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한의 몰아보기
<제54회 그래미 뮤직 어워드>(미국 CBS, 2012)
엠넷(Mnet), 2월19일(일) 새벽 1시30분
<제54회 그래미 뮤직 어워드>(미국 CBS, 2012)
엠넷(Mnet), 2월19일(일) 새벽 1시30분
사실 그땐 누나가 왜 휘트니 휴스턴을 좋아했는지 몰랐어. 난 세상만사가 마음에 안 들어 늘 입을 비죽대던 꼬마였으니까, 사랑으로 충만한 휘트니는 감당이 어려운 가수였지.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그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랍니다’ 같은 가사는 듣기만 해도 온몸이 간지러웠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 머리가 굵어지니까 노래가 달리 들리더라고. 실연 후 만취해서 귀가하던 날, 택시에서 흘러 나오던 노래는 휘트니 휴스턴의 ‘디든트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이었어. ‘당신은 알 거예요. 두 번 다시 그렇게 사랑할 수는 없을 거란 것을’이란 가사가 어찌나 가슴을 에던지. 집 앞 골목에서 토악질을 하는 내내 그 노래가 귓전을 떠나질 않더라.
얄궂게도 내가 그의 매력에 눈을 뜰 때쯤 누나는 이미 내 곁에 없었어. 게다가 그 무렵 휘트니의 ‘팬질’을 한다는 건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지. 남편 바비 브라운과의 가정불화부터 미성년자 딸이랑 함께 마약을 했다는 소식까지, 휘트니에 대한 뉴스라는 건 죄다 암울하기 짝이 없었거든. 그때 휘트니 휴스턴을 듣는다는 건 망가져 가는 그의 근황과 내 곁에 없는 누나를 동시에 떠올리게 만드는 괴로운 일이었어.
지난 11일이구나. 휘트니가 세상을 떠났어.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 이제 누나와 휘트니는 저편으로, 나는 이편으로 나뉘어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단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지. 그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이 누나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일이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
이번 그래미 시상식 내내 눈물을 찔금댔던 건 그래서였던 것 같아. 사회자 엘엘 쿨 제이가 등장해 휘트니를 위한 기도로 시상식의 문을 열던 순간부터, 제니퍼 허드슨이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를 부른 추모공연에 이르기까지 연신 눈물을 찍어내야 했어. 심지어 크리스 브라운이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아델이 본상을 싹쓸이해 가는 순간조차, 느닷없이 떠오르는 휘트니 생각에 울컥했거든. 사실 그를 좋아하던 누나를 추억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나만 눈물을 훔쳤던 건 아닐 거야. 추억 속에 휘트니의 노래 한 자락씩 걸쳐두지 않은 사람도 드물 테니, 다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저마다 사랑했던 순간들을 떠올렸겠지. 난 그것만 기억하려 해. 한때 우리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서로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천국에서 휘트니를 만나거든, 사랑의 순간을 만들어줘 고마웠다는 내 늦은 고백을 전해줘.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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