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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하루 멀다하고 밤샘…드라마 제작관행 괜찮은 거야?

등록 2012-07-19 20:13

김 피디의 드라마 게임
그날도 두 시간도 채 못 잤다. 시계는 밤 12시를 가리키는데 찍어야 할 ‘신’은 아직 한참 남았다. 제작버스를 타고 다음 촬영장소로 이동하면서 정신없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으며 졸고 있는데, 기사님이 켜놓은 디엠비티브이(DMB TV)의 뉴스가 귀를 파고들었다. 모 거대 자동차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주당 70~86시간 일을 시켰는데, 이것은 명백한 불법 연장근로로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거야!’ 눈이 반짝, 귀가 쫑긋, 말초신경이 ‘아아’ 하며 벼락처럼 번쩍 정신이 들었다. 드디어 방법이 생긴 것이다. 좋아, 내일 당장 우리 회사를 고발하겠어! 사법처리 되게 하고 말겠어! 이젠 더는 혹사당하지 않을래!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날마다 새벽 3시에 퇴근해서 아침 7시까지 출근하거나, 어떤 때는 퇴근할 시간마저 없다. 일이 바쁜 직장인들이 종종 ‘어휴, 집은 잠만 자는 장소야’라며 푸념하지만, 드라마 촬영팀에 집은 몸이나 겨우 씻고 바로 나오는 곳이다.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이라는데, 미니시리즈 촬영팀이라면 화요일 밤쯤에 이미 법으로 허용된 그주의 노동을 다 해버린 셈이다. 우리 연출부도 주당 92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닌가!’ 하고 분기탱천하여 자세히 알아봤더니, 방송업 종사자는 ‘연장근로 특례 직종’이라는 것에 해당돼, 운수·청소·의료업 등과 마찬가지로 연장근로를 얼마든지 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난 내 일이 자랑스러웠는데, 알고보니 법의 보호 밖에 있는 직업이구나. 지금 알았던 것을 입사 전에 알았더라면! 알았다 해도 이 길을 택했겠지만, 가끔은 ‘이건 정말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드라마는 어마어마한 육체노동으로 만들어진다. 바깥에서 보면 드라마의 대본·연출·배우가 먼저 보이겠지만, 드라마는 매우 노동집약적인 생산물이다.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가 주 1회, 50분 방송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 드라마는 주 2회, 140~160분가량 방송된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생산라인을 돌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 불가능한 시스템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다들 어찌나 잘 적응하는 지, 불가능할 것 같은 촬영 스케줄을 어떻게든 다 소화해낸다. 험난한 현장에 적응한 제작진은 그만큼의 자긍심을 갖고 있다. 홍삼 엑기스 등 자신만의 ‘피로회복’ 노하우도 풍부하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걸까?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우리 회사에선 한 달 간격으로 큰 인명사고가 났다. 미니시리즈 보조출연자가 촬영장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후속 드라마의 소품 차량이 전복되어 제작진 한 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각자 다르지만, 넓게 보면 드라마 제작 관행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두 드라마 모두 시대극이다. 촬영지가 멀리 떨어져 있고, 촬영 전 준비 시간이 길기 때문에 밤 12시~새벽 사이에 이동해야 촬영시간에 맞출 수 있다. 그래서 피로가 누적된 상태로 야간에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게 관행이 되어 있다.

예산이 많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무리하게 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걸 몰라서 지금까지 못 고친 건 아닐 거다. 비즈니스의 생리상 불가능한 대안일 뿐이다. 연기자 출연료를 줄이고 제작환경을 개선하라고? 부동산 투기 해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거다. 그렇다면 국가적 지원이라도 필요한 거 아닐까. 드라마의 질뿐만 아니라 드라마 노동의 질도 좀 나아지면 좋겠다.

김민경 <한국방송>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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