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반짝이 애비’가 어딘가엔 있을 거야

등록 2012-10-19 19:37

<추노>(2010, 한국방송)
<추노>(2010, 한국방송)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추노>(2010, 한국방송)
<케이비에스 월드>(KBS WORLD) 토·일 밤 10시40분

열심히 준비한 일이 어그러지면 그 기분이 어떨까. 아마 오늘의 해가 지면 내일은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양평동 이씨는 열무씨가 지금쯤 어떤 기분일지 짐작이 갔다. 직장이니 가족이니 제 일도 다 제쳐놓고 운동에 매진하던 사람이, 마치 자기 혼자 영달을 얻겠다는 식으로 오해를 산 직후이니 그 속이 오죽하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방자치를 위해 제 건강이며 가족이며 다 뒷전으로 두고 발로 뛰어 왔던 열무씨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때가 때여서 그랬던 걸까. 열무씨와 친구들의 노력으로 일궈낸 간담회가, 마치 특정 정치인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정파적 운동인 것처럼 오해를 사고야 만 것이다. 열무씨를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을지, 이씨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기억하겠죠.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어 한자리해 보려 한 사람들이라고.” 열무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해는 가요. 언론에서도 우리 행사를 특정 후보의 정치 일정 중 하나 정도로만 보도했으니까. 내가 봐도 들러리 같더군요.” 열무씨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도, 기록되지도 않았어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이씨가 입을 열었다. “혹시 반짝이 애비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누구요?” 열무씨가 이씨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조선 인조 연간에 한성 살던 노비예요. 제 딸이 노비로 팔려가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동료 노비가 ‘노비도 사람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리던 사람이죠.”

“그거 혹시 <추노> 이야기인가요?” “아시네요. 포수 업복이를 가장 많이 괴롭히던 사람이었죠. 나중에 업복이가 궁에 쳐들어가서 부패한 좌의정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광경을 보고 나서야 간신히 제 계급의식을 자각하지만.” 열무씨가 대꾸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으신 말씀인즉슨, 내가 업복이고 세상 어딘가에 반짝이 아범 같은 사람도 있을 거란 건가요?”

이씨는 열무씨가 바라보던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선을 살던 이들 중 양반과 노비가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이가 몇이나 됐겠어요? 있었어도 권좌를 노리는 역모 정도로 오해나 받고 죽어갔겠죠. 그래도, 반짝이 애비 같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구에게 그런 세상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 간 사람이 있었노라 전해줬으니 오늘과 같은 세상도 가능했겠죠.”

열무씨가 피식 웃어 보였다. “결국 업복이는 관군들한테 잡히잖아요. 우리도 그 꼴이 날 거란 겁니까?” “아니요. 그 뜻을 이어받을 반짝이 애비가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믿어보라는 거죠.”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이시형씨 “큰아버지에 현금 6억 빌려 큰 가방에 넣어와”
김만복 “내가 회담록 작성…NLL 포기, 땅따먹기 발언 없었다”
정문헌 폭로 진위 떠나 봤어도 불법 누설도 불법
악명높은 ‘하얀방’에 끌려가는 사람이 늘어난다
채팅앱으로 꾀어 원조교제 시도한 인면수심 ‘배운 남자들’
‘회피 연아’ 동영상 게시자, 네이버에 승소
송이 따던 이명박 대통령 8촌 친척 나흘 째 실종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