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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의사 되겠단 12살 딸에겐 고생하니 하지말라고 했죠”

등록 2012-10-08 20:10수정 2012-10-09 15:41

이성민(44)
이성민(44)
의학드라마 ‘골든타임’ 이성민
열혈의사 최인혁역 연기했지만
실제로 본 의사 일 어마어마해
큰 인기에도 ‘까불지 말자’ 생각
“처절한 멜로 연기 해보고 싶어”
“야! 최인혁! 빨리 와서 환자 배 속을 좀 보라고!”

이미 사표를 낸 병원에서 항상 자신을 괴롭히던 외과 과장이 전화해 이렇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보통은 거절할 것 같지만, 최근 종영한 <문화방송>(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최인혁 교수는 이 한마디에 바로 달려간다.

마치 슈퍼맨처럼, 환자의 생명에 위기가 닥치면 그는 정장을 입고 있다가도 어느샌가 수술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를 부르는 호출 부호는 ‘환자의 생명’이다. 자신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환자의 생명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최인혁 같은 의사를 꿈꿔 온 시청자들의 마음은 그를 연기한 이성민(44·사진)의 인기를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만년 조연이던 이성민은 첫 주연을 맡은 이 작품으로 “처음으로 팬클럽이 생겼고”, 문화방송의 경쟁사인 <에스비에스>(SBS)의 토크 프로그램 <힐링캠프>에도 출연했다. 항상 얄미운 역만 하다가 문화방송 <더킹 투하츠> 때 “처음으로, 갑자기 자애로운 왕을 하게 됐다”는 그는 뒤늦게 주목받는 데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공을 돌렸다. “저의 다른 면을 발견해준 <더킹 투하츠>의 이재규 감독과, <골든타임>으로 화룡점정을 찍어준 권석장 감독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했다. 함께 출연한 이선균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다. “사실 이 배역을 제가 해야 한다고 감독님께 강하게 얘기해준 게 이선균씨”이기 때문이다.

5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외모는 영락없는 최인혁이었다. 거뭇거뭇 자란, 깎지 않은 수염도 그대로였다. 머리 모양도 단정하게 빗어 넘기는 여느 배우들과는 달랐다.

“제일 귀찮아하는 것이 면도예요. 평상시에도 잘 안 깎아요. 머리도 촬영과 관계된 것 아니면 잘 손질하지 않고요. 물론 최인혁의 수염은 조금 다릅니다. 권석장 감독님과 수염 길이까지도 정했어요. 3년 동안 3일밖에 쉬지 못한 의사니까요.”

그는 실제로도 최인혁처럼 워커홀릭(일 중독자) 기질이 강하다. 처음에는 피곤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밤을 새우고 촬영에 나서기까지 했단다. “제가 뭘 한 가지 하면 다른 것은 잘 못해요. 최인혁처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못하지만 제작발표회 때 빼놓고는 중간에 하루 이틀 쉬는 날 있어도 부산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서울로 가면 긴장이 풀어질 것 같은 느낌 때문에요.”

이성민의 사투리는 최인혁처럼 그리 강하지 않았다. 대본에 없던 사투리는 그가 제안했다. 부산이 배경이지만 부산 사투리는 안 쓰고, 경북 봉화 출신이니 경북 사투리를 쓰겠다고 못박았다고 했다. 자칫 “사투리에 휘둘리다 연기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송선미씨도 원래 사투리 쓰지 않는 설정이었어요. 그런데 첫 리딩(대본 읽기) 때 제가 사투리를 쓰니까 반응이 좋았어요. 다들 ‘나도 사투리로 하겠다’고들 하더라고요.”

얼마나 강렬한 연기를 했는지 12살 딸이 의사가 되겠다고 했단다. “딸한테 (드라마 속) ‘삼촌’들처럼 인턴 하면 고생하니까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보니까 의사들 일이 정말 어마어마하던데….”

20여년 전부터 연기를 해온 이성민은 자신의 20대에 대해 “처절했다”고 했다. 돈이 없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저 연기가 좋았고, 그때 겪었던 경험과 고민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기”에 그리운 시절이라고도 말한다. <골든타임>에서 최인혁 교수가 인턴 지망생에게 면접을 보며 묻는 말 “의사로서 제일 두려운 일이 무엇이라 생각하나”란 질문을 거꾸로 이성민에게 던져봤다. “대본이 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무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적이요. 정말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때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배우는 아니겠구나’라고 느꼈지요.”

2000년대 초반 상경한 그는 <파스타>·<대왕세종>·<브레인>·<더킹 투하츠> 등 40편이 넘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왔다. 연극 무대에도 꾸준히 섰다. 지금도 그는 <골든타임>에서 호흡을 맞춘 정석용·송선미와 극단 차이무의 <거기> 출연을 준비중이다.

이성민은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 즐거운 시기, 놀라운 시기”라고 했지만, 이번에 얻은 큰 인기로 연기에 대한 그의 자세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 조연은 할 수 있겠냐’는 말도 들리는데요. ‘까불지 말자’고 생각해요. 조연이 굉장히 중요해요. 조연이 잘해야 드라마가 살아요.”

그는 “정해놓고 하고 싶은 배역은 없다”지만 멜로 연기에는 미련이 있다고 했다. “정말 처절한 멜로 연기 해보고 싶어요. 그런 감정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으니까요.”

글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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