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2010, 한국방송)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추노>(2010, 한국방송)
<케이비에스 월드>(KBS WORLD) 토·일 밤 10시40분 열심히 준비한 일이 어그러지면 그 기분이 어떨까. 아마 오늘의 해가 지면 내일은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양평동 이씨는 열무씨가 지금쯤 어떤 기분일지 짐작이 갔다. 직장이니 가족이니 제 일도 다 제쳐놓고 운동에 매진하던 사람이, 마치 자기 혼자 영달을 얻겠다는 식으로 오해를 산 직후이니 그 속이 오죽하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방자치를 위해 제 건강이며 가족이며 다 뒷전으로 두고 발로 뛰어 왔던 열무씨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때가 때여서 그랬던 걸까. 열무씨와 친구들의 노력으로 일궈낸 간담회가, 마치 특정 정치인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정파적 운동인 것처럼 오해를 사고야 만 것이다. 열무씨를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을지, 이씨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기억하겠죠.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어 한자리해 보려 한 사람들이라고.” 열무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해는 가요. 언론에서도 우리 행사를 특정 후보의 정치 일정 중 하나 정도로만 보도했으니까. 내가 봐도 들러리 같더군요.” 열무씨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도, 기록되지도 않았어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이씨가 입을 열었다. “혹시 반짝이 애비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누구요?” 열무씨가 이씨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조선 인조 연간에 한성 살던 노비예요. 제 딸이 노비로 팔려가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동료 노비가 ‘노비도 사람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리던 사람이죠.” “그거 혹시 <추노> 이야기인가요?” “아시네요. 포수 업복이를 가장 많이 괴롭히던 사람이었죠. 나중에 업복이가 궁에 쳐들어가서 부패한 좌의정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광경을 보고 나서야 간신히 제 계급의식을 자각하지만.” 열무씨가 대꾸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으신 말씀인즉슨, 내가 업복이고 세상 어딘가에 반짝이 아범 같은 사람도 있을 거란 건가요?” 이씨는 열무씨가 바라보던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선을 살던 이들 중 양반과 노비가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이가 몇이나 됐겠어요? 있었어도 권좌를 노리는 역모 정도로 오해나 받고 죽어갔겠죠. 그래도, 반짝이 애비 같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구에게 그런 세상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 간 사람이 있었노라 전해줬으니 오늘과 같은 세상도 가능했겠죠.” 열무씨가 피식 웃어 보였다. “결국 업복이는 관군들한테 잡히잖아요. 우리도 그 꼴이 날 거란 겁니까?” “아니요. 그 뜻을 이어받을 반짝이 애비가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믿어보라는 거죠.”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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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비에스 월드>(KBS WORLD) 토·일 밤 10시40분 열심히 준비한 일이 어그러지면 그 기분이 어떨까. 아마 오늘의 해가 지면 내일은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양평동 이씨는 열무씨가 지금쯤 어떤 기분일지 짐작이 갔다. 직장이니 가족이니 제 일도 다 제쳐놓고 운동에 매진하던 사람이, 마치 자기 혼자 영달을 얻겠다는 식으로 오해를 산 직후이니 그 속이 오죽하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방자치를 위해 제 건강이며 가족이며 다 뒷전으로 두고 발로 뛰어 왔던 열무씨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때가 때여서 그랬던 걸까. 열무씨와 친구들의 노력으로 일궈낸 간담회가, 마치 특정 정치인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정파적 운동인 것처럼 오해를 사고야 만 것이다. 열무씨를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을지, 이씨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기억하겠죠.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어 한자리해 보려 한 사람들이라고.” 열무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해는 가요. 언론에서도 우리 행사를 특정 후보의 정치 일정 중 하나 정도로만 보도했으니까. 내가 봐도 들러리 같더군요.” 열무씨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도, 기록되지도 않았어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이씨가 입을 열었다. “혹시 반짝이 애비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누구요?” 열무씨가 이씨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조선 인조 연간에 한성 살던 노비예요. 제 딸이 노비로 팔려가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동료 노비가 ‘노비도 사람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리던 사람이죠.” “그거 혹시 <추노> 이야기인가요?” “아시네요. 포수 업복이를 가장 많이 괴롭히던 사람이었죠. 나중에 업복이가 궁에 쳐들어가서 부패한 좌의정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광경을 보고 나서야 간신히 제 계급의식을 자각하지만.” 열무씨가 대꾸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으신 말씀인즉슨, 내가 업복이고 세상 어딘가에 반짝이 아범 같은 사람도 있을 거란 건가요?” 이씨는 열무씨가 바라보던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선을 살던 이들 중 양반과 노비가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이가 몇이나 됐겠어요? 있었어도 권좌를 노리는 역모 정도로 오해나 받고 죽어갔겠죠. 그래도, 반짝이 애비 같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구에게 그런 세상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 간 사람이 있었노라 전해줬으니 오늘과 같은 세상도 가능했겠죠.” 열무씨가 피식 웃어 보였다. “결국 업복이는 관군들한테 잡히잖아요. 우리도 그 꼴이 날 거란 겁니까?” “아니요. 그 뜻을 이어받을 반짝이 애비가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믿어보라는 거죠.”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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