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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내일은 사랑’의 이병헌답고 싶었다

등록 2012-03-23 21:25

<내일은 사랑>(1992~1994, KBS)
<내일은 사랑>(1992~1994, KBS)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내일은 사랑>(1992~1994, KBS)
KBS 드라마, 매일 새벽 3시50분 2회 연속 방송
예나 지금이나 전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관심사가 협소해서 대화를 나눌 소재도 많지 않고, 낯가림도 심한 터라 피상적인 관계 이상의 친분을 쌓는 것도 잘 못 하죠. 지금도 속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몇 없어 툭하면 혼자 속으로만 끙끙대고 있으니. 이 광경을 형이 봤으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아마 “참 너답다”고 하셨겠지요.

그래서인지 어릴 적 친구들이 <드래곤볼>이나 <후레시맨>을 볼 때, 저는 <한국방송>(KBS)의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사진)을 보면서 열광하곤 했어요. 주인공 범수(이병헌)처럼 넉살도 좋고 재치도 있는데다가, 사려 깊은 말솜씨에 좌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까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전공도 성격도 다른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뿌듯했습니다. 물론 방송이 끝나면 도로 현실로 돌아왔지만요.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겠죠. 최근에 발견한 건데, 케이블에서 <내일은 사랑>을 다시 해주고 있더군요. 저도 새벽에 하릴없이 리모컨을 돌리다가 알게 되었어요. 20년 만에 다시 보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기도 하더군요. 범수네 동아리 ‘문화비평재단’ 멤버들 얼굴 하나하나가 어쩜 그리도 반갑던지. 그리고 이병헌은 그때나 지금이나 늙지도 않고 똑같다는 점은 또 어찌나 샘이 나던지.

반가운 마음에 정좌하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나는 대학 시절에 뭘 했나 생각해 봤어요. 어릴 적 <내일은 사랑>을 볼 때마다 “나도 커서 대학 가면 저렇게 동아리 활동도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귈 테다”라고 다짐했던 게 떠올라서 말이죠.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더군요. 추억이랍시고 떠올릴 만한 게 없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바보같이 그제야 깨달았죠. 추억이 있으려면 친구가 있어야 하고, 친구가 있으려면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야 했다는 걸요.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생각해보면 <내일은 사랑>의 등장인물들이 다 범수처럼 외향적이었던 건 아니었어요. 윤수(장정연)처럼 방어막을 겹겹으로 둘러친 사람도 있고, 성일이(이지형)처럼 소심한 성격 탓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확실한 건 어떤 순간엔 용기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언제나 범수가 알아서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와 주길 바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용기 내어 간만에 편지 드려요. 이 글을 다 읽으실 때쯤 형은 뭐라고 하시려나요. “이건 너답지 않은데”라고 말씀하실까요? 그러셨으면 좋겠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딸은 잘 크고요? 형수님도 안녕하시죠? 저는 요즘….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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