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스타>
[토요판] 김민경의 요리조리 TV
2일 <문화방송>(MBC)의 <라디오스타>(라스)에서 윤종신이 홍석천에게 물었다. “왜 목소리를 그렇게 내서 (게이에 대한) 이미지 나쁘게 만드냐 많이 혼나죠. 동성애자에게도 비판받았다면서요? 왜 하필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했냐….”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백하건대, 나도 ‘용기내어 커밍아웃까지 해놓고, 티브이에선 왜 저렇게 게이스럽게 행동할까’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그를 마뜩잖게 바라봤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지난 2일과 9일 라스는 홍석천·염경환·숀리·윤성호가 게스트로 나오는 ‘민머리 특집’을 내보냈다. 4명의 ‘민머리’ 방송인에게 탈모의 고충·장단점 등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주제는 민머리였지만 홍석천이 나왔기에 동성애 얘기도 계속됐다.
사실 처음부터 마냥 웃겼던 건 아니다. 홍석천이 라스 진행자인 “슈퍼주니어 규현이 좋다”고 하자, 바로 ‘사랑의 작대기’란 자막이 떴다. 마이크 위치를 조정해주던 김국진의 손을 홍석천이 잡자, 하트 시지(CG)도 나왔다. ‘이성애자라면 저랬을까’ 하며 부글부글할 무렵, 윤종신의 “이런 게 편견인 것 같아요”라는 멘트 덕에 뼈있는 웃음이 나온다.
“유머 속에 ‘그분들’을 넣으면 비하하는 거냐고 하는데, 소수라는 생각에 더 민감한 거 아녜요?” 윤종신의 질문은 채널 고정의 최대 고비였다. 악의는 없었지만, 소수자에 대한 무감각에서 나온 질문이라 불쾌했다. 하지만 홍석천의 반응은 달랐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진지하게 받아달라고 하는 것도 웃겨요. 웃고 재밌게 해서 거부감 먼저 없게 해야지. 사실 민머리 사람들도 차별받거든요. 우리 넷 있을 때 오면 기분 이상할걸요?”
아마 나였다면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가 만든 편견”이라며 따졌을 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너무 어려운 말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에는 가닿지 못할. 그래서 그랬을까? 홍석천의 대답을 들은 김국진의 반응이 짠했다. “그럼 내가 소수가 되는 거야? 다수도 더 많은 사람이 있으면 소수가 되니까. 차별당하는 건 싫어하면서 차별하는 건 참 좋아하는 안타까운 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마음이라고 달랐을까.
홍석천은 라스에서 그가 말한 대로 ‘웃고 재밌게 하는’ 전략을 택했다. “남자 출연진 어때요?”라는 짓궂은 질문도 “규현 빼고 정말 쓸데없어요”라며 능청맞게 받아넘겼다. 규현의 매력을 묻자 “스위트? 이태원 출신이라 영어 좀 쓰려고요”라고 답한다.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동성애자 얘기가 이렇게 웃기기만 해도 되나’ 싶어서. 하지만 웃음 뒤에 “열심히 살고 싶은데 태클 거는 분들이 있어서 힘들다”며 속내도 내보였다. 편견 때문에 생긴 외로움도 토로한다. 이런 감수성이 그냥 나왔을까? 그는 커밍아웃 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탈모가 됐다고 했다. ‘죽어라’는 욕도 들었다 했다. 그 고통을 겪은 뒤 편견에 맞서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몇 년 전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에스비에스>(SBS)가 책임져라!’라는 신문 광고를 낸 학부모 단체들, “동성애 차별 반대 광고는 미풍양속 저해”라며 펼침막을 없앤 서초구청. 이들이 홍석천 앞에 서면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데? 아, 그런데 우리가 그런 유머를 받아쳐 줄 준비가 돼 있으려나.
김민경 <한겨레>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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