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기어 유케이(UK)>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탑기어 유케이(UK)>(시즌12, 2008, 영국 <비비시>(BBC))
<엑스티엠>(XTM), 토 밤 9시30분. 일 오후 3시15분. 10시30분 “남자들은 왜 바보짓 하고 노는 걸 좋아할까?” 닭곰탕 한 수저를 막 목으로 넘기던 양평동 이씨는 고개를 들어 심 선생을 노려보았다. 아니, 이 무슨 성차별적 언사란 말인가. 심 선생은 말없이 손가락을 뻗어 밥집 벽에 매달린 티브이를 가리켰다. 화면 안에선 제러미 클라크슨이 대형 트럭을 몰고 코너를 돌고 있었다. 안정적인 코너링이었다. 트레일러가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다는 것만 빼면. 그래, <탑기어 유케이(UK)>라면 바보짓이란 말도 이해할 만하지. 수저를 입에 문 심 선생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아니, 차 성능을 시험하는 것까진 알겠어. 그런데 저건 이미 성능 테스트랑은 아무 상관없는 수준이잖아? 왜 저 비싼 차에 불을 붙이고 난리지?” 이씨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1박2일> 멤버들은 왜 물만 보면 입수를 하고 <무한도전> 멤버들은 팬만 만나면 인기투표에 목숨을 걸까? 다 재미있자고 하는 거지.” “아니, 입수하는 데 돈이 드나? 그거랑 저거랑은 차원이 다르잖아?” 뭐라고 설명하면 납득을 할까 고민하던 이씨의 머릿속에 경구 한마디가 스쳐 지나갔다. “저기, 혹시 그런 말 들어 봤어?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응. 알지.” “그런 거야. 남자의 가장 좋은 친구는 자동차인 거지.” “<맥심>(남성지)이 아니고?” 자식, 날카로운데? 이씨는 닭곰탕 한 수저를 더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시간을 번 뒤 대답했다. “<맥심>을 본다고 해서 시속 22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여자들은 다이아몬드를 산산조각 내거나 불 지르거나 로켓엔진을 달아서 시속 430킬로미터로 던진다거나 하는 짓은 안 하잖아. 저자들은 그 짓을 하고 있고.” “세 가지 정도의 쾌감이 있는 거지. 자동차의 성능을 극한까지 실험해 보는 즐거움이 있고, 둘째로 우리 같은 유리지갑들은 꿈도 못 꿀 가격의 자동차를 마구잡이로 다루는 광경이 주는 통쾌함이 있잖아. 마지막으로는….” “마지막으로는?” “그래, 터무니없는 바보짓을 보는 재미가 있지.”
“그래. 그러니까 내 말이. 차를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왜 차를 종잇장처럼 구겨 버리는 바보짓을 하는 건데?” “그것이 바로 남자의 ‘거친 사랑’인 것이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며 올라오기를 바라는 사자의 심장과 같다고나 할까?” 이씨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심 선생은 지갑에서 닭곰탕 값을 꺼내며 말했다. “운전면허도 없는 네가 차에 대한 사랑을 논할 처지는 아니지 싶다.” 이렇게 대꾸했다. “꼭 다이아몬드를 살 형편이 돼야 그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엑스티엠>(XTM), 토 밤 9시30분. 일 오후 3시15분. 10시30분 “남자들은 왜 바보짓 하고 노는 걸 좋아할까?” 닭곰탕 한 수저를 막 목으로 넘기던 양평동 이씨는 고개를 들어 심 선생을 노려보았다. 아니, 이 무슨 성차별적 언사란 말인가. 심 선생은 말없이 손가락을 뻗어 밥집 벽에 매달린 티브이를 가리켰다. 화면 안에선 제러미 클라크슨이 대형 트럭을 몰고 코너를 돌고 있었다. 안정적인 코너링이었다. 트레일러가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다는 것만 빼면. 그래, <탑기어 유케이(UK)>라면 바보짓이란 말도 이해할 만하지. 수저를 입에 문 심 선생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아니, 차 성능을 시험하는 것까진 알겠어. 그런데 저건 이미 성능 테스트랑은 아무 상관없는 수준이잖아? 왜 저 비싼 차에 불을 붙이고 난리지?” 이씨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1박2일> 멤버들은 왜 물만 보면 입수를 하고 <무한도전> 멤버들은 팬만 만나면 인기투표에 목숨을 걸까? 다 재미있자고 하는 거지.” “아니, 입수하는 데 돈이 드나? 그거랑 저거랑은 차원이 다르잖아?” 뭐라고 설명하면 납득을 할까 고민하던 이씨의 머릿속에 경구 한마디가 스쳐 지나갔다. “저기, 혹시 그런 말 들어 봤어?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응. 알지.” “그런 거야. 남자의 가장 좋은 친구는 자동차인 거지.” “<맥심>(남성지)이 아니고?” 자식, 날카로운데? 이씨는 닭곰탕 한 수저를 더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시간을 번 뒤 대답했다. “<맥심>을 본다고 해서 시속 22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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