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다 후> 시즌1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사만다 후> 시즌1 (2007, 미국 ABC)
<폭스 라이프>(FOX life) 3월31일(토), 4월1일(일) 오후 12~3시
<사만다 후> 시즌1 (2007, 미국 ABC)
<폭스 라이프>(FOX life) 3월31일(토), 4월1일(일) 오후 12~3시
“야, 나 혹시 어제 또 뭔가 사고 쳤냐?” 그래. 사고 쳤다. 어떻게 된 애가 술만 먹으면 울기 시작하는지. 맨날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야”로 시작해 “그때 걔한테 모질게 굴지 말걸”을 지나 “컴퓨터처럼 리셋 버튼이 있음 좋겠다. 콱 새로 시작해버리게”로 끝나는 레퍼토리는 바뀌지도 않냐. 네놈이 술상을 엎은 탓에 알탕은 맛도 못 봤다. 패악은 네가 부렸는데 술집 사장님께 사과는 내가 다 했지.
뭐, 네 심정도 이해는 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라고 왜 후회가 없고 회한이 없겠니. 하루를 마치고 잠을 청할 때, 예전에 저지른 바보 같은 실수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건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날리며 보냈는지. 정말 네 말처럼 인생을 리셋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도 많아.
생각해보니 <사만다 후>가 딱 그런 내용이다.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에 걸린 주인공 사만다가 인생을 새로 배워가는 내용이거든. 내가 누군지 아무 기억도 없는 상태로 눈을 뜬 거지. 그런데 자신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실망스러운 거라. 사고 전의 자신이란 작자가 글쎄 부모랑은 2년째 의절 중이고, 멀쩡한 애인 두고 바람피우길 밥 먹듯 한데다, 남 괴롭히는 재미로 살아온 인간이었던 거지.
그래서 <사만다 후>를 한 단어로 축약하면 ‘갱생’이야. 기억도 안 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사과하고, 기억상실 전의 자신은 ‘나쁜 샘’이고 지금의 자신은 ‘좋은 샘’임을 주변에 호소하는 이야기거든.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니? 기억을 잃기 전에 저질러 둔 일들이 있는데. 사람들 머릿속에 선입견이라는 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지.
물론 드라마니 가능한 일이지. 기억상실이란 핑계로 새 삶을 살 수 있다니. 그런데 과연 그게 어려운 일일까? 스스로의 행동을 객관화해서 볼 수만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사만다보다 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르지. 적어도 우린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다니는지는 아니까. 네놈처럼 필름이 끊기지 않는 한, 사만다처럼 막연히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겁에 질려 있을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리셋이 아니라, 눈 딱 감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와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일 거야. 물론 용서를 빌 때는 죽을 만큼 민망할 테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관성을 이겨내기란 숙취만큼 괴롭겠지만. 뭐 어때. 기억상실보단 싸게 먹히잖아. 그런 의미에서, 어제 네가 알탕 엎어서 내 셔츠 다 버렸거든? 넌 일단 그거부터 사과하고 시작하자.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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