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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이상민처럼 ‘허세 갑옷’을 벗자

등록 2012-06-15 19:39수정 2012-07-27 19:44

이상민
이상민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음악의 신>(엠넷, 2012)
<엠넷>(Mnet), 본방 수요일 밤 11시. 주말 재방 토요일 오후 2시, 7시. 일요일 오후 2시30분, 밤 10시.

두 달에 한 차례 머리 하는 날, 헤어 디자이너 정 선생은 언제나처럼 양평동 이씨를 살갑게 맞았다. 이씨도 다양한 직업의 손님들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던 정 선생이 좋았다. 한데 그날은 좀 달랐다. 언제나처럼 옆머리를 바짝 밀어 올리던 정 선생이 던진 말이 화근이었다. “저는 손님께서 정치 관련 글을 쓰시는 줄 알았거든요. 검색해 보니 티브이 쪽 글만 쓰시더라고요?”

평론을 업으로 한다 했더니 이씨를 정치평론가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쩐지 자꾸 박근혜와 문재인에 대해 묻더라니.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말도 없었는데, 정 선생의 말은 자꾸만 이씨의 발목을 붙잡았다. 내가 “티브이 쪽 글만” 쓰는 사람이라 실망한 건가? 자격지심에 이씨의 기억은 멋대로 뒤틀렸고, 별 뜻 없었을 정 선생의 말은 어느새 “하긴, 네가 하는 일이 넋 놓고 드라마나 보는 거겠지. 정치는 무슨”으로 험악하게 둔갑했다. 돌아오는 길은 찝찝하기 짝이 없었고, 괘씸한 마음에 이씨는 한없이 쪼잔해졌다.

그날 밤, 뒤숭숭한 마음에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던 이씨는 <엠넷>(Mnet)에서 채널 서핑을 멈췄다. 왕년의 ‘룰라’ 리더 이상민의 재기 과정을 그린 페이크 다큐멘터리 <음악의 신>이 나오고 있던 것이다. 이상민은 과거에 자신이 얼마나 잘나갔는지 허세를 늘어놓다가, 다음 순간엔 초라한 현실을 고백하며 한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한참 낄낄대던 이씨는 문득 자신의 찜찜함도 다 허세 탓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생각해보니 정 선생이 유달리 좋았던 건 이씨를 “글 쓰시는 손님”이라며 치켜세워주었기 때문이었다. 글 잘 쓰는 황새들 틈에서 경쟁하느라 헉헉대던 뱁새 이씨도 머리만 자르러 가면 ‘글쟁이’로 대우받을 수 있었고, 우쭐해진 이씨는 괜히 더 아는 척 있는 척을 해댔던 것이다. 정 선생이 뜬금없이 대선 후보들에 대한 견해를 물을 때 술술 제 생각을 털어놓은 것도, 티브이 평론이 정치 평론보다 못할 것도 없는데 자격지심에 시달린 것도, 다 그놈의 허세 때문이었다.

이씨는 화면 속 이상민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끄러운 과거와 비루한 오늘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던 허세를 다 털어놓고 있었다. 저렇게 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겠지. 이씨는 이상민이 소소한 성공을 거두며 다시 행복해지길 기원했다. 이씨가 거창한 정치 담론이 아니라 티브이 속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충분히 행복한 것처럼. 이씨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게 부끄럽지만, 다음에도 정 선생에게 머리를 맡기겠노라 생각했다. 어차피 정 선생만큼 이씨 머리를 공들여 다듬어주는 이도 없으니 말이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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