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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MBC 예능프로의 ‘이유있는 결방’

등록 2012-02-09 21:11수정 2012-02-10 11:40

‘무한도전’
‘무한도전’
박상혁의 예능예찬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은 더 나은 방송을 향한 <문화방송>(MBC) 파업에 대한 타 방송 예능피디의 지지, 연대, 찬양, 고무, 제3자 개입(?) 등을 위한 것이다. 지난 주말부터 <무한도전>(사진), <우리 결혼했어요> 등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파업의 여파로 줄줄이 결방했다. 시청자의 볼 권리를 뺏어갔다는 비판과 공정방송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응이 맞서고 있다.

사실 파업과 예능은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웃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색하고 구호를 외쳐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피디란 직업 자체가 파업하기 참 힘들다. 피디는 회사에서는 노동자이며 조합원이지만 프로그램 안에서는 다른 많은 제작진에 대한 고용주이자 사용자다. 자신의 노동만 거부하면 되는 다른 직종에 비해 피디는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의 일터를 스스로 닫아야 한다. 프로그램이 결방되면 아무 잘못 없는 작가, 외부인력, 외주업체는 돈을 전혀 받지 못한다. 출연자들도 출연료를 받지 못한다. 파업이 끝나면 다시 함께 얼굴을 맞대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능피디들에게 파업은 동시에 직장폐쇄다.

아직 <에스비에스>(SBS)는 파업으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이 멈춰본 적은 없다. 부분파업을 통해 뉴스가 차질을 빚은 일은 있어도 예능 프로그램이 멈춘 전면파업은 없었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실제 파업찬반 투표가 이루어지고 그 투표가 가결되고 투쟁 일정이 나오자 솔직히 너무 걱정이 되었다. 늦게나마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끝까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내 스스로 멈출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내가 파업에 참가하는 것과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멈추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며칠을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프로그램은 결방이 되었고 나는 다른 프로그램이 나가는 티브이를 보고 울고 있었다.

방송사에 분통을 터뜨리는 시민들을 직접 취재현장에서 만나야 하고 뉴스 선택을 위해 데스크와 싸워야 하는 기자와 교양피디들과 달리 예능피디들은 상대적으로 파업의 절실함이 떨어진다. 방송 내용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나 정부로부터의 통제에서도 좀더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일반 시청자들에게 파업을 알리고 그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의 차질보다 오히려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이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많은 엠비시의 예능피디들이 지금 고민에 싸여 있을 것이다. 누구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누구는 동참을 거부할 것이다. 또다른 누구는 다른 제작진들과 회사 밖 커피숍에서 회의를 하며 파업 이후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멈춰선 예능 프로그램과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들 모두, 그 뒤에서는 많은 예능 피디들이 시청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엠비시 사쪽이 밝힌 대로 이번 엠비시의 파업은 사원의 임금, 복지 등 근로조건과 무관한 파업이다. 그러나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는 ‘밥’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대 지상파 방송사의 파업이 단 한번도 ‘밥’만을 위해 벌어진 적은 없었다. 한 분을 위한 헌정방송을 거부하며 멈춰선 엠비시를 위해 잠시만 더 기다리자. 더 고민한 사람들이 만든 예능이 분명 재미도, 웃음도 더할 것이다.

박상혁 에스비에스 <강심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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