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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고2 위로한다며 ‘성균관’ 대사가 불쑥

등록 2012-08-17 19:34

<성균관 스캔들> (2010, 한국방송)
<성균관 스캔들> (2010, 한국방송)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성균관 스캔들> (2010, 한국방송)
<올리브>(O’live), 18일(토) 오전 9시 13·14화. 19일(일) 오전 6시 15·16화.

그 찻집은 다른 것보다 빙수가 유명했다. 얼음 위에 팥고물과 흰떡 두 개만 얹은 단순한 팥빙수지만, 양평동 이씨는 아직 그 맛을 능가하는 집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목단씨가 그 찻집의 빙수를 사주겠노라 했을 때, 이씨는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나갔다. 목단씨가 고2 아들을 달고 나올 줄 알았다면 안 그랬을 텐데.

“그러지 말고 뭐라도 좀 말해줘. 너는 1등급이었다면서?” 그 고운 빙수가 오늘따라 왜 이리 까슬한지 숫제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목단씨는 찻집에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모의고사 이야기만 했고, 아이는 죄인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이씨라고 빙수가 넘어갈 리가 있나. “제가 수능 본 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에요. 지금 교육과정하고 같나요, 어디.”

“얘 수능도 이제 450일밖에 안 남았어. 다른 영역은 괜찮은데 언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4등급이란 말이야. 애가 언어 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건지, 내가 속상해서 잠을 못 잔다.” 아이의 얼굴은 고추껍질처럼 빨개졌다. 생판 남 앞에 제 성적이 까발려지는 치욕이 오죽하랴. 이씨는 아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다른 애들보다 뒤처져 있으니 포기하고 싶을 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하고 있다면서요. 그보다 더 큰 재능이 어디 있어요?”

말하고 보니 말투만 좀 다르지 <성균관 스캔들>에 나왔던 대사 그대로였다. 왜 갑자기 이게 튀어나왔지? 이씨는 당황했지만, 어쨌거나 아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물론 목단씨는 실망한 눈치였지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렇게 속 편한 소리 하는 거 아니다 너. 하기야, 학부형 심정을 총각인 네가 어떻게 알겠니.”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목단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 녹은 빙수를 깨지락거리던 아이가 이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 “응?” “아까는 감사했어요.”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하고 솟구쳤다. 얼마나 위로가 필요했던 걸까. 제자리걸음인 성적 앞에서 남 탓도 못 하고 혼자 괴로워했을 이 아이는. 이씨는 아이에게 <성균관 스캔들>을 권해주고 싶었다. 진짜 지혜는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고 말하는 드라마가 있다고.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응원받을 자격이 있다 말해주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목단씨를 생각하니 고2 학생에게 드라마를 추천하는 건 못할 짓이었다. 이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잖아, 엄마한텐 내가 일이 있어 먼저 갔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이씨는 당황한 아이를 남겨두고 제 부끄러움에 쫓겨 찻집을 빠져나왔다. 아마 당분간 빙수를 먹으러 이 집에 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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