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사거리에 있는 서대문아트홀의 모습. 18일 현재 영화 간판 대신 폐관을 막아달라는 호소문이 걸려 있다. 서대문아트홀 제공
[토요판] 최성진의 오프라인 TV
1964년 개관…‘노인전용’으로 변신
개발업체의 퇴거소송에 폐관 위기
극장쪽, 원로공연 등 ‘지킴이 행사’ “어르신의 문화를 제발 지켜주세요.”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서대문아트홀’은 18일 현재 영화 포스터 대신 이런 문구가 쓰인 대형 호소문을 내걸고 있다. 투박한 글씨로 쓰여 더욱 눈길을 끄는 영화관 쪽 호소문과 달리, 서대문아트홀은 조만간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서대문아트홀은 1964년 화양극장이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어 씨지브이(CGV)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 영화 체인이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는 최근까지도 서울의 유일한 단관극장의 명맥을 유지해왔다.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개봉관에서 내린 영화를 가져다 다시 틀어주는 재개봉관으로 출발했지만, 이듬해인 1965년 서대문아트홀은 개봉관으로 승격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홍콩영화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천녀유혼>과 <영웅본색 1·2>, <예스마담> 등을 상영하며 영등포의 명화극장, 미아리의 대지극장 등과 함께 홍콩영화 3대 개봉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대문아트홀의 쇠락은 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홍콩영화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관객 감소로 위기를 겪던 서대문아트홀은 1998년 화양극장에서 시사회 전용극장 드림시네마로 이름을 바꿔 살길을 모색했다. 서대문아트홀이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이때부터 극장 성격도 아예 노인전용 극장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약 50년간 수많은 어려움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서대문아트홀이었지만, 서울시가 지난해 이 자리에 관광호텔을 짓도록 허용하는 사업시행인가를 고시하며 본격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의 인가가 떨어지자 개발업체 쪽에서는 올해 초 극장 자리를 비워달라며 서대문아트홀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3월 첫 재판이 열렸고 오는 22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개발업체 쪽에서는 지난해 10월 극장 쪽에 내용증명을 보내 12월31일까지 퇴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부득이 명도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태도다. 반면 서대문아트홀에서는 나갈 때 나가더라도 그동안 극장 시설공사에 들어갔던 최소한의 리모델링 비용 등을 돌려달라고 맞서고 있다. 김익환 서대문아트홀 대표는 18일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소 5년에서 10년까지는 극장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지난해 10월 극장 건물이 다른 업자한테 매각되는 과정에서 기존 건물주와 맺었던 약속이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며 억울함을 나타내고 있다. 또 김 대표는 “서대문아트홀의 지금 상황은 젊은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세월에 밀려 소외당하는 어르신의 상황과 비슷하다”며 “서대문아트홀이 이렇게 사라지면 몇 안 되는 문화공간을 뺏기게 되는 어르신은 더욱 갈 곳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자본의 논리에 밀려 폐관 위기를 맞고 있는 서대문아트홀은 앞으로 극장을 비우게 될 날까지 ‘추억의 물건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의 향수, 노인 문화공간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20일에는 명국환, 안정애, 지창수, 이종남, 방일수 등 원로 배우·가수·코미디언이 관객과 함께하는 합동 공연도 예정돼 있다. 최성진 csj@hani.co.kr
개발업체의 퇴거소송에 폐관 위기
극장쪽, 원로공연 등 ‘지킴이 행사’ “어르신의 문화를 제발 지켜주세요.”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서대문아트홀’은 18일 현재 영화 포스터 대신 이런 문구가 쓰인 대형 호소문을 내걸고 있다. 투박한 글씨로 쓰여 더욱 눈길을 끄는 영화관 쪽 호소문과 달리, 서대문아트홀은 조만간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서대문아트홀은 1964년 화양극장이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어 씨지브이(CGV)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 영화 체인이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는 최근까지도 서울의 유일한 단관극장의 명맥을 유지해왔다.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개봉관에서 내린 영화를 가져다 다시 틀어주는 재개봉관으로 출발했지만, 이듬해인 1965년 서대문아트홀은 개봉관으로 승격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홍콩영화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천녀유혼>과 <영웅본색 1·2>, <예스마담> 등을 상영하며 영등포의 명화극장, 미아리의 대지극장 등과 함께 홍콩영화 3대 개봉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대문아트홀의 쇠락은 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홍콩영화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관객 감소로 위기를 겪던 서대문아트홀은 1998년 화양극장에서 시사회 전용극장 드림시네마로 이름을 바꿔 살길을 모색했다. 서대문아트홀이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이때부터 극장 성격도 아예 노인전용 극장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약 50년간 수많은 어려움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서대문아트홀이었지만, 서울시가 지난해 이 자리에 관광호텔을 짓도록 허용하는 사업시행인가를 고시하며 본격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의 인가가 떨어지자 개발업체 쪽에서는 올해 초 극장 자리를 비워달라며 서대문아트홀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3월 첫 재판이 열렸고 오는 22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개발업체 쪽에서는 지난해 10월 극장 쪽에 내용증명을 보내 12월31일까지 퇴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부득이 명도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태도다. 반면 서대문아트홀에서는 나갈 때 나가더라도 그동안 극장 시설공사에 들어갔던 최소한의 리모델링 비용 등을 돌려달라고 맞서고 있다. 김익환 서대문아트홀 대표는 18일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소 5년에서 10년까지는 극장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지난해 10월 극장 건물이 다른 업자한테 매각되는 과정에서 기존 건물주와 맺었던 약속이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며 억울함을 나타내고 있다. 또 김 대표는 “서대문아트홀의 지금 상황은 젊은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세월에 밀려 소외당하는 어르신의 상황과 비슷하다”며 “서대문아트홀이 이렇게 사라지면 몇 안 되는 문화공간을 뺏기게 되는 어르신은 더욱 갈 곳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자본의 논리에 밀려 폐관 위기를 맞고 있는 서대문아트홀은 앞으로 극장을 비우게 될 날까지 ‘추억의 물건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의 향수, 노인 문화공간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20일에는 명국환, 안정애, 지창수, 이종남, 방일수 등 원로 배우·가수·코미디언이 관객과 함께하는 합동 공연도 예정돼 있다. 최성진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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