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겉보기에 방송국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전화기는 오늘도 불이 나고, 프린터는 끝없이 종이를 토해낸다. 스태프들은 추위에 떨며 촬영을 견디고, 편집실에서는 눈이 빨간 조연출(AD)들이 밤을 새운다. 인터넷은 연일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나 이따금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텔레비전이 노쇠해간다는 느낌. 감상적인 비유를 하자면 가을 해가 기울듯 서서히, 착실하게 그림자가 길어지는 느낌이다.
프로그램 단위 시청률은 매주 등락을 거듭하지만, 전체 시청률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말 닐슨코리아가 분석한 시청률 10년 추이를 보면, 2002년에 비해 2012년의 평균 시청률이 9.6%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의 시청률은 10년 전에 비해 거의 60%나 하락했다. 20대는 방송사와 광고주 모두에게 양질의 시청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절반 이상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30~40대 시청률도 크게 떨어졌다. 이제 제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주부들이다.
외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18~49살 그룹의 텔레비전 시청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고, 일본 역시 시청률 하락과 수익 악화로 방송사들이 골머리를 앓은 지 몇 년이 된다.
사실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텔레비전을 지나치게 시청하는 것을 우려해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헐뜯으며 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텔레비전만 쳐다보는 10대가 있다면 그 친구야말로 바보 취급을 당할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느라 페이스북, 카카오톡, 연예 뉴스, 인터넷 유머와 유튜브를 소홀히 하다니, 어느새 그는 친구들 앞에서 진짜 ‘바보’가 되어 버릴 것이다.
텔레비전이 여전히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참아야 한다면, 그건 중우(衆愚)를 만드는 상자로서가 아니라 그저 스마트 미디어의 반대말로서일 것이다. ‘텔레비전=스마트하지 않은 상자’라니, 유치찬란한 반론이라도 하고 싶다. “저… 요즘 텔레비전은 상자처럼 안 생겼는데요”라든가, 아니면 “스마트 미디어라지만 그걸로 소비하는 콘텐츠의 내용까지 스마트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쭈뼛쭈뼛.
컬러텔레비전이 신기술의 총아였던 시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이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을 어리석게 만드는 악당이었던 적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텔레비전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어느새 수많은 미디어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 12월31일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면서 텔레비전이 누렸던 영광의 시대는 별반 배웅해 주는 사람도 없이 막을 내린 것 같다. 후배가 아무도 안 찾아온 정년퇴임식 같은 냄새가 물씬 난다. 또 한편으로 그건 뭔가 초등학교 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던 오후 5시 무렵의 기분 같기도 하다. 다 놀았으니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는 오후 5시쯤 되면 실제로 골목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 저녁 텔레비전 만화를 봐야 하니까. 하지만 요즘 방송국은 저녁에 만화를 편성하지 않는다. 만화만 24시간 틀어주는 채널이 생긴 지도 오래됐고, 심지어 이제 아기들은 세 살만 되면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을 제가 알아서 눌러가며 <뽀로로>를 본다. 이 스마트한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이것이 이제부터 미디어와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숙제인 듯하다. 아무튼 텔레비전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류호진 한국방송 예능 피디
<한겨레 인기기사>
■ MBC특파원 “김정남 우연히 마주쳐 인터뷰…”
■ 피해여성 사진 유출 검사 “신상 알려주고 사진 구해와라”
■ 4대강으로 꽁꽁 언 낙동강, 큰고니 굶어죽을판
■ ‘은퇴’ 장미란 “IOC선수위원 도전”
■ [화보] 신의 영혼을 본다고? 형체 없이 일렁일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