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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당신 엄마의 고민도 안녕하세요?

등록 2012-06-01 20:07수정 2012-07-27 19:45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한국방송, 2010~ )

<케이비에스 조이>(KBS Joy), 6월2일(토) 오전 10시10분,

오후 9시10분, 3일(일) 오후 8시20분

엄마하고 전자제품 매장에 함께 오는 게 아니었어. 양평동 이씨는 마음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어머니는 벌써 몇 차례고 전에 쓰던 티브이가 10년도 채 못 버티고 고장 났다는 사연을 점원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아니, 같은 회사 제품도 아니고, 다른 회사 제품 흉을 여기서 왜 보느냐고 대체.

“거 그만하십시다. 뭐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래요.” “내가 답답해서 안 그러냐. 램프 교체한 거 할부 끝나기 무섭게 쿨링 팬이 나가는 게 말이 되니? 그리고 생산된 지 10년도 안 된 제품 부품이 단종은 왜 되니, 단종이.” 옆에 서 있던 점원은 이씨 속도 모르고 맞장구를 친다. “어머니, 맞습니다. 그 회사보단 저희 회사가 애프터서비스도 낫지요.” 맙소사, 앓느니 죽지.

날짜를 정해 제품을 배달받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 이씨는 심사가 뒤틀린 게 영 개운치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장광설을 늘어놓는 어머니도 못마땅했고, 그걸 다 받아주며 어떻게든 더 비싼 제품을 팔아보려 틈을 노리던 점원도 못마땅했다. 이씨는 끝내 가시 돋친 말을 뱉고야 말았다. “엄마는 왜 아무나 붙잡고 아무 얘기나 합니까, 그래?”

길 가다 말고 날벼락을 맞은 어머니는 물끄러미 이씨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뗐다. “그럼 네가 평소에 내 말을 좀 들어주든가. 원래 내 고민 누가 들어주면 반절이 되고, 내가 남의 고민 들어주면 그이에게 위안이 되는 게 세상살이 아니니? 넌 나한테 왜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하느냐고 했지? 그럼 넌 왜 그 ‘아무나’만큼도 내 얘기를 안 들어주니?” 이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집에 돌아온 이씨는 밥상에서 어머니를 마주할 염치가 없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불은 유달리 까슬까슬했고, 이씨는 내내 뒤척이다 갈증을 핑계삼아 일어나야 했다. 고장 난 티브이를 치워 휑한 거실에 나오니,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 봐요, 이 밤에?” “그 왜, 일반인들 나와서 자기 고민 털어놓는 토크쇼 있잖아. 신동엽 나오는.” 아, <안녕하세요> 재방송을 보고 계셨군.

이씨도 어머니 옆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하나같이 다 참 민망한 고민인데, 그걸 방송에 나와 전국 단위로 고백하는 이들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후련해 보였다. 하긴, 함께 걱정해주고 때론 민망하지 않게 웃음으로 덮어주는 이들이 있다면 고민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지겠지. 이씨는 생각했다. 이거만 다 보고 미안하다고, 엄마 말이 옳다고 말하자. 엄마의 얘기도 더 잘 들어 드리자. 작은 화면을 함께 보려 바싹 붙어 앉은 모자의 그림자가 봄밤 달빛에 길어지고 있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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