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비밀친구> (2005년, <티브이 도쿄> <에스비에스> 공동제작)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두근두근 비밀친구> (2005년, <티브이 도쿄> <에스비에스> 공동제작)
<애니맥스> 매일 새벽 2시, 주중 2회, 주말 3회 연속 방영 바리스타 김커피씨가 양평동 이씨에게 프로그램을 추천한 것은 지난 5월의 일이다. “혹시 <두근두근 비밀친구>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소개해 볼 생각 없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이씨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일단 한번 찾아보고 생각해 볼게요.” 그 주 마감을 맞아 무슨 작품을 소개할까 고민하던 이씨는, 문득 김커피씨의 말을 떠올리곤 인터넷 검색창에 <두근두근 비밀친구>를 입력했다. 아기자기한 소녀 주인공과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검색결과 상단에 떴다. “김커피씨 소녀 감성이었네.” 하지만 그건 이씨의 착각이었다. <두근두근 비밀친구>는 잔뜩 뒤틀린 유머코드의 본격 개그물이었다. 새로 이사온 집 자기 방 한켠에서 다른 차원의 세상 ‘애니골’로 통하는 문을 발견한 유치원생 아미의 일상을, 애니골에서 온 동물 친구 이요, 켄타, 이싸가 온갖 기괴한 장난으로 산산조각 내는 게 내용의 전부니 말 다 했지. 이씨는 왜 김커피씨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동물인 척 시치미를 뚝 뗀 채 온갖 풍자와 패러디를 비벼 넣는 재주가 썩 근사했다. 하지만 막상 지면에 소개하자니 작품의 유머코드가 조금 마이너 해 보였다. 게다가 시종일관 진지함을 거부하는 작품이니 다른 의미를 부여해 소개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이씨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그 주의 마감을 메웠다. 김커피씨가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12월이었다. “혹시 전에 말한 <두근두근 비밀친구> 봤어요?” “예. 보긴 봤는데 소개하기가 좀 그래요.” “왜요? 별로던가요?” “아뇨. 작품은 좋은데, 지면에 소개하기엔 조금 마이너 한 것 같아서요.” 대답을 들은 김커피씨는 힘없이 웃어 보였다. “<한겨레>에 소개할 만한 가치는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집에 오는 길 내내 김커피씨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난 언제부터 멋대로 취향에 위계를 매겨 소개할 가치가 있는 작품과 없는 작품을 구분한 걸까. 트위터에선 늘 ‘자의적으로 무엇이 바람직한지 결정해 줄 세워 검열하는 이들만큼 오만한 바보들도 없다’ 따위의 말을 잘도 한 주제에.
이씨는 밤새 <두근두근 비밀친구>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작품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로만 채운 ‘바람직한’ 리스트는,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들이 오가고 부딪히며 공존하는 대신 누군가 임의로 판단한 ‘바람직한’ 것들로만 채워진 세상은 또 얼마나 지루하고 폭력적일 것인가.
이씨는 노트북을 열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바리스타 김커피씨가 양평동 이씨에게 프로그램을 추천한 것은 지난 5월의 일이다….” 창밖으로 새 아침이 밝아오는 중이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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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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