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2008, 문화방송)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달콤한 인생>(2008, 문화방송)
<홈드라마> 15일(토) 8시30분, 15시, 22시 1, 2회 방영.
16일(일) 8시30분, 15시, 22시 3, 4회 방영. 4월, 공항에서 돌아오는 내내 마루는 울먹거렸고, 양평동 이씨는 마루의 어깨만 토닥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지? 내가 이렇게 잡는데?” 7년 연애 끝에 내린 애인의 결론이 결혼이 아닌 유학이란 사실을 마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제 꿈이 그리 소중했던 걸까? 나와 함께하는 미래보다? 6월, 주말이라고 흘러간 드라마나 보는 건 마루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루는 벌써 몇 주째 티브이 앞에서 눈물 짜는 멜로드라마를 보며 주말을 났다. 수많은 이별을 반복해서 간접 체험하면, 제 이별 또한 그 많은 이별 중 하나로 취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지간한 멜로는 다 섭렵하고도 허기가 가시지 않던 마루가 징글징글한 멜로드라마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이씨에게 물었을 때, 이씨는 ‘<달콤한 인생>을 보라’고 답했다. 그런 드라마도 있었나? 영화가 아니고? 갸우뚱하면서도 마루는 리모컨으로 <달콤한 인생>을 찾았다. 9월, 마루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턱선을 따라 수염이 번성했고, 눈가엔 핏발이 서 있었다. 이씨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의 시선은 저 먼 허공에 꽂혀 있었다. “편지가 왔더라. 잘 지내고 있다고. 나도 잘 지내라고.” 마루는 마지막 문장을 반복했다. “잘 지내라고.” “그래. 너도 이제 좀 정리하지?” “아냐, 이제야 왜 걔가 그렇게 갔는지 알겠어.” 마루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도망가며 살기 싫었던 거야. 적당히 타협하고, 나랑 결혼해서 꿈 같은 거 잊고 행복한 척하며 살 순 없었던 거야.” 마루는 커피를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그랬으면 나는 좋았겠지. 그런데 그게 진짜 걔 인생일까? 상처받고, 상처 입힐까 봐 도망가는 게?” 이씨는 마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붙잡는 나를 두고 가야 할 만큼 소중한 게 있다면, 그게 진짜 걔 인생이겠지. 걔는 끝까지 제 인생을 살고 싶었던 거야.” 이씨는 잠시 침묵하다 마루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쩌려고?”
“<달콤한 인생>에 그런 말이 나오더라.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온 세상이 그 사람으로 가득 차는 거라고.” 마루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이씨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눈치챘다. 마루는 오연수가 이동욱을 그리워하며 허공을 어루만지던 마지막 장면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안 잊고 계속 기다리겠다고? 안 힘들겠어?”
“드라마 흉내나 내면서 버텨도 좋을 만큼 그리운 이가 있다면, 계속 기다리는 게 맞겠지. 그리워하면 이렇게 볼 수 있으니, 영 이별은 아닌 거잖아.” 마루의 손끝이 가을의 찬 공기를 스쳤다. 오랜만에, 마루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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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드라마> 15일(토) 8시30분, 15시, 22시 1, 2회 방영.
16일(일) 8시30분, 15시, 22시 3, 4회 방영. 4월, 공항에서 돌아오는 내내 마루는 울먹거렸고, 양평동 이씨는 마루의 어깨만 토닥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지? 내가 이렇게 잡는데?” 7년 연애 끝에 내린 애인의 결론이 결혼이 아닌 유학이란 사실을 마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제 꿈이 그리 소중했던 걸까? 나와 함께하는 미래보다? 6월, 주말이라고 흘러간 드라마나 보는 건 마루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루는 벌써 몇 주째 티브이 앞에서 눈물 짜는 멜로드라마를 보며 주말을 났다. 수많은 이별을 반복해서 간접 체험하면, 제 이별 또한 그 많은 이별 중 하나로 취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지간한 멜로는 다 섭렵하고도 허기가 가시지 않던 마루가 징글징글한 멜로드라마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이씨에게 물었을 때, 이씨는 ‘<달콤한 인생>을 보라’고 답했다. 그런 드라마도 있었나? 영화가 아니고? 갸우뚱하면서도 마루는 리모컨으로 <달콤한 인생>을 찾았다. 9월, 마루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턱선을 따라 수염이 번성했고, 눈가엔 핏발이 서 있었다. 이씨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의 시선은 저 먼 허공에 꽂혀 있었다. “편지가 왔더라. 잘 지내고 있다고. 나도 잘 지내라고.” 마루는 마지막 문장을 반복했다. “잘 지내라고.” “그래. 너도 이제 좀 정리하지?” “아냐, 이제야 왜 걔가 그렇게 갔는지 알겠어.” 마루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도망가며 살기 싫었던 거야. 적당히 타협하고, 나랑 결혼해서 꿈 같은 거 잊고 행복한 척하며 살 순 없었던 거야.” 마루는 커피를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그랬으면 나는 좋았겠지. 그런데 그게 진짜 걔 인생일까? 상처받고, 상처 입힐까 봐 도망가는 게?” 이씨는 마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붙잡는 나를 두고 가야 할 만큼 소중한 게 있다면, 그게 진짜 걔 인생이겠지. 걔는 끝까지 제 인생을 살고 싶었던 거야.” 이씨는 잠시 침묵하다 마루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쩌려고?”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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