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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빈곤과 청담동, 두 이상한 나라 경계에 선 앨리스

등록 2013-01-04 19:31수정 2013-07-15 16:29

<청담동 앨리스>(SBS). 주인공 한세경(문근영)
<청담동 앨리스>(SBS). 주인공 한세경(문근영)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012년 마지막날,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갔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출발해 종로1가까지 걸어갔는데, 가는 길이 묘했다. 낮에 그렇게 붐비던 관광객이며 카페를 찾은 연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삼청동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지나는 내내 마주 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마치 2013년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기 전 거쳐야 하는 진공 같은 공간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그곳을 지나 인사동 거리가 시작될 무렵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짠 하고 나타났다. 새해를 맞으러 한곳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고 2013년을 맞았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시간을 건너오면서 경계에 대해 생각을 했다.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청담동 앨리스>(SBS)에는 다른 세계로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여럿 나온다. 주인공 한세경(문근영·사진)이나 그의 친구 서윤주(소이현), 타미 홍(김지석)은 부자들의 세계에 진입해 그곳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본래 몸담았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이다.

세경은 디자인 공모전 입상, 유창한 불어 실력 등 소위 ‘스펙’을 두루 갖췄지만 패션업계에 디자이너로 진입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고 어릴 적부터 좋은 것을 두루 보며 익혀 온 감각과 안목이 없다는 이유로 패션 디자이너로 지원한 그의 입사 점수는 꼴찌다.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오던 세경에게 디자인팀장이 오히려 되묻는다. “세경씨는 왜 이런 곳에 있어요?”

윤주는 세경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세경에게 밀려 만년 2등이었던 그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은 주변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그가 세경을 이겼던 방법은 그림을 잘 그리는 남자친구에게 부탁해 얻은 그림으로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었다. 윤주는 일찍이 자신을 부자들의 나라에 데려다 주기 위한 ‘시계 토끼’를 찾기 위해 애썼고 그 세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윤주는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하면 매개가 될 사람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다. 타미 홍은 국내파지만 청담동에서 소위 ‘뜨는’ 디자이너다. 그는 사실 디자인 실력보다는 비밀리에 운영해온 상류층 멤버십 클럽에서 ‘마담뚜’ 역할을 하며 자신의 세를 키워왔다. 실력과 노력보다는 ‘부자 인맥’을 붙드는 것이 그 세계에서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그는 세경이나 윤주보다 한발 먼저 알았다.

이들이 순서를 달리하며 이상한 세계에서 겪는 우여곡절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굴 속에 떨어져 겪었던 경험과 꼭 닮아 있다. 예컨대 앨리스가 탁자에 놓인 무언가를 마셔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그랬듯 세경 또한 이상한 나라에 진입해 자신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을 느낀다. 앨리스는 작아진 상태에서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사실 이것은 자신이 엄청 커졌을 때 흘렸던 눈물이 바닥에 고여 생긴 웅덩이였다. 청담동의 세경도 잃어버린 과거의 자신을 연기하며 결국 스스로 만든 눈물의 웅덩이에서 허우적대고 만다. 담배 피우는 애벌레, 체셔고양이 등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은 기묘하다. 이들이 보내는 어색한 시선은 세경이 타미 홍에게 초대받은 첫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과 몹시 닮았다.

드라마는 부자들의 세계에 진입하기로 마음먹은 세경을 통해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세경이 속했던 세상의 삶은 “돈이 없기 때문에” 사랑도 취업도 결혼도 육아도 뜻대로 해나가기가 불가능한 삶이다. 한편 세경이 들어가려는 세상 또한 사정이 만만치 않다. 윤주가 그러듯, 대기업 로열그룹 차 회장(한진희)이 그러듯 자신이 가진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8회까지 방영된 <청담동 앨리스>는 이제 이야기의 절반을 지나왔다. 이야기의 가운데에서, 세경은 ‘청담동 사모님’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그 세계로 본격적으로 건너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망설인다. 경계에 선 앨리스는 앞으로 이상한 세계로 더 깊숙이 들어갈까, 아니면 이제 그만 꿈에서 깨는 것을 선택할까.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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