 배낭여행객처럼 왔다.

그는 “원래 꽉 짜여진 투어 일정과 대규모 프로덕션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지난해 가을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하던 차에 한국공연 제안이 와서 즉흥적으로 수락했다”고 털어놨다. 월드투어 도중이 아님에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이유다. 팬들은 예매 개시 첫날 매진으로 그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

11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앞은 여자끼리 혹은 연인끼리 온 관객들로 북적였다. 혼자 온 여성 관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영화 <클로저>에도 삽입된 ‘더 블로어스 도터’로 대표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성 포크를 기대하는 이들의 얼굴에선 붉은기가 돌았다.

홀로 무대에 오른 데미안 라이스의 행색은 예상 밖이었다. 머리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물빠진 낡은 청바지에 풀어헤친 셔츠, 갈색 재킷 차림이었다. 어깨에 멘 기타는 낡아서 구멍이 나 있었다. 기타줄을 튕기며 ‘델리킷’ 등을 노래하기 시작하자 객석은 숨소리 하나 놓칠세라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기타를 내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2집 수록곡 ‘나인 크라임스’를 불렀다. 한때 연인이었던 리사 해니건과 듀엣으로 부른 곡이지만, 이제는 1인 2역으로 불러야 했다.

첼로 전주가 인상적인 ‘볼케이노’를 부를 땐 입으로 “더런~ 다라~” 소리를 내어 첼로를 대신했다. 그는 갑자기 “한국인들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궁금하다”며 관객들을 무대 위로 불러 올렸다. 순식간에 70~80명이 모여들어 그를 둘러싸고 앉았다. 원곡에서 역시 리사 해니건과 함께 불렀던 ‘볼케이노’는 관객들과의 합창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성과 진성을 넘나들며 때론 속삭이고 때론 절규하는 목소리는 변화무쌍했다. 때론 투명하게 울리고 때론 이펙터를 타고 지글거리는 소리를 토해내는 기타도 변화무쌍했다. 둘의 조합은 웬만한 밴드보다 더 강렬한 카리스마로 4000석 규모 공연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처음엔 음향사고인 줄 알았다. 마이크와 앰프가 갑자기 꺼졌는지 ‘캐넌볼’을 부르는 목소리와 기타 소리가 날것 그대로 들려왔다. 작지만 깊은 울림은 곧 공연장 전체를 감쌌다. 마치 그가 조그만 방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듯했다. 관객들은 속삭이듯 따라불렀다. 기타를 내려놓은 그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일부러 음향장비 스위치를 내린 건 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무대에서 예고 없이 흘러나온 ‘콜드 워터’, 요절 가수 제프 버클리의 음색을 떠올리게 한 ‘할렐루야’, 학수고대하던 대표곡 ‘더 블로어스 도터’로 앙코르 무대까지 막을 내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자 하나가 걸어나오더니 무대 한켠에 마련된 탁자에 데미안 라이스와 마주앉았다. 와인 여러 잔을 연거푸 건배하고 들이키더니 여자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홀로 남겨진 데미안 라이스는 쓸쓸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치어스 달링’을 부르며 가로등 아래 벤치에 드러누웠다. 짧은 상황극을 곁들인 마지막 곡은 ‘히든 트랙’ 같았다. 여자는 공연 보러 왔다가 즉석에서 섭외된 가수 타루였다.

‘보너스 트랙’까지 있었다. 공연 끝난 지 한참 지난 뒤에도 관객 수십명이 공연장 주위를 서성이자 데미안 라이스가 대기실을 뛰쳐나가 즉흥 길거리 공연을 한 것이다. 서울 홍대 앞 술집의 뒤풀이 자리에서도 그는 장식으로 벽에 걸어둔 기타를 꺼내 치며 노래했다고 한다. 그는 “새 앨범 내고 투어 돌 때 한국에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고 공연 주최쪽 관계자는 전했다. 비슷한 시간 트위터에선 “근래 본 내한공연 중 최고”라는 극찬이 밤새 이어졌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현대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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