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캡쳐 화면.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
방송 9회만에 시청률 꼴찌에서 1등으로
방송 9회만에 시청률 꼴찌에서 1등으로
<한국방송> 2텔레비전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적도의 남자>(수·목 밤 9시55분)는 지난해 <문화방송>의 문을 두드렸다가 편성을 거절당했다. <적도의 남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친구 이장일(이준혁)과 자신의 양아버지 김경필(이대연)을 죽이려고 한 인물에 대한 주인공 김선우(엄태웅)의 복수담이다. <해를 품은 달>(문화방송)처럼 사극의 경우도 판타지를 가미한 가벼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요즘, 무거운 이 드라마가 ‘먹힐 리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문화방송>에 퇴짜 맞은 <적도의 남자>는 <한국방송2>에서 인생역전했다. 1회 시청률 7.7%(에이지비닐슨 집계)로, <더킹 투하츠>(문화방송,16.2%), <옥탑방 왕세자>(에스비에스, 9.8%)에 밀려 줄곧 3위를 달리다가, 방송 9회 만인 18일 시청률 12%로 1위 자리를 꿰찼다. 19일 방송은 13%였다. 이날 <옥탑방 왕세자>는 10.4%, <더킹 투하츠>는 10.5%에 머물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감정의 대립 구도, 연기력, 모처럼의 통속드라마라는 차별성이 인기요인”이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김용수 피디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적도의 남자>의 소재나 출연자들이 (경쟁 드라마에 견줘) 화제성이 낮아 꼴찌로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웃으며 “초반 (장일과 선우의 관계 설정 등을 위해) 풀어놓은 이야기가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잘 깔아둔 ‘떡밥’ 뒷심 물었네 김 피디의 말처럼 <적도의 남자>는 8회에 걸쳐 뿌려놓은 ‘떡밥’들이 9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19일에는 시력을 잃었던 선우가 미국에서 눈 수술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복수를 시작하는 내용이 전개됐다. <적도의 남자>는 선우의 기구한 운명을 알리고 장일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만 8회를 할애했다. 선우가 진노식(김영철) 회장의 친아들이라고 암시하고 진회장이 선우의 양아버지를 죽이면서 부자간의 기구한 운명을 드러내고, 장일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친구인 선우를 죽이면서 선우와 장일의 관계의 기초도 다졌다. 출생의 비밀에 배신까지, 두 사람의 관계를 비틀려는 설정이 뻔하고 억지스러웠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런 밑거름 때문에 선우의 복수에 긴장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김 피디는 “초반 시청률이 낮으면 (편집 등을 많이 해) ‘떡밭’들을 성급하게 써먹으려고 하는데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갔다”며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패를 까발리다 패를 까발리고 시작한 것도 이 드라마의 재미요소이다. 이 이야기의 관심은 누가 김선우와 김경필을 죽이려고 했느냐가 아니다. 2회에서 이미 진회장과 이장일의 아버지 이용배(이원종)가 김경필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장일이 김선우를 죽이려는 장면도 3회에 나온다. 선우가 자신을 해치려고 한 사람이 장일인 걸 알면서도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미 ‘장일이 범인’인 걸 아는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 자체로 비밀이 밝혀질까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시청자 송미선씨는 “선우가 장일에게 어떻게 복수하고 숨통을 조여갈 것인가가 지켜보는 재미”라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바보 같던 주인공이 달라져서 복수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니 점점 빠져들 게 되는 것”이라며 “얼마나 화려하게 변신해 스펙터클하게 복수하는가가 시청률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욕망을 관찰하다 김 피디는 이 드라마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을 극악하지 않게 객관화된 시각으로 다루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피디는 주인공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관찰하는 느낌이다. 선우와 장일은 감정을 절제해 이야기하고,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담는 장면이 많다. 그는 “시청자들이 지금 이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를 생각해보기를 바랐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다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는 악역의 복잡미묘한 감정도 함께 드러난다. 무턱대고 나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장일의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진 회장을 돕지만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린다. 장일은 선우를 죽이려고 했지만 검사가 된 뒤 기업비리를 까발리는 등 공익에 앞장선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정말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의 위기까지 몰리지만, 그 친구가 나쁜 놈이라고 규정짓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연민의 마음도 같이 가져가는 복잡미묘한 우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태웅 ‘동공연기’ 김 피디는 “엄태웅을 공식대로 연기하지 않는 배우”라고 말했다. <적도의 남자> 인기의 8할은 엄태웅의 소름끼치는 연기력이다. 엄태웅은 9회까지 시각장애를 앓는 선우를 연기하면서 눈동자까지 신경쓰는 꼼꼼함으로 화제를 모았다. 양쪽 눈이 각기 초점없이 다른 곳을 응시한다. 압권은 9회에서였다. 장일이 떠난 뒤 각기 다른 곳을 응시하던 선우의 동공이 하나로 모이며 선우의 시력이 회복됐음을 암시했다. 엄태웅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시각장애인 복지관의 도움으로 실제 시력을 잃어가는 친구를 만나 표정이나 느낌을 많이 연구했다”며 “사시 연기가 웃겨 보일 수 있어 걱정했지만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엄태웅은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사실감을 살리는 데만 집중하는 진정한 배우”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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