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인간의 조건>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우리도 한번 해볼까?” 한국방송(KBS) <인간의 조건>을 보고 남편이 제안했다. <인간의 조건>에 출연한 개그맨 6명은 휴대전화, 인터넷, 티브이가 없는 1주일을 보낸다. 이들의 일상을 좇는 성우의 말마따나 “인간이 빠르고 쉽게 살 수 있도록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달콤한 조건들”을 하루쯤 놓아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먼저 티브이를 껐다. 토요일에 집에 있으면 우리는 언제나 지나간 영화를 틀어놓고 자다 깨다 보곤 했는데 이날 밤은 포기해야 했다. 뭐하지? 저녁이나 지어먹기로 했다. 티브이가 입을 닫은 집은 적막했다. 음악을 틀려고 해도 스마트폰에 깔린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왔던 터라 이 또한 포기해야 했다. 이사를 하면서 버린 작은 오디오가 아쉬웠다. 라디오는 먹통, 건전지가 언제 방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압력밥솥 김 올라오는 소리가 겨우 집 안의 고요를 깼다. 휴대전화 수신음이 여러 차례 울렸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다. 보나 마나 주말 저녁의 나른한 수다일 테다. 궁금하다. “보지 마!” 남편이 외쳤다.
일요일에는 남편의 큰누나 댁에 시어머니가 김장을 하러 오시기로 했다. 우리도 가기로 했는데, 어떻게 연락을 한담? <인간의 조건> 규칙대로 집전화는 써도 된다니 그걸로 걸어보기로 한다. 시어머니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는데 깐깐한 남편이 말했다. “이거 인터넷 전화잖아.” 악! 관두자, 관둬.
방송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는 5241만명이란다. 100명당 105대꼴로 휴대전화를 보유한 셈이다. 티브이, 인터넷, 휴대전화가 없는 삶에서 <인간의 조건> 출연자들이 가장 허전해한 것은 전화기였다. 인터넷, 티브이, 전화의 기능까지 다 하는 스마트폰이 없으니 혼자 있을 때, 대화가 끊겨 잠시 적막이 흐를 때, 차로 이동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나같이 휴대전화가 들어 있던 바지 뒷주머니를 여러 차례 더듬었다.
<개그콘서트> 아이디어 회의에 간 정태호는 동료에게 휴대전화 케이스라도 손에 쥐어 보자며 ‘금단 현상’을 호소했다. 김준현은 세상과 이어주던 끈들이 단절된 데서 오는 불안함을 말했다. 김준호는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바로 하루 전의 자신과 같았던 사람들을 바라봤다. 동료들은 회의를 하다 막히는 게 있으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짬이 나면 휴대전화에 깔린 게임을 했다. 김준호는 휴대전화의 부재로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관계에서 소외된 것 같아 불안했지만 가만 보니 ‘스마트한 삶’이란 이랬다. “핸드폰 좀비 같아 보였어, 사람들이.”
유독 개인 스케줄이 없었던 양상국은 강아지처럼 집에서 종일 사람을 기다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좌불안석하는 그에게 카메라를 든 피디가 평소처럼 편하게 있으면 된다고 하니 ‘금지’ 표시가 붙은 티브이를 가리키며 평소대로라면 소파에 늘어져 리모컨을 손에 쥐고 채널을 돌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뜬금없이 싱크대 청소를 해본다. 무얼 해도 흐르지 않는 시간에 어이없어하며 그는 “사람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박성호는 티브이 없는 집에서 “평소 상국이랑 별로 안 친한데 말을 많이 하게 된다”며 오프라인 생활에서 새로이 만들어지는 관계를 들여다봤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좌충우돌, 초조해했던 6명의 남자들은 어느새 지금 주어진 적막함과 심심함 사이에서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소소한 순간들을 발견해나가고 있었다. 티브이 음악프로그램을 보는 대신 라디오를 켰다. 머리를 맞대고 조립 장난감을 만들며 오랜만의 여유를 찾았다. 기타를 집어들고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을 부른 김준현은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 거거든. 기억을 하려면 다시 아날로그로 가야 해”라고 말했다. 남은 2회분 방송에서 이들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순간을 더듬고 무엇을 기억해낼까.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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